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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6일 (월) 10:38 판

영문 원고 번역본

고구려 및 백제와 함께 삼국의 하나인 신라는 오늘날의 경주 주변에서 진한 연맹체에 속한 작은 성읍 국가로 시작되었다. 나라는 박혁거세에 의해 세워졌지만, 통치는 대대로 주로 경주 김씨 일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신라는 지역 세력을 통합하면서 성읍 국가에서 왕국으로 성장하였으며, 4세기 무렵에는 진한을 복속시켰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작고 가장 발전이 뒤쳐진 나라였음에도 국력을 신장시켜 결국에는 다른 두 왕국을 복속시키게 된다. 532년에는 이웃의 가야 연맹을 복속시켜 그 영토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당나라와 연합하여 660년과 668년에 각각 백제와 신라를 복속시킨다. 이때로부터 신라는 한반도의 3/4 지역을 통일한 나라로서 통일 신라로 불리게 되며, 이후 북쪽에는 발해가 들어서게 된다. 10세기 초에 이르러 내전이 일어나면서 신라는 분열되었다가 최종적으로 고려로 계승된다.

삼국 가운데 중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로 인해 신라는 독특한 통치 체제를 발전시켰다. 그 하나가 골품제인데, 특정인만이 세습을 통해 권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제도에서는 모계 혈통도 중시되어, 왕실 여성은 국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신라의 역대 왕 중에는 세 명의 여왕이 있는데, 특히 선덕여왕(?~647)은 강력한 지도력으로 유명하다. 또 하나의 독특한 신라 귀족 제도로서 일단의 귀족 청년들이 무예와 풍류와 불교를 수련하는 화랑 제도가 있었다. 불교는 삼국 중 가장 늦게 신라에 전래되었지만, 곧바로 국교로 공인되며 통치의 기반이 되었다. 또한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하여 풍부한 불교 유산을 낳게 한 원천이 되었다. 오늘날 신라의 수도 경주 주변의 많은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한편 잘 보존되어 있는 많은 신라 왕릉에서 금관을 비롯한 여러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