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예 문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Korea100
이동: 둘러보기, 검색
잔글 (한국의 도예 문화)
6번째 줄: 6번째 줄:
 
한국은 도예의 선진국으로 각 시대마다 특색 있는 기법의 우수한 유물이 많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의 [[청자]]는 그 발생지 중국에서도 최고 품질을 인정 받을 정도로 우수했다. 오늘날 세계의 여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미술품 중에서는 도자기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은 도예의 선진국으로 각 시대마다 특색 있는 기법의 우수한 유물이 많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의 [[청자]]는 그 발생지 중국에서도 최고 품질을 인정 받을 정도로 우수했다. 오늘날 세계의 여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미술품 중에서는 도자기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든 것은 소성 온도에 따라 대체로 [[토기]], [[도기]], [[자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삼국시대는 토기가 많이 제작되었다. 토기 중 850∼950℃에서 구워낸 와질토기는 취사와 저장 용기와 분묘 부장품, 제사 용기로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의 토기 유물 중 기와, 치미, 벽돌 등 건축용 가공품에서 당대의 예술적 정취를 엿볼 수 있는 걸작들이 많이 발견된다. 1100℃ 이상에서 도질토기는 서기 3세기 후반에 낙동강 하류지역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여 4세기 초에 가야는 물론 백제와 신라에서도 생산되고, 이후 점진적인 기술의 발전을 맞이하면서 통일신라시대까지 생산되었고, 고려로 진입하면서 도기로 대체된다.
+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든 것은 소성 온도에 따라 대체로 [[토기]], [[도기]], [[자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삼국시대는 토기가 많이 제작되었다. 토기 중 850∼950℃에서 구워낸 와질토기는 취사와 저장 용기와 분묘 부장품, 제사 용기로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의 토기 유물 중 기와, 치미, 벽돌 등 건축용 가공품에서 당대의 예술적 정취를 엿볼 수 있는 걸작들이 많이 발견된다. 1100℃ 이상에서 도질토기는 서기 3세기 후반에 낙동강 하류지역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여 4세기 초에 가야는 물론 백제와 신라에서도 생산되고, 이후 점진적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통일신라시대까지 생산되었고, 고려로 진입하면서 도기로 대체된다.
  
고려시대 들어와서 도자기는 생활용기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청자]]가 이 시대에 생산되었다. [[청자]]란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만든 형태 위에 철분이 1∼3% 정도 들어 있는 장석질(長石質) 유약(釉藥)을 입혀 1,250∼1,300℃ 정도에서 환원염으로 구워낸 자기이다. 이 때 유약의 색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비취색(翡翠色)과 흡사하고 투명에 가까우며 태토(胎土)의 색은 흐린 회색이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이 바탕이 된 녹청색이 되며 고려사람들은 이를 비색(翡色)이라 하였다.  
+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도자기는 생활용기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청자]]가 이 시대에 생산되었다. [[청자]]란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만든 형태 위에 철분이 1∼3% 정도 들어 있는 장석질(長石質) 유약(釉藥)을 입혀 1,250∼1,300℃ 정도에서 환원염으로 구워낸 자기이다. 이 때 유약의 색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비취색(翡翠色)과 흡사하고 투명에 가까우며 태토(胎土)의 색은 흐린 회색이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이 바탕이 된 녹청색이 된다. 고려사람들은 이를 비색(翡色)이라 하였다.  
  
 
고려청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세계 도자사상 독보적인 [[상감기법]]이다. 그릇의 모양을 만들고 반쯤 말랐을 때 조각 칼로 음각을 하고, 음각한 부분에 백토나 자토 등을 넣어 문양을 만든 다음 말려서 초벌구이를 하고, 다시 청자유를 입혀서 재벌구이를 하는 방식이다.  
 
고려청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세계 도자사상 독보적인 [[상감기법]]이다. 그릇의 모양을 만들고 반쯤 말랐을 때 조각 칼로 음각을 하고, 음각한 부분에 백토나 자토 등을 넣어 문양을 만든 다음 말려서 초벌구이를 하고, 다시 청자유를 입혀서 재벌구이를 하는 방식이다.  
  
[[청자]]의 원류인 중국에서도 고려청자의 명망은 높았다. 고려 청자의 기형은 식기, 다기, 주기, 제기, 불기, 문방구, 베게, 악기, 기와, 향합 등 다양하며, 그 시대 귀족들의 호사스런 생활상의 편린을 보여준다.   
+
[[청자]]의 원류인 중국에서도 고려청자의 명망은 높았다. 고려 청자의 기형은 식기, 다기, 주기, 제기, 불기, 문방구, 베개, 악기, 기와, 향합 등 다양하며, 그 시대 귀족들의 호사스런 생활상의 편린을 보여준다.   
  
조선시대는 [[임진왜란]] 전까지는 청자제작법의 변형인 [[분청사기]]와 [[백자]]가 함께 생산되었다. 왕실에서는 [[백자]]를 선호하여 세종시대부터 궁중의 그릇은 [[백자]]만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의 도자기 수요는 매우 컸다. 왕실, 관아, 향교, 민가의 제기와 식기 등으로 [[백자]]가 애용되었다. 조선조 [[백자]]는 처음 경기도 광주와 관악산·북한산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광주에는 왕실에 [[백자]]를 만들어 바치는 중앙관요가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 전국에 자기소 136개, 도기소 185개 등 321개의 가마가 있어 전국에 그릇을 공급했다.  
+
조선시대는 [[임진왜란]] 전까지는 청자제작법의 변형인 [[분청사기]]와 [[백자]]가 함께 생산되었다. 왕실에서는 [[백자]]를 선호하여 세종시대부터 궁중의 그릇은 [[백자]]만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의 도자기 수요는 매우 컸다. 왕실, 관아, 향교, 민가의 제기와 식기 등으로 [[백자]]가 애용되었다. 조선조 [[백자]]는 처음 경기도 광주와 관악산·북한산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광주에는 왕실에 [[백자]]를 만들어 바치는 중앙관요가 있었다. 세종대 기록에 의하면 각지에 자기소 136개, 도기소 185개 등 321개의 가마가 있어 전국에 그릇을 공급했다.  
  
 
상품백자는 우수한 태토와 유약을 선정하여 그릇을 빚고 이를 다시 갑(匣, 匣鉢, 개비)에 넣어 번조하여 그 형태와 질과 색이 아주 우수했다. 이를 갑번(匣燔)이라고 하였고, 왕실에서만 사용했다. [[백자]]의 장식은 코발트(회회청)로 그림을 그려 구운 청화백자가 있고, 철사와 진사를 사용하여 검은색과 붉은색을 내기도 했다.  
 
상품백자는 우수한 태토와 유약을 선정하여 그릇을 빚고 이를 다시 갑(匣, 匣鉢, 개비)에 넣어 번조하여 그 형태와 질과 색이 아주 우수했다. 이를 갑번(匣燔)이라고 하였고, 왕실에서만 사용했다. [[백자]]의 장식은 코발트(회회청)로 그림을 그려 구운 청화백자가 있고, 철사와 진사를 사용하여 검은색과 붉은색을 내기도 했다.  

2018년 1월 25일 (목) 22:12 판

Eng icon.JPG


한국의 도예 문화

한국은 도예의 선진국으로 각 시대마다 특색 있는 기법의 우수한 유물이 많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의 청자는 그 발생지 중국에서도 최고 품질을 인정 받을 정도로 우수했다. 오늘날 세계의 여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미술품 중에서는 도자기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든 것은 소성 온도에 따라 대체로 토기, 도기, 자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삼국시대는 토기가 많이 제작되었다. 토기 중 850∼950℃에서 구워낸 와질토기는 취사와 저장 용기와 분묘 부장품, 제사 용기로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의 토기 유물 중 기와, 치미, 벽돌 등 건축용 가공품에서 당대의 예술적 정취를 엿볼 수 있는 걸작들이 많이 발견된다. 1100℃ 이상에서 도질토기는 서기 3세기 후반에 낙동강 하류지역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여 4세기 초에 가야는 물론 백제와 신라에서도 생산되고, 이후 점진적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통일신라시대까지 생산되었고, 고려로 진입하면서 도기로 대체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도자기는 생활용기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청자가 이 시대에 생산되었다. 청자란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만든 형태 위에 철분이 1∼3% 정도 들어 있는 장석질(長石質) 유약(釉藥)을 입혀 1,250∼1,300℃ 정도에서 환원염으로 구워낸 자기이다. 이 때 유약의 색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비취색(翡翠色)과 흡사하고 투명에 가까우며 태토(胎土)의 색은 흐린 회색이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이 바탕이 된 녹청색이 된다. 고려사람들은 이를 비색(翡色)이라 하였다.

고려청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세계 도자사상 독보적인 상감기법이다. 그릇의 모양을 만들고 반쯤 말랐을 때 조각 칼로 음각을 하고, 음각한 부분에 백토나 자토 등을 넣어 문양을 만든 다음 말려서 초벌구이를 하고, 다시 청자유를 입혀서 재벌구이를 하는 방식이다.

청자의 원류인 중국에서도 고려청자의 명망은 높았다. 고려 청자의 기형은 식기, 다기, 주기, 제기, 불기, 문방구, 베개, 악기, 기와, 향합 등 다양하며, 그 시대 귀족들의 호사스런 생활상의 편린을 보여준다.

조선시대는 임진왜란 전까지는 청자제작법의 변형인 분청사기백자가 함께 생산되었다. 왕실에서는 백자를 선호하여 세종시대부터 궁중의 그릇은 백자만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의 도자기 수요는 매우 컸다. 왕실, 관아, 향교, 민가의 제기와 식기 등으로 백자가 애용되었다. 조선조 백자는 처음 경기도 광주와 관악산·북한산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광주에는 왕실에 백자를 만들어 바치는 중앙관요가 있었다. 세종대 기록에 의하면 각지에 자기소 136개, 도기소 185개 등 321개의 가마가 있어 전국에 그릇을 공급했다.

상품백자는 우수한 태토와 유약을 선정하여 그릇을 빚고 이를 다시 갑(匣, 匣鉢, 개비)에 넣어 번조하여 그 형태와 질과 색이 아주 우수했다. 이를 갑번(匣燔)이라고 하였고, 왕실에서만 사용했다. 백자의 장식은 코발트(회회청)로 그림을 그려 구운 청화백자가 있고, 철사와 진사를 사용하여 검은색과 붉은색을 내기도 했다.

분청사기의 전성기에는 활달한 기법으로 장식적인 효과가 큰 걸작들을 많이 생산했으나 임진왜란 때 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잡혀간 이후에는 생산이 끊어졌다.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의 도공들은 일본 각지에서 가마를 열어 일본 도예의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 때문에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도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임무근, 『도예』, 대원사, 2003.
김병억, 『도예장식기법』, 태학원, 2002.


『도예』는 도예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로 도예의 역사를 비롯한 도자, 성형, 장식, 유약과 시유 방법 등의 풍부한 자료를 소개한다.

『도예장식기법』은 도자기의 제작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식의 필요성을 단계별로 인지하고 각종 도자재료의 특성, 사용방법, 문양과 색상을 새기는 방법을 원색의 사진과 함께 설명하였다. 조각 장식, 화장토 장식, 물레성형시 장식, 점토판 장식, 전사지 장식 등 12개 장으로 설명하였다.


  • 고려청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정양모, 『고려청자』, 대원사, 1998.
장남원, 『고려중기 청자 연구』, 혜안, 2006.


『고려청자』는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화유산인 고려청자의 이모저모를 원색의 사진으로 살핀 책이다. 청자의 발생, 발전과 쇠퇴, 고려 도자 명문의 성격, 도자의 편년 유물 등을 다양한 청자의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고려중기 청자 연구』는 제목 그대로 고려중기의 청자를 연구한 책이다. 요업 기술적인 측면과 조형적인 측면을 각각 나누어 서술하면서, 동시대 청자의 형식 분석은 물론 고고학적 층위 관계와 동반 관계를 통한 양식적 고찰을 함께 시도하고 있다. 나아가 청자의 중요한 소비유적인 주거, 사찰, 분묘 등의 청자출토 현황을 살펴 청자의 생산지와의 관계 및 생산지에서의 제작 양상이 소비지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추론하였다.


  • 조선백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방병선,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 돌베개, 2002.
강경남, 『백자항아리(조선의 인과 예를 담다)』, 국립중앙박물관, 2010.
박은숙, 『시장으로 나간 조선백자』, 역사비평사, 2016.


조선 백자에는 조선 사대부와 왕실이 지향했던 완벽을 드러내지 않는 절제와 품격, 자유 분방함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에서는 조선 백자가 왕실 전용 그릇으로 채택된 과정과 배경, 제작 체제, 양식의 변천 및 제작 기술, 그리고 백자에 담긴 조선 고유의 아름다움과 역사성을 살펴본다.

『백자항아리(조선의 인과 예를 담다)』는 조선의 인과 예를 담은 백자에 대해 상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백자항아리는 단순한 저장용기 이상의 그릇으로 거기에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도자역사 가운데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백자를 주제로,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특히 친근한 항아리를 조선시대 도자공예의 성격과 특징을 되새기며 살펴보고 있다.

『시장으로 나간 조선백자』는 경매시장에서 수천, 수억을 호가하는 조선백자를 만들었던 사람들과 그 백자를 만들었던 곳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조선백자는 문화유산으로 남아 예술성을 뽐내지만, 정작 만들었던 사기장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책은 분원 자기업에 종사했던 하재 지규식이라는 공인의 '하재일기'를 통해 들여다 본,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도자기를 만들었던 곳, 곧 분원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도자기를 생산하고 판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