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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2002년 한일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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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공동 개최로 치러진 17회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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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된 제17회 월드컵은 한국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사건이다. 전 국민이 ‘붉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고 한국인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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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주최국으로 결정된 것은 1996년 5월 31일 스위스 취리히 국제축구연맹 본부에서 열린 FIFA 집행위원회에서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한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공동 개최였으며, 아시아 대륙에서 개최된 첫 번째 대회였다. 이 대회의 공식 명칭은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이며 대회 슬로건은 ‘새 천년, 새 만남, 새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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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0년 3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대륙별 지역 예선이 실시되었고, 2001년 12월 1일 부산에서 29개 본선 진출 팀과 개최국(한국과 일본), 지난 대회 우승국(프랑스) 등을 포함한 총 32개 팀이 조 추첨을 했다. 추첨 결과에 따른 본선 조별 리그를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의 20개 도시에서 64경기가 펼쳐졌다. 양국의 합의에 따라 개막식 및 개막전은 2002년 5월 31일 서울에서, 결승전은 6월 30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치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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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회에서는 브라질이 우승하여 월드컵 5회 우승을 기록했고, 준우승은 독일, 3위는 터키, 한국이 4위를 차지하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한국 대표팀은 7전 3승 2무 2패라는 성적으로 4강에 진출하는 신화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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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 새로운 응원문화를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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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회에서 특히 세계인의 눈길은 끈 것은 한국의 응원 문화이다. 월드컵 대회 기간 중 많은 인파가 붉은 옷을 입고 전국에서 길거리 응원을 펼쳤다. 이 길거리 응원은 ‘붉은 악마’라는 단체가 주도하였다. 붉은 악마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국가 대표 선수들을 조직적으로 응원하고자 만들어진, 비상업적 · 비정치적 활동을 지향하는 민간 단체이다. ‘붉은 악마’라는 명칭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축구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 청소년 대표팀을 현지 언론이 ‘붉은 악령(Red Furies)’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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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는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적극적 참여를 통해 축구를 즐기려는 축구팬들이 만든  단체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활동 원칙을 중시하고 폭력적 응원 문화로 변질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대규모 동호회와도 같은 성격의 붉은 악마는 축구 관람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민의 염원을 하나로 모아 국가적 통합을 이루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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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는 서울 시청 앞 광장(서울 광장)이나 광화문과 같이 인파가 많이 모일 수 있는 길거리에서 조직적으로 응원을 주도하였다. 길거리 응원의 힘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서울광장, 광화문, 대학로는 물론, 전국의 체육관이나 학교 운동장 등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장소에 모였다. 그곳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같이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표 팀을 응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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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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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대회가 시작할 무렵 응원단은 50만 명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 팀이 계속 승리하며 선전을 거듭하자 마지막에는 전 국민의 20%인 700만 명까지 응원에 참여하였다. 단순히 축구 애호가들의 행사가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참여한 축제의 장이 되었다. 길거리 응원으로 월드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함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 행사가 될 수 있었다. 길거리 응원은 현재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 대표 팀 응원을 상징하는 고유문화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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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로 한국은 그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국제적 위상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었다. 4강 신화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열렬한 응원은 한국 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한국 국민들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관련항목'''==
 
=='''관련항목'''==

2017년 11월 27일 (월) 11:3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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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2002년 한일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로 치러진 17회 월드컵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된 제17회 월드컵은 한국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사건이다. 전 국민이 ‘붉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고 한국인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였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주최국으로 결정된 것은 1996년 5월 31일 스위스 취리히 국제축구연맹 본부에서 열린 FIFA 집행위원회에서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한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공동 개최였으며, 아시아 대륙에서 개최된 첫 번째 대회였다. 이 대회의 공식 명칭은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이며 대회 슬로건은 ‘새 천년, 새 만남, 새 출발’이었다.

이후 2000년 3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대륙별 지역 예선이 실시되었고, 2001년 12월 1일 부산에서 29개 본선 진출 팀과 개최국(한국과 일본), 지난 대회 우승국(프랑스) 등을 포함한 총 32개 팀이 조 추첨을 했다. 추첨 결과에 따른 본선 조별 리그를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의 20개 도시에서 64경기가 펼쳐졌다. 양국의 합의에 따라 개막식 및 개막전은 2002년 5월 31일 서울에서, 결승전은 6월 30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치르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브라질이 우승하여 월드컵 5회 우승을 기록했고, 준우승은 독일, 3위는 터키, 한국이 4위를 차지하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한국 대표팀은 7전 3승 2무 2패라는 성적으로 4강에 진출하는 신화를 이루었다.

붉은 악마, 새로운 응원문화를 보여주다

이 대회에서 특히 세계인의 눈길은 끈 것은 한국의 응원 문화이다. 월드컵 대회 기간 중 많은 인파가 붉은 옷을 입고 전국에서 길거리 응원을 펼쳤다. 이 길거리 응원은 ‘붉은 악마’라는 단체가 주도하였다. 붉은 악마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국가 대표 선수들을 조직적으로 응원하고자 만들어진, 비상업적 · 비정치적 활동을 지향하는 민간 단체이다. ‘붉은 악마’라는 명칭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축구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 청소년 대표팀을 현지 언론이 ‘붉은 악령(Red Furies)’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붉은 악마는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적극적 참여를 통해 축구를 즐기려는 축구팬들이 만든 단체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활동 원칙을 중시하고 폭력적 응원 문화로 변질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대규모 동호회와도 같은 성격의 붉은 악마는 축구 관람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민의 염원을 하나로 모아 국가적 통합을 이루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해왔다.

붉은 악마는 서울 시청 앞 광장(서울 광장)이나 광화문과 같이 인파가 많이 모일 수 있는 길거리에서 조직적으로 응원을 주도하였다. 길거리 응원의 힘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서울광장, 광화문, 대학로는 물론, 전국의 체육관이나 학교 운동장 등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장소에 모였다. 그곳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같이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표 팀을 응원하였다.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다

2002년 월드컵 대회가 시작할 무렵 응원단은 50만 명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 팀이 계속 승리하며 선전을 거듭하자 마지막에는 전 국민의 20%인 700만 명까지 응원에 참여하였다. 단순히 축구 애호가들의 행사가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참여한 축제의 장이 되었다. 길거리 응원으로 월드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함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 행사가 될 수 있었다. 길거리 응원은 현재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 대표 팀 응원을 상징하는 고유문화로 자리 잡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로 한국은 그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국제적 위상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었다. 4강 신화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열렬한 응원은 한국 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한국 국민들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