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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이 불교의 본래 의미를 생각하며 불자의 실생활을 잠시 경험하는 템플스테이(Buddhist Temple Stay) 프로그램도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불교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장단기 및 성인, 학생, 여성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내·외국인 참가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 개인들이 불교의 본래 의미를 생각하며 불자의 실생활을 잠시 경험하는 템플스테이(Buddhist Temple Stay) 프로그램도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불교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장단기 및 성인, 학생, 여성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내·외국인 참가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 ||
− | 사찰에서 외국어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의 예를 들면 “누구든 유서깊은 한국 문화를 배워 익히고 실참실수를 통해 한국의 정통선을 명철하게 체험하여 생사의 문제에 직면한 자신의 존재를 궁극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다”고 한다.<ref> | + | 사찰에서 외국어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의 예를 들면 “누구든 유서깊은 한국 문화를 배워 익히고 실참실수를 통해 한국의 정통선을 명철하게 체험하여 생사의 문제에 직면한 자신의 존재를 궁극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다”고 한다.<ref>[http://www.hwagyesa.org/maha/kukjae/about_01.html 화계사]</ref> |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과정을 살펴보자. 한반도에 전래된 초기 불교는 종교적으로는 개인의 복을 구하는 구복 신앙에 가까웠고, 정치적으로는 각국이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기여했다. |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과정을 살펴보자. 한반도에 전래된 초기 불교는 종교적으로는 개인의 복을 구하는 구복 신앙에 가까웠고, 정치적으로는 각국이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기여했다. |
2017년 9월 12일 (화) 14:11 판
제목 |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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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신현덕 |
인물/기관/단체 | 이차돈, 소수림왕, 침류왕, 진흥왕, 모례, 세종, 연등회 보존위원회 |
장소/공간 | 성문사(省門寺), 서울, 광주 |
사건 | 순교 |
기록물 | 삼국사기, 훈요십조, 고려사 |
개념용어 | 연등, 억불숭유, 템플 스테이 |
물품/도구/유물 | 등 |
1차 원고
전국의 모든 사찰은 매년 음력 4월 초파일, 석가 탄신을 축하하는 날로 공휴일이며, 연등행사를 연다. 연등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로 “번뇌와 무지의 어두운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연등은 인도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널리 행하여졌는데, 한국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각 사찰에서 다는 등불이다. 이날 각 사찰은 초파일을 맞아 경내·외에 수많은 등불을 달아 세상을 밝힌다. 전국의 사찰 경내가 수백만 개의 등불로 불야성을 이룬다. 이날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과 사진 애호가들이 연등을 찍어 작품을 만든다. 다른 하나는 대대적인 연등행진이다. 대표적인 연등행진은 연등회가 중심이 되어 모든 종파가 참여하여 서울 시내 중심가를 지난다. 이 행진에는 매년 수만 여 개의 각종 등불을 든 신자가 참여, 부처의 밝은 공덕을 중생에게 알린다.
원래 연등은 신라 진흥왕(551년) 때 시작되어 고려 때에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에 등불을 켜서 부처에게 복을 비는 불교 국가의 대대적인 행사였다. 불전에 등불을 켬으로써 스스로 마음을 밝게 하여 부처의 덕을 기리며 대자대비한 부처와 불법(佛法)과 승가(僧伽)로 돌아가 의지하여 구원을 청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전국의 많은 사찰들이 그곳에 머물면서 사찰 생활을 경험케 하는 템플스테이(Buddhist Temple Sta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는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하여 외국인에게 한국불교전통문화를 체험토록 하기 위해 준비되었는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장단기 및 성인, 학생, 여성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며 참가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서기 372년 고구려(소수림왕 2년)를 통해 서였다. 중국의 전진(前秦)에서 불상과 불경을 고구려로 보냈고, 그를 계기로 고구려에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고구려는 다음해 성문사(省門寺) 등 2개 사찰을 세웠는데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사찰이다.
한반도에 전래된 초기 불교는 종교적으로는 개인의 복을 구하는 구복 신앙에 가까웠다. 정치적으로는 이곳에 국가를 성립하고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기여했다.
백제는 서기 384년(침류왕 1년)에 중국의 동진(東晉)에서 출발한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해로로 광주(廣州)에 도착, 불교가 왕실로 전파됐다. 백제는 그를 왕궁에 머물게 하며 설법을 들었고, 다음해 백성을 출가시켜 백제인 승려를 배출했다.
신라의 불교 전래는 3국 중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다. 고구려로부터 묵호자(墨胡子)라는 사람이 신라의 영토인 경북 서상 지방에 들어와 모례(毛禮)라 불리는 사람 집에서 불법을 전했고, 모례가 최초의 신라 불교 신도가 되었다.
신라 왕실은 불교를 받아들이길 원했지만, 왕실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던 신라 씨족들은 불교 전파를 방해하고 나섰다. 씨족들은 고구려가 중앙집권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불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을 인지, 조직적으로 씨족의 영향력 약화를 막기 위해 움직였다. 그 결과 불교를 초기에 전국으로 전파하는 데는 실패했다. 왕권 강화를 원하던 신라 왕실은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가서야 율령을 반포, 중앙집권국가 형태를 완료했다. 그 7년 뒤인 527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됐다. 고구려보다 150년 이상 뒤늦은 시점이었다.
신라에서는 불교가 늦게 성행했으나,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고 이차돈이 순교한 지 140년 후, 한반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불교 사상을 근간으로 한 화랑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신라의 불교는 고려로 이어졌다. 고려는 말기 승려가 나라를 개혁하는데 앞장섰지만 관료세력의 거센 반발에 몰렸다. 이때부터 급격하게 쇠퇴한 고려는 결국 20여년 뒤에 나라를 조선에게 넘겼다.
조선은 대대적인 억불숭유정책을 펼쳤지만, 불교를 전적으로 배척하지는 않았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유신그룹이 격렬하게 반대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불교 사상을 서문에 담기도 했다.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작품 3개중 2개가 불교와 관련 된 것이다.
불교에 속한 문화재 중 많은 것들이 국보로 되어 있을 만큼 불교가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끼친 영향은 컸다.
2014년 현재 전국에는 13,352개의 사찰이 있으며 신도 수는 7,619,332명이다. 불교계에 근무하는 사람은 27,404명이다.
연구원 검토
검토의견 | |
• 석가탄신일 연등, 절에서 기도하는 모습 및 대표적인 불교 사찰 등의 시각자료를 추가할 수 있다. 또한 대표적인 불교 유적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석굴암과 불국사를 언급할 수 있다. | |
• - 첫 문장에서 ‘현재 한국’이라는 말을 써 줄 것 → 현재 한국에서는 매년 음력 4월 초파일은 석가 탄신을 축하하는 날로 공휴일이며, 전국의 모든 사찰은 연등행사를 연다. - 글이 현재와 과거가 혼재되어 있는데 문장의 순서를 조정하여 글의 흐름이 원활하였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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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원고
현재 한국의 모든 사찰은 매년 음력 4월 초파일, 석가 탄신을 축하하는 날로 공휴일이며, 연등을 달고 그 무렵 연등행진을 한다. 연등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로 “번뇌와 무지의 어두운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이는 불교 신도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탑돌이와 같은 대규모 행사 중 하나이다.
개인들이 불교의 본래 의미를 생각하며 불자의 실생활을 잠시 경험하는 템플스테이(Buddhist Temple Stay) 프로그램도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불교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장단기 및 성인, 학생, 여성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내·외국인 참가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사찰에서 외국어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의 예를 들면 “누구든 유서깊은 한국 문화를 배워 익히고 실참실수를 통해 한국의 정통선을 명철하게 체험하여 생사의 문제에 직면한 자신의 존재를 궁극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다”고 한다.[1]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과정을 살펴보자. 한반도에 전래된 초기 불교는 종교적으로는 개인의 복을 구하는 구복 신앙에 가까웠고, 정치적으로는 각국이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기여했다.
고구려는 서기 372년(소수림왕 2년) 중국 전진(前秦)으로부터, 백제는 서기 384년(침류왕 1년)에 중국의 동진(東晉)에서 불교를 받아들였다. 신라의 불교 전래는 3국 중에서 가장 늦었고,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고구려인이 불법을 전했다. 신라 왕실은 불교를 받아들이길 원했지만, 왕실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던 신라 6부족들은 불교 전파를 방해하고 나섰다. 왕권 강화를 원하던 신라 왕실은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가서야 율령을 반포, 중앙집권국가 형태를 완료했다. 그 7년 뒤인 527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겨우 불교를 공인했다.
신라의 불교는 늦게 성행했으나, 한반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불교 사상을 근간으로 한 화랑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이 무렵 해외에서의 불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혜초는 인도로 불법을 구하러 갔다가 널리 알려진 「왕오천출국전」을 남겼다. 일본으로 건너간 신문왕과 경덕왕의 왕자들은 불상 등을 일본에 전하거나 불사를 일으키는데 기여했다. 원효 의상 자장 등은 고승으로 추앙받는다.
신라인들은 교역과 유학 등의 명분으로 중국에 건너갔다. 신라인들은 그들이 모여사는 신라방을 세웠고, 거기에 신라 사찰인 신라원을 세웠다. 그중 널리 알려진 해상왕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은 중국 산동성 적산에 중건되었다.
신라의 승려들에 의해 지어진 향가는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한 장르로 전해오고 있다. 또 고구려의 담징은 일본의 호류사(法隆寺) 금당에 벽화를 남긴 것으로 『일본서기』가 전한다.
한국 불교는 고려에서 최전성기를 맞았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태조는 불교를 국교로 정했고 수많은 불사를 일으켰다. 또 후손에게 「훈요십조」를 내리면서 불교 신봉을 강조했고, 아들을 직접 출가시켰다. 이후 고려는 불교를 국가의 기본 통치개념과 분리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과거제도에 승과를 두기도 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불교로 흥한 고려가 지나친 종교관련 행사와 인물들로 인해 망한 것은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은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조선은 대대적인 억불숭유정책을 펼쳤지만, 불교를 전적으로 배척하지는 않았다. 서울을 현재 위치에 터 잡을 때 불교 승려의 도움을 받았다고 알려졌고, 임진왜란 등 나라가 어려울 때 승병이 나서 구국활동을 전개했다. 궁궐 안에 절을 세우기도 했고, 법석을 벌였고, 불교 서적을 간행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불교 사상도 존중했고, 훈민정음으로 창작한 최초의 작품 3개중 2개가 불교와 관련 된 것이다.
지금도 불교 교리를 실천하는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불교신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돌아가신 조상을 극락에 가도록 비는 49재, 100일재 등 여러 종류의 천도재를 지낸다. 젊은이들이 중요한 시험이 100일이 남았다거나, 서로 사귄지 100일째가 되었을 때 파티를 하는 것도 이의 영향을 받았다. 또 ‘함부로 살생하지 말라’는 교리에 따라 짐승이나 가축 등을 함부로 죽이지 않으며, 선을 하는 민간인들이 점차 늘고 있다.
또 불교 사찰이 보존해온 많은 문화재가 한국의 불교문화를 보전·전수하고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해 다보탑과 석가탑, 부석사 무량수전, 법주사 팔상전, 해인사 팔만대장경, 익산의 미륵사지석탑, 부여의 정림사지 석탑 등이 찬란했던 불교 문화의 유산이다. 또 순천의 송광사에는 목조삼존불감, 고려고종제서, 국사전 등 국보와 대반열반경소, 경질, 경패 등 총 12점의 보물 그리고 각종 지방 문화재 등이 보관되어 있다. 서울 봉원사 등에서 거행하는 영산재는 세계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
일제 강점기 한용운은 승려이었으며, 3·1독립운동 민족 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고, 시집 『님의 침묵』으로 저항문학을 꽃피웠다.
한국 불교계는 활발하게 해외 선교를 펼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 위스콘신 주 매디슨 등에 사찰을 설립했다.
2014년 현재 전국에는 13,352개의 사찰에 신도는 7,619,33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