Draft 민간신앙
제목 | 민중과 함께 해온 민간신앙 / 종교 이상의 힘을 지녔던 민간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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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신현덕 |
교열자 | 유안리 |
인물/기관/단체 | 단군, 처용 |
장소/공간 | 마을, 북악산, 송악산, 감악산, 삼각산 |
기록물 | 토정비결 |
개념용어 | 기우제, 산신제, 부적, 가신신앙, 마을신앙, 무속신앙, 동제 |
목차
1차 원고
민간신앙은 아직까지 용어조차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이는 체계적인 종교가 아니라, 혈연 조직이나 마을공동체 등에서 종교와 같은 개념으로 행해지는 의식을 두루뭉술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는 훌륭하게 종교로 체계화 되었고, 신도 또한 적지 않다. 이글에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정의한 종교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민간에서 전승되는 여러 가지 신앙이라는 정의에 따른다. 또 “민간신앙의 가장 보편적인 의미는 민족적 특성이 강한 민속종교나 신앙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규정한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신화·의례·주술·제사·행사·마을신앙·가정신앙·세시풍속·통과의례(通過儀禮)·장제(葬祭)·점복·금기·풍수(風水)·무속(巫俗)·조상숭배(祖上崇拜)·동제(洞祭) 등과 비집단적 신앙, 신흥종교, 민간의료 등”을 민간신앙으로 연구했다. 이중 무속신앙은 전문적인 민간 신앙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하지만 민간신앙은 기존의 어떤 종교와 비교해도 그 연원이 결코 짧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이래 어떤 형태로든 민간신앙은 함께 공존했다. 한국의 민간신앙은 단군신화에서 비롯된다. 삼국유사에 환웅은 하늘을 상징하는 환인의 아들로 되어 있다. “환웅의 하강설화(下降說話)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하늘숭배사상의 문화집단과 곰으로 상징되는 지모신신앙(地母神信仰)의 문화집단이 결합하는 것을 나타낸다.”
단군은 환웅의 아들로 초인적인 능력을 지녀 비·바람·구름을 마음대로 거느렸으며, 죽어서 아사달의 신이 되었다. 이처럼 단군은 하늘의 대리자였다. 여기에 근거하여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로 탄생했다.
단군 때에 이어 삼국과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에도 민간신앙은 유지됐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기우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우제에 관한 기록이 1,450회가 넘는다. 자연 현상에 따라 비가 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가뭄이 심해지면 왕은 자신의 부덕으로 비가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왕은 목욕재계하고 직접 나서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관리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효험이 있다는 산천을 찾아가 역시 기우제를 지냈다. 심한 경우는 모든 관료와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대대적으로 빌었다.
기우제는 흉흉한 민심을 달래는 의미도 있었으며,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통치를 위한 목적도 부정할 수 없었다. 초기에 종교가 하던 역할을 기우제가 담당케 했던 것이다. 기우제는 기상예보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가뭄이 심하면, 동네 어른들이 주관하여 가끔 마을에서 지내기도 한다.
왕실 주도의 행사 중 산신제도 중요한 민간신앙이었다. 산신제는 서울의 북악산, 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경기도 삼각산 등 4악산에서 치러졌다. 이와 함께 전국의 주요 산들과 모든 마을에서도 자체로 거행했다.
이밖에도 민간에서는 집안의 평화와 안녕을 비는 가신신앙, 범위를 넓힌 마을신앙, 전문 무속인이 등장하여 행하는 무속신앙이 있었다.
민간신앙이 20세기에는 사라져 가다가 21세기 다시 부활하는 경향이다. 신앙으로 보다는 민속행사와 놀이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토정비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늘었다. 점을 치고 귀신을 쫒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집 안에 뿌리며 악귀를 쫓는 등 민간신앙을 지키고 따르는 것은 옛 것에 대한 추억일 것이다.
장승과 솟대가 전국 곳곳에 다시 세워지고 있으며, 이를 축제로 즐기는 마을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장승은 나쁜 기운을 막는 힘을 가졌다고 믿어, 솟대는 마을의 액을 막으며 풍년·풍어 등을 기원하고, 풍수지리에 따라 배가 가는 모양을 한 마을의 안녕을 빌며, 마을에 경사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마을 어귀에 세웠었다.
불행이나 재해를 막아 준다고 믿는 신비한 힘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게 한다는 부적도 민간신앙이다. 사악한 것이나 액운을 물리침으로써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민간에서는 종이에 부적을 어느 장소에 붙이거나 몸에 지녔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처용부적은 신라 이전부터 부적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연구원 검토
검토의견 | |
• 민간신앙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민간 층에 전승되는 자연적 신앙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왕실주도의 기우제, 산신제보다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민간 층의 생활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민간신앙의 형태, 사상, 역사, 다른 종교로의 수용 등 한국적 민간신앙이 가지는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밝힐 필요가 있다. 또한 관련 시각자료도 함께 제시한다는 글의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 |
• - 민간신앙의 종류가 많고 방대하여 짧은 지면에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간신앙을 가능한 한 많은 분야와 내용을 서술하려고 하기 보다는 특정 기준을 마련하여 몇 가지라도 제대로 설명을 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한다. - 한국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무형문화 보유 국가 3위이다. 무형문화유산 14개 중 민간신앙에 해당되는 것으로 강릉단오제,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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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원고
한국에서 민간신앙은 아직까지 용어조차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이글에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정의한 종교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민간에서 전승되는 여러 가지 신앙이라는 정의에 따른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신화·의례·주술·제사·행사·마을신앙·가정신앙·세시풍속·통과의례(通過儀禮)·장제(葬祭)·점복·금기·풍수(風水)·무속(巫俗)·조상숭배(祖上崇拜)·동제(洞祭) 등과 비집단적 신앙, 신흥종교, 민간의료 등”을 민간신앙으로 연구했다.
이를 가정, 마을, 국가에서 행하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한국의 가정은 자기들만의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인들을 집의 터를 지켜주는 신이 있었다고 믿었다.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믿음의 표시이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비는 마음 속 신앙의 표시이다. 이를 높여서 터줏대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은 현재 어의가 확대되어 ‘집단의 구성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람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집에서 핵심적인 자리에 터주를 놓는다. 이 신에게는 가을 농사가 끝나면 붉은 팥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고사를 지냈다.
터주는 5~6ℓ가 들어가는 옹기 단지에 벼를 담고 뚜껑을 덮은 다음 짚으로 원추형 모양을 만들어 덮고, 장독대 옆에 놓는다. 그리고는 매년 햇벼가 나면 갈아 넣고 고사를 지냈다. 지난해 넣은 벼는 정미하여 떡을 만들어 가족끼리만 먹었다. 남에게 주면 복이 나간다고 믿었다.
불을 의미하는 조왕신을 섬겼다. 부엌에 있다고 믿었으며 불씨를 관리하는 것은 여성의 의무였다. 불씨를 얻기 어려웠던 시절에 불씨를 꺼드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집 전체를 보호하며 가장을 지키는 성주신도 모셨다. 성주신은 집 안의 중심인 대청 중심에 놓인 뒤주나 쌀이 담긴 작은 항아리 등을 대들보에 모시기도 했다. 이밖에도 자손을 돌본다는 삼신, 재물을 관장하는 업 등이 있어 가족과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고 빌었다.
둘째로 마을 신앙은 지역 공동체의 신앙이다. 지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같은 지역에서 상호부조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빈다. 그 대표가 동제다. 동제는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제사로 온 마을사람들을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지켜주고, 농촌에서는 농사가 잘되고 어촌에서는 고기가 잘 잡히게 하여 달라고 비는 것이다. 산신제, 서낭제, 당산제 용왕제[1] 등 지역과 마을의 위치에 따라 행하는 종류가 다르다.
정월 초나 대보름 무렵에 마을에서 제관을 선출하여 제관이 지낸다. 목적은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을 사람 모두가 주정한 일을 하지 않으며 금기를 지켜 정성을 다한다. 동제를 지내는 장소에는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쳐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 황토는 귀신을 쫓는다는 붉은색이며 금줄은 경계를 표시한다.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동제는 마을민의 단합과 유대강화를 위한 연출이며,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는 문화 계승의 행위이기도 하다.
전국의 수많은 마을 신앙 중 천년의 역사를 가진 강릉단오제와,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2]
마지막으로 국가가 행하는 신앙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국가 민간신앙은 단군신화에서 비롯된다. 삼국유사에 환웅은 하늘을 상징하는 환인의 아들로 되어 있다. “환웅의 하강설화(下降說話)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하늘숭배사상의 문화집단과 곰으로 상징되는 지모신신앙(地母神信仰)의 문화집단이 결합하는 것을 나타낸다.”[3] 단군은 환웅의 아들로 초인적인 능력을 지녀 비·바람·구름을 마음대로 거느렸으며, 죽어서 아사달의 신이 되었다. 이처럼 단군은 하늘의 대리자였다. 여기에 근거하여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대종교로 탄생했다.
기우제도 국가신앙의 하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우제에 관한 기록이 1,450회가 넘는다. 자연 현상에 따라 비가 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가뭄이 심해지면 왕은 자신의 부덕으로 비가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왕은 목욕재계하고 직접 나서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관리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효험이 있다는 산천을 찾아가 역시 기우제를 지냈다. 심한 경우는 모든 관료와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대대적으로 빌었다,
조선에는 왕실 주도의 행사 중 산신제도 있었다. 산신제는 서울의 북악산, 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경기도 삼각산 등 4악산에서 치러졌다. 이와 함께 전국의 주요 산들과 모든 마을에서도 자체로 거행했다.
한국의 민간신앙이 20세기에는 경제개발과 미신타타 정책에 밀려났다가[4] 21세기 들어 지역마다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라기보다는 민속행사와 놀이로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행한다. 점, 동지 팥죽, 장승, 솟대가 다시 등장했고, 불행이나 재해를 막아 준다고 믿는 신비한 힘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게 한다는 부적도 잘 팔린다.
교열본
한국에서 민간신앙은 종교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민간에서 전승되는 여러 가지 신앙이라고 정의된다. 종교적 신념인 신화(柛話), 실생활에서 행해지던 주술과 의례, 세시풍속과 통과의례(通過儀禮)처럼 시간에 따라 반복되는 것도 있고, 장제(葬祭)나 조상숭배(祖上崇拜), 동제(洞祭)와 같이 혈연이나 지연으로 행해지는 민간신앙도 있다. 행위의 전문성에 따라 금기, 풍수(風水), 주술, 제사, 무속(巫俗)을 들 수 있으며, 신흥종교, 민간의료 등도 민간신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민간신앙은 크게 보아 개인적인 신앙과 집단적 · 사회적 신앙으로 나눌 수 있다. 비집단적인 가정신앙은 가장이나 최고연장자가 집이나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 여러 가신(家神)을 섬기는 것이다.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신앙은 마을 수호 차원에서 공동의 마을신을 섬기거나 문중의 번성을 위해 신격화한 조상신을 섬기기도 한다.
집과 불을 지키는 가정신앙
한국의 가정은 자기들만의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인들을 집터를 지켜주는 지신인 터주와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을 섬겼다. 집안의 액운을 막아주고 재복을 주며 가족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비는 마음 속 신앙의 표시이다.
터주는 주로 집의 뒤뜰에 모셨는데 이 신에게는 가을 농사가 끝나면 붉은 팥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고사를 지냈다. 5~6ℓ가 들어가는 옹기 단지에 벼를 담고 뚜껑을 덮은 다음 짚으로 원추형 모양을 만들어 덮고, 장독대 옆에 놓는데 이를 터주가리라고 한다. 그리고는 매년 햇벼가 나면 갈아 넣고 고사를 지냈다. 지난해 넣은 벼는 정미하여 떡을 만들어 가족끼리만 먹었다. 남에게 주면 복이 나간다고 믿었다.
집안에서는 불을 의미하는 조왕신을 섬겼다. 부엌에 있다고 믿었으며 난방과 취사를 담당하는 아궁이를 관리하는 것은 여성의 의무였다. 그래서 부엌에서의 청결과 정숙이 요구되었으며, 날마다 새벽에 깨끗한 물을 떠다 부뚜막에 올려놓고 소원을 빌기도 했다. 불씨를 얻기 어려웠던 시절에 불씨를 꺼드리지 않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집 전체를 보호하며 가장을 지키는 성주신도 모셨다. 성주신은 집 안의 중심인 대청 중심에 놓인 뒤주나 쌀이 담긴 작은 항아리 등을 대들보에 모시기도 했다.
이밖에도 자손을 돌본다는 삼신, 재물을 관장하는 업 등이 있어 가족과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고 빌었다.
지역 공동체를 위한 신앙
마을 신앙은 지역 공동체의 신앙이다. 지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같은 지역에서 상호부조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빈다. 그 대표가 동제다. 동제는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제사로 온 마을사람들을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지켜주고, 농촌에서는 농사가 잘되고 어촌에서는 고기가 잘 잡히게 하여 달라고 비는 것이다. 산신제, 서낭제, 당산제 용왕제[5] 등 지역과 마을의 위치에 따라 행하는 종류가 다르다.
동제는 정월 초나 대보름 무렵에 마을에서 제관을 선출하여 제관이 지낸다. 목적은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을 사람 모두가 부정한 일을 하지 않으며 금기를 지켜 정성을 다한다. 동제를 지내는 장소에는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쳐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 황토는 귀신을 쫓는다는 붉은색이며 금줄은 경계를 표시한다.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동제는 마을민의 단합과 유대강화를 위한 연출이며,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는 문화 계승의 행위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동제의 신앙적 측면은 약화되고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단합하는 마을 축제로서의 측면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오늘 날 많은 지역에서 축제로 치러지는 민속 행사들이 이전에는 지역 공동체의 민간 신앙이었다.
전국의 수많은 마을 신앙 중 천년의 역사를 가진 강릉단오제와,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6].
국가차원의 민간신앙
한국의 대표적인 국가 민간신앙은 단군신화에서 비롯된다. 삼국유사에 환웅은 하늘을 상징하는 환인의 아들로 되어 있다. 환웅의 하강설화(下降說話)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하늘숭배사상의 문화집단과 곰으로 상징되는 지모신신앙(地母神信仰)의 문화집단이 결합하는 것을 나타낸다.[7] 단군은 환웅의 아들로 초인적인 능력을 지녀 비·바람·구름을 마음대로 거느렸으며, 죽어서 아사달의 신이 되었다. 이처럼 단군은 하늘의 대리자였다. 여기에 근거하여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대종교로 탄생했으며 무속에서는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
기우제도 국가신앙의 하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우제에 관한 기록이 1,450회가 넘는다. 자연 현상에 따라 비가 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가뭄이 심해지면 왕은 자신의 부덕으로 비가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왕은 목욕재계하고 직접 나서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관리들 역시 왕의 명령을 받고 효험이 있다는 산천을 찾아가 기우제를 지냈다. 심한 경우는 모든 관료와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대대적으로 빌었다.
조선에는 왕실 주도의 행사 중 산신제도 있었다. 산신제는 서울의 북악산, 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경기도 삼각산 등 4악산에서 치러졌다. 이와 함께 전국의 주요 산들과 모든 마을에서도 자체로 거행했다.
한국의 민간신앙이 20세기에는 경제개발과 미신타파 정책에 밀려났다가[8] 21세기 들어 지역마다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라기보다는 민속행사와 놀이로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행한다. 동지 팥죽, 장승, 솟대가 문화적 의미로 다시 성행하고, 신비한 힘으로 불행이나 재해를 막아 준다는 부적도 재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차 교열본
민간신앙은 종교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민간에서 전승되는 여러 가지 신앙을 말한다. 종교적 신념인 신화(柛話), 실생활에서 행해지던 주술과 의례, 세시풍속과 통과의례(通過儀禮)처럼 시간에 따라 반복되는 것도 있고, 장제(葬祭)나 조상숭배(祖上崇拜), 동제(洞祭)와 같이 혈연이나 지연으로 행해지는 민간신앙도 있다.
민간신앙 중 가정신앙은 집이나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 가장이나 주부 등 가족 구성원이 여러 가신(家神)을 섬기는 것이고, 동제와 같은 지역 공동체의 민간신앙은 마을 수호 차원에서 공동의 마을신을 섬기는 것이다.
집과 불을 지키는 가정신앙
한국의 가정은 자기들만의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집터를 지켜주는 지신인 터주와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을 섬겼다. 집안의 액운을 막아주고 재복을 주며 가족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의 표시이다.
터주는 주로 집의 뒤뜰에 모셨는데 이 신에게는 가을 농사가 끝나면 붉은 팥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고사를 지냈다.
전통적으로 집안에서 난방과 취사에 쓰이는 아궁이를 관리하는 것은 여성의 의무였다. 이 여성들을 중심으로 불을 의미하는 조왕신을 섬기는 신앙이 있었다. 조왕신은 부엌에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부엌에서의 청결과 정숙이 요구되었다. 가정의 주부들은 날마다 새벽에 깨끗한 물을 떠다 부뚜막에 올려놓고 소원을 빌기도 했다.
집 전체를 보호하며 가장을 지키는 신을 성주신이라고 한다. 성주신은 집 안의 중심인 대청 중심에 놓인 뒤주나 대들보 위에 작은 쌀 항아리를 놓아 모시기도 했다.
이밖에도 자손을 돌본다는 삼신, 재물을 관장하는 업 등이 있어 이 신들에게 가족과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고 빌었다.
지역 공동체를 위한 신앙
마을 신앙은 지역 공동체의 신앙이다. 지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같은 지역에서 상호부조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동제이다. 동제는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제사로 온 마을사람들을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지켜주고, 농사가 잘되거나 고기가 잘 잡히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다. 산신제, 서낭제, 당산제 용왕제[9] 등 지역과 마을의 위치에 따라 행하는 종류가 다르다.
동제는 정월 초나 대보름 무렵에 마을에서 제관을 선출하여 제관이 지낸다. 동제를 지낼 때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부정한 일을 하지 않으며 금기를 지킨다. 동제를 지내는 장소에는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쳐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
현대 사회에서 동제의 신앙적 측면은 약화되어 가고 있지만,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단합하는 마을 축제로서의 측면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오늘 날 많은 지역에서 축제로 치러지는 민속 행사들이 이전에는 지역 공동체의 민간 신앙이었다.
전국의 수많은 마을 신앙 중 천년의 역사를 가진 강릉단오제와,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10].
국가차원의 민간신앙
한국의 대표적인 국가 차원의 민간신앙은 단군신화에서 비롯된다. 『삼국유사』에 단군을 낳은 환웅은 하늘을 상징하는 환인의 아들로 되어 있다. 단군은 아버지로부터 초인적인 능력 이어받아 비·바람·구름을 마음대로 거느렸으며, 죽어서 아사달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화에 근거하여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대종교로 탄생했으며 무속에서는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
기우제도 국가신앙의 하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우제에 관한 기록이 1,000회도 넘게 등장한다. 가뭄이 심해지면 왕은 자신의 부덕으로 비가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왕은 목욕재계하고 직접 제단에 나아가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관리들 역시 왕의 명령을 받고 효험이 있다는 산천을 찾아가 기우제를 지냈다.
조선에는 왕실 주도의 행사 중 산신제도 있었다. 산신제는 서울의 북악산, 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경기도 삼각산 등 도성 주변의 큰 산에서 치뤄졌다. 전국의 주요 산들에서도 지방의 관리와 고을 주민들이 산신제를 거행했다.
한국의 민간신앙은 20세기에 들어 근대화를 위한 미신타파 정책에 밀려 위축되었지만, [11] 근년에는 다시 전통문화와 민속의 이름으로 회복되는 추세이다. 종교라기보다는 민속행사와 놀이로 각 지역의 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시행한다. 동지 팥죽, 장승, 솟대가 문화적 상징으로 다시 성행하고, 신비한 힘으로 불행이나 재해를 막아 준다는 부적도 재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석
- ↑ 김도현, 2016. 「동해안지역의 민간신앙 전통과 이사부」, 『이사부와 동해 제 11호』
- ↑ 문화재청 인류무형문화 유산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정구영, 2003, 새마을운동이 민간신앙에 미친 영향,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 김도현, 「동해안지역의 민간신앙 전통과 이사부」, 『이사부와 동해』 제11호, 한국이사부학회, 2016, 5-59쪽.
- ↑ 문화재청 인류무형문화유산
- ↑ "환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정구영, 『새마을운동이 민간신앙에 미친 영향』,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 ↑ 김도현, 「동해안지역의 민간신앙 전통과 이사부」, 『이사부와 동해』 제11호, 한국이사부학회, 2016, 5-59쪽.
- ↑ 문화재청 인류무형문화유산
- ↑ 정구영, 『새마을운동이 민간신앙에 미친 영향』,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