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다문화사회 외국인 거주자 2백만 시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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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1=이 글의 대상 독자는 외국인임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다문화 현상을 포괄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혈통주의 비판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국제결혼 등으로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로 변화한 것은 불과 20여년에 지나지 않으며 현재 이들을 포용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갖추어 나가고 있으므로 이를 부각할 필요가 있다. 기사 제목으로 제시한 “같이 갑시다”는 다문화가 시작되던 초기에는 의미있게 통용될 수 있으나, 한국 사회는 오늘날 이미 다문화사회가 되었으므로 다른 기사 제목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원고의 출처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만 제시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을 발췌 인용하였다면 정확한 출처 표시가 필요하다. | |의견1=이 글의 대상 독자는 외국인임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다문화 현상을 포괄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혈통주의 비판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국제결혼 등으로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로 변화한 것은 불과 20여년에 지나지 않으며 현재 이들을 포용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갖추어 나가고 있으므로 이를 부각할 필요가 있다. 기사 제목으로 제시한 “같이 갑시다”는 다문화가 시작되던 초기에는 의미있게 통용될 수 있으나, 한국 사회는 오늘날 이미 다문화사회가 되었으므로 다른 기사 제목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원고의 출처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만 제시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을 발췌 인용하였다면 정확한 출처 표시가 필요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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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견1=문장의 뜻을 좀 더 명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음. | ||
+ | 예 1) | ||
+ | “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를 포함한 국가가 될 것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인종, 언어, 문화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다문화 자녀가 태어나 자라면서 향후 한국 사회는 보다 더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장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 ||
+ | 예 2) | ||
+ | “이런 상태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바꾸기 조금씩 허물어졌다. 한국전쟁에 16개 나라가 파병해 한국 국토와 자유와 인권을 지켰다. 그 후 남북이 분단되었고 대한민국은 섬나라처럼 외국과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다.” | ||
+ | → 한국의 다문화사회 형성과 한국전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한국의 이주노동은 1980년대 후반 들어 본격화된 것으로 알고 있고,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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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 3) | ||
+ | 이후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들이 몰려 왔다. 처음에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쫓겨 나가 살던 동포들이 돌아왔고, 뒤이어 그 나라 사람들이 묻어 왔다. | ||
+ | → 한국의 다문화사회는 경제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의 소득급증과 1992년 중국과의 국교 수립 이후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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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 4) | ||
+ | <del>“그중 정부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국제결혼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들이 미미하지만 매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5년간”</del>을 삭제하고 “최근 결혼 이민자의 증가는 주목할 만하다”로 수정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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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문화로 이해하는 한국]] | [[분류 : 문화로 이해하는 한국]] |
2017년 8월 1일 (화) 17:18 판
제목 | “모두 함께 사는 한국인 / 국가발전의 동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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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신현덕 |
개념용어 | 혼혈아 향가 색목인 단일민족 쇄국정책 세계화 |
원고
다문화 사회 외국인 거주자 200만 시대 모두가 함께 사는 한국인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수가 200만 명(전체 인구의 4.0%)을 넘어섰다. 2007년의 100만 명(인구 대비 2.2%)을 넘어선 지 9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중국인이 1,016,607명(49.6%)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 149,384명(7.3%), 미국 140,222명(6.8%), 타일란드 100.860명(4.9%), 필리핀 56,980명(2.8%), 우즈베키스탄 54,490명(2.7%) 순이다.
외국인의 국내 체류자는 2013년 이후 매년 0.2%p~0.4%p씩 증가하여, 전체 인구에 대한 외국인 체류자의 수가 1%p 증가하는데 4년이 걸렸다. 이 같은 증가 추세라면 체류 외국인이 인구의 10%에 이르는 시점이 늦어도 2024년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정부도 이제는 그들의 국내 정착을 돕는데서, 그들이 본격적인 역량을 발휘하도록 방향을 바궜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회 각 분야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
그중 정부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국제결혼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들이 미미하지만 매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결혼 이민자의 수는 2011년 144,681명이던 것이 2015년에는 151,608명으로 매년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 이들 중 84.6%가 여성으로, 한국 남성들이 외국인 신부를 맞아들인 것이다. 여성이 외국인 남성을 신랑으로 맞아들인 것은 15.4%로 남성에 비해 월등하게 적다. 이들로 구성된 다문화[1] 가구가 전체 가구의 1.5%인 299,241가구에 이른다.
이들 가구와 가족 구성원수가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도 늘었다. 대표적인 문제가 가족 간에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원활하게 소통되지 않는 점이다. 이에 따라 태어난 아이들의 교육과 사회적응 등 다방면의 문제를 낳았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2008년부터 다문화가정 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해오고 있으며 2017년에는 다문화 가족이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는 총 1,506억 원의 예산을 들여 가족관계 개선, 정체성 형성, 사회성 발달, 미래설계 등을 지원하는 사업인 ‘다재다능 프로그램’ 운영기관을 105개로 늘리고, 이중언어 가족 환경 조성사업 등을 도울 계획이다.
또 결혼이민자의 안정적인 가족생활과 사회경제적 진출 확대를 위해, 한국생활 정보를 담은 휴대용 안내서 배포하고, ‘다누리 포털’(www.liveinkorea.kr)을 확장한다.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하여 취업 지원을 강화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 결혼이민자의 국내 거주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결혼이민자 정착단계별 지원 패키지 프로그램’을 100개 이상으로 확대한다.
다문화교육을 위한 ‘다누리배움터’(www.danurischool.kr)에 유아용 콘텐츠를 개발하여, 다문화 아동들의 다문화교육, 다문화교육자료, 온라인학습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한다.
각 방송과 기업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KBS, MBC 등 각 방송사는 한류 드라마에 다문화를 포함하고, 때로는 그들을 주연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방송하고 있다. 또 삼성, 현대, LG U+, 하나금융그룹 등은 공익광고를 통해서도 다문화의 유리함과 우수성을 지원하자고 광고한다. 한 기업광고에서는 놀이터에서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여자의 모습과 함께 “베트남 엄마를 두었지만 당신처럼 이 아이는 한국인입니다”라는 카피가 흘러나오며, 아이가 밥을 먹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합니다. 축구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군대에 갈 것이고,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할 것입니다. 당신처럼![2]”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자고 강조한다.
한국에 온 유학생도 10만 명에 가깝다. 2015년 91,332명이 세계 160개국 이상에서 왔다. 이들의 전공은 다양하며 특히 기술 분야와 한국어, 한국 역사, 한류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 수가 가장 많은 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인력이 부족하자 정부는 1991년부터 산업연수생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도록 제도화했고, 각 기업들은 외국의 우수한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근로자들을 필요로 했다.
한국이 이처럼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20세기만 해도 그들이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말을 순수한 혈통이라는 뜻으로 썼고, 때로는 외국인을 배척하는 때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외국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반도가 오래전부터 외국과 교류했다는 기록이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네덜란드 영국 등에 산재해 있다. 신라의 향가인 ‘처용가’에 등장하는 남자도 외국인이며, 고려 시대 ‘쌍화점’에는 아예 색목인으로 못 박고 있다.
이런 상태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바꾸기 조금씩 허물어졌다. 한국전쟁에 16개 나라가 파병해 한국 국토와 자유와 인권을 지켰다. 그 후 남북이 분단되었고 대한민국은 섬나라처럼 외국과 교류가 활발하지 못 했다. 그 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1980년대 문호를 활짝 열었다. 한국은 근로자, 무역상, 유학생, 서비스 산업 종사자 등이 해외로 쏟아져 나갔다. 동시에 외국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들이 몰려 왔다. 처음에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쫓겨 나가 살던 동포들이 돌아왔고, 뒤이어 그 나라 사람들이 묻어 왔다.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 정착했고, 국적까지 취득하고 있다.
외국에서 온 이주 근로자들은 어느 국가, 어느 사회에서나 그러하듯 한국인들이 꺼리던 육체노동분야로 파고들었고, 지금은 그 분야의 대세를 이루었다. 여기에 가세하여 정부가 1991년부터 공식적으로 산업연수생이란 이름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을 허용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연수시키는 동시에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를 포함한 국가가 될 것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인종, 언어, 문화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다문화 자녀가 태어나 자라면서 향후 한국 사회는 보다 더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장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주석
- ↑ 김문희 문영숙 김병희,2012, 「텔레비전 광고 콘텐츠에 묘사된 외국인 모델의 특성 분석」, 광고학연구, Vol.23 No.8, p.9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용어는 199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었지만, 지난 2005년 정부 차원에서 급증하는 이주노동자 대책을 모색하면서 급부상되었다
- ↑ 하나금융그룹 공익광고
출처 및 관련자료
관련자료
- 통계청
- 표준국어대사전
- 조선왕조실록
- 산업연수생현황
연구원 검토
1차
검토의견 | |
• 이 글의 대상 독자는 외국인임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다문화 현상을 포괄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혈통주의 비판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국제결혼 등으로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로 변화한 것은 불과 20여년에 지나지 않으며 현재 이들을 포용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갖추어 나가고 있으므로 이를 부각할 필요가 있다. 기사 제목으로 제시한 “같이 갑시다”는 다문화가 시작되던 초기에는 의미있게 통용될 수 있으나, 한국 사회는 오늘날 이미 다문화사회가 되었으므로 다른 기사 제목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원고의 출처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만 제시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을 발췌 인용하였다면 정확한 출처 표시가 필요하다. | |
• - 단일민족 및 다문화가정에 대한 과거의 생각, 현재 생각의 변화 및 정책에 대해서도 서술 - 현재 다문화사회가 되게 된 상황을 시대 순서별 그리고 상황별로 나누어 설명했으면. 외국인 유입에 대해 표를 만들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 농촌 총각들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것이 2000년대에 들어와 확산되었나? 외국인과 결혼하는 비율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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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검토의견 | |
• 문장의 뜻을 좀 더 명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음.
예 1) “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를 포함한 국가가 될 것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인종, 언어, 문화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다문화 자녀가 태어나 자라면서 향후 한국 사회는 보다 더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장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예 2) “이런 상태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바꾸기 조금씩 허물어졌다. 한국전쟁에 16개 나라가 파병해 한국 국토와 자유와 인권을 지켰다. 그 후 남북이 분단되었고 대한민국은 섬나라처럼 외국과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다.” → 한국의 다문화사회 형성과 한국전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한국의 이주노동은 1980년대 후반 들어 본격화된 것으로 알고 있고,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예 3) 이후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들이 몰려 왔다. 처음에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쫓겨 나가 살던 동포들이 돌아왔고, 뒤이어 그 나라 사람들이 묻어 왔다. → 한국의 다문화사회는 경제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의 소득급증과 1992년 중국과의 국교 수립 이후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예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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