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와 신윤복: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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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는 당대의 이름난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의 제자였다.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운 것은 물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에 들어가게 되었다. 강세황은 김홍도에 대해 ‘근대 명수(近代名手)’ 또는 ‘우리나라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고 칭찬했다. 김홍도는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의 어진(御眞)과 왕세손(훗날의 정조)의 초상을 그렸다. 정조가 임금이 된 후 김홍도는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 데 몇 차례 참여하였다. 1781년에는 익선관본(翼善冠本)을, 1791년에는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렸다. 정조는 특히 김홍도를 총애하여 “그림 그리는 일과 관련된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라고 할 정도였다. | 김홍도는 당대의 이름난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의 제자였다.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운 것은 물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에 들어가게 되었다. 강세황은 김홍도에 대해 ‘근대 명수(近代名手)’ 또는 ‘우리나라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고 칭찬했다. 김홍도는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의 어진(御眞)과 왕세손(훗날의 정조)의 초상을 그렸다. 정조가 임금이 된 후 김홍도는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 데 몇 차례 참여하였다. 1781년에는 익선관본(翼善冠本)을, 1791년에는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렸다. 정조는 특히 김홍도를 총애하여 “그림 그리는 일과 관련된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라고 할 정도였다. | ||
− | 1788년에는 김홍도와 함께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응환(金應煥)과 더불어 금강산 등 영동 지방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명승지를 그려 임금에게 바쳤다. 김응환이 김홍도에게 그려준 시화첩 | + | 1788년에는 김홍도와 함께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응환(金應煥)과 더불어 금강산 등 영동 지방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명승지를 그려 임금에게 바쳤다. 김응환이 김홍도에게 그려준 시화첩 『금강전도』에 쓰인 글에 의하면 김홍도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도량이 넓고 성격이 활달해서 마치 신선과 같았다고 한다. |
===한국의 진경을 그리다=== | ===한국의 진경을 그리다=== | ||
− | 그의 화풍은 50세를 전후로 1기와 2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산수화의 경우 50세 이전에는 주로 화첩을 보고 중국의 정형화된 산수를 많이 그렸다. 또 인물로는 신선도를 그렸다. 굵고 힘차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옷자락 무늬,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 없이 천진한 얼굴을 한 작품 | + | 그의 화풍은 50세를 전후로 1기와 2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산수화의 경우 50세 이전에는 주로 화첩을 보고 중국의 정형화된 산수를 많이 그렸다. 또 인물로는 신선도를 그렸다. 굵고 힘차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옷자락 무늬,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 없이 천진한 얼굴을 한 작품 「군선도병(群仙圖屛, 삼성미술관 소장, 국보 제139호)」은 이 시기의 작품이다. |
50세 이후로는 한국적 정서가 어려 있는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즐겨 그렸다. 진경산수는 실제 경치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말한다. 그러면서 ‘단원법’이라는 세련되고 개성이 강한 독창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탁월한 공간 구성, 능숙하고도 강한 묵선(墨線)의 강조와 부드럽고도 조용한 담채(淡彩 : 엷은 채색)의 밝고 투명한 화면 효과는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김홍도 특유의 화풍이다. | 50세 이후로는 한국적 정서가 어려 있는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즐겨 그렸다. 진경산수는 실제 경치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말한다. 그러면서 ‘단원법’이라는 세련되고 개성이 강한 독창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탁월한 공간 구성, 능숙하고도 강한 묵선(墨線)의 강조와 부드럽고도 조용한 담채(淡彩 : 엷은 채색)의 밝고 투명한 화면 효과는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김홍도 특유의 화풍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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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는 농촌이나 전원 등 생활 주변의 풍경을 주로 그렸다. 씨름, 서당, 대장간, 벼 타작, 기와 잇기, 길쌈 등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모습, 풍속 등도 많이 그렸다. 간략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원형 구도 위에 표현된 그의 풍속화들은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와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경향이 되었다. | 만년에는 농촌이나 전원 등 생활 주변의 풍경을 주로 그렸다. 씨름, 서당, 대장간, 벼 타작, 기와 잇기, 길쌈 등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모습, 풍속 등도 많이 그렸다. 간략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원형 구도 위에 표현된 그의 풍속화들은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와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경향이 되었다. | ||
− | 김홍도의 대표작으로는 | + | 김홍도의 대표작으로는 『단원풍속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527호)』을 비롯해서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 개인 소장)』, 「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 간송미술관 소장)」 「선인기려도(仙人騎驢圖)」, 「단원도(檀園圖, 개인 소장)」, 『단원화첩(삼성미술관 소장)』,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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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신윤복도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김홍도의 영향으로 참신한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였지만 그는 그림에서 양반의 위선과 이중적인 태도를 풍자한 해학을 표현하기도 했다. 신윤복은 한량과 기녀 등 남녀 간의 낭만이나 애정을 다룬 풍속화를 그린 작가로 특히 유명하다. 남녀 간의 정취와 낭만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섬세한 선과 화려한 채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의 풍속화에 나타난 배경이나 인물 등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덕분에 조선 후기의 생활상과 살림살이, 복식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신윤복도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김홍도의 영향으로 참신한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였지만 그는 그림에서 양반의 위선과 이중적인 태도를 풍자한 해학을 표현하기도 했다. 신윤복은 한량과 기녀 등 남녀 간의 낭만이나 애정을 다룬 풍속화를 그린 작가로 특히 유명하다. 남녀 간의 정취와 낭만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섬세한 선과 화려한 채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의 풍속화에 나타난 배경이나 인물 등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덕분에 조선 후기의 생활상과 살림살이, 복식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 ||
− | 혜원은 과부, 기녀, 비구니, 의녀와 같은 소외 계층 여인들을 주제로 삼은 그림도 많이 그렸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갸름한 얼굴과 가는 눈썹, 요염하게 치켜 올라간 눈, 앵두 같은 입술, 희고 통통한 손과 피부 등을 가진, 아름답고 관능미 넘치는 여인들로 표현했다. 신윤복의 | + | 혜원은 과부, 기녀, 비구니, 의녀와 같은 소외 계층 여인들을 주제로 삼은 그림도 많이 그렸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갸름한 얼굴과 가는 눈썹, 요염하게 치켜 올라간 눈, 앵두 같은 입술, 희고 통통한 손과 피부 등을 가진, 아름답고 관능미 넘치는 여인들로 표현했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
− | 신윤복의 경우 작품에 언제 그린 그림인지를 밝히지 않아 그의 화풍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대표작으로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 + | 신윤복의 경우 작품에 언제 그린 그림인지를 밝히지 않아 그의 화풍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대표작으로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미인도」와 『풍속화첩』이 있다. 『풍속화첩』에는 「단오풍정(端午風情)」, 「연당(蓮塘)의 여인」, 「무무도(巫舞圖)」, 「산궁수진(山窮水盡)」, 「선유도(船遊圖)」 등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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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1=진준현, 『단원 김홍도 연구』, 일지사, 1999. | |참고문헌1=진준현, 『단원 김홍도 연구』, 일지사, 1999. | ||
|참고문헌2=오주석, 『단원 김홍도』, 솔, 2015. | |참고문헌2=오주석, 『단원 김홍도』, 솔, 2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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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1=백금남, 『소설 신윤복』, 미래인, 2008. | |참고문헌1=백금남, 『소설 신윤복』, 미래인, 2008. | ||
|참고문헌2=정유현, 『우리의 옛 그림: 신윤복 편』, 범우사, 2011. | |참고문헌2=정유현, 『우리의 옛 그림: 신윤복 편』, 범우사, 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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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풍속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조선후기 풍속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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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1= EBS 화인 제작팀, 『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지식채널, 2008. | |참고문헌1= EBS 화인 제작팀, 『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지식채널, 2008. | ||
|참고문헌2=윤진영,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관인, 사인, 서민 풍속화』, 다섯수레, 2015. | |참고문헌2=윤진영,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관인, 사인, 서민 풍속화』, 다섯수레, 2015. |
2018년 3월 6일 (화) 00:38 기준 최신판
김홍도와 신윤복: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와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은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두 사람 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를 개척한 대표적 화가로서 후대의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도화서(圖畫署)의 화원(畫員)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도화서는 왕실이나 양반들의 요청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국가가 만든 관청이다. 이곳에 소속된 화가를 화원이라고 했는데 도화서는 화원을 양성하는 기관이기도 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은 김홍도
김홍도는 당대의 이름난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의 제자였다.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운 것은 물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에 들어가게 되었다. 강세황은 김홍도에 대해 ‘근대 명수(近代名手)’ 또는 ‘우리나라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고 칭찬했다. 김홍도는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의 어진(御眞)과 왕세손(훗날의 정조)의 초상을 그렸다. 정조가 임금이 된 후 김홍도는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 데 몇 차례 참여하였다. 1781년에는 익선관본(翼善冠本)을, 1791년에는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렸다. 정조는 특히 김홍도를 총애하여 “그림 그리는 일과 관련된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라고 할 정도였다.
1788년에는 김홍도와 함께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응환(金應煥)과 더불어 금강산 등 영동 지방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명승지를 그려 임금에게 바쳤다. 김응환이 김홍도에게 그려준 시화첩 『금강전도』에 쓰인 글에 의하면 김홍도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도량이 넓고 성격이 활달해서 마치 신선과 같았다고 한다.
한국의 진경을 그리다
그의 화풍은 50세를 전후로 1기와 2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산수화의 경우 50세 이전에는 주로 화첩을 보고 중국의 정형화된 산수를 많이 그렸다. 또 인물로는 신선도를 그렸다. 굵고 힘차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옷자락 무늬,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 없이 천진한 얼굴을 한 작품 「군선도병(群仙圖屛, 삼성미술관 소장, 국보 제139호)」은 이 시기의 작품이다.
50세 이후로는 한국적 정서가 어려 있는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즐겨 그렸다. 진경산수는 실제 경치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말한다. 그러면서 ‘단원법’이라는 세련되고 개성이 강한 독창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탁월한 공간 구성, 능숙하고도 강한 묵선(墨線)의 강조와 부드럽고도 조용한 담채(淡彩 : 엷은 채색)의 밝고 투명한 화면 효과는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김홍도 특유의 화풍이다.
만년에는 농촌이나 전원 등 생활 주변의 풍경을 주로 그렸다. 씨름, 서당, 대장간, 벼 타작, 기와 잇기, 길쌈 등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모습, 풍속 등도 많이 그렸다. 간략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원형 구도 위에 표현된 그의 풍속화들은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와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경향이 되었다.
김홍도의 대표작으로는 『단원풍속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527호)』을 비롯해서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 개인 소장)』, 「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 간송미술관 소장)」 「선인기려도(仙人騎驢圖)」, 「단원도(檀園圖, 개인 소장)」, 『단원화첩(삼성미술관 소장)』,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등이 있다.
화려한 색채로 그린 남녀 풍속화
신윤복은 서자 출신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족보에도 올리지 않은 중인 신분이었는데 특히 종조부와 아버지 신한평 같은 화원이 많이 나왔다.신한평은 영조의 어진을 두 번이나 그릴 정도로 인정 받는 화가였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신윤복도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김홍도의 영향으로 참신한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였지만 그는 그림에서 양반의 위선과 이중적인 태도를 풍자한 해학을 표현하기도 했다. 신윤복은 한량과 기녀 등 남녀 간의 낭만이나 애정을 다룬 풍속화를 그린 작가로 특히 유명하다. 남녀 간의 정취와 낭만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섬세한 선과 화려한 채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의 풍속화에 나타난 배경이나 인물 등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덕분에 조선 후기의 생활상과 살림살이, 복식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혜원은 과부, 기녀, 비구니, 의녀와 같은 소외 계층 여인들을 주제로 삼은 그림도 많이 그렸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갸름한 얼굴과 가는 눈썹, 요염하게 치켜 올라간 눈, 앵두 같은 입술, 희고 통통한 손과 피부 등을 가진, 아름답고 관능미 넘치는 여인들로 표현했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신윤복의 경우 작품에 언제 그린 그림인지를 밝히지 않아 그의 화풍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대표작으로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미인도」와 『풍속화첩』이 있다. 『풍속화첩』에는 「단오풍정(端午風情)」, 「연당(蓮塘)의 여인」, 「무무도(巫舞圖)」, 「산궁수진(山窮水盡)」, 「선유도(船遊圖)」 등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김홍도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진준현, 『단원 김홍도 연구』, 일지사, 1999. |
• 오주석, 『단원 김홍도』, 솔, 2015. |
『단원 김홍도 연구』는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화가 중의 한명인 단원 김홍도 (1745-1806)의 생애와 미술사상, 작품을 고찰한 연구서이다. 생애와 교유를 간략히 살피고 일반 산수화, 금강 산도와 진경산수화, 인물화, 영모화, 화조화, 기타 회화로 나누어 사진과 함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단원 김홍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옛 화가 김홍도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는 책이다. 1995년에 출간된 김홍도 탄신 250주년기념 특별전 논고집 『단원 김홍도』를 저본으로 삼은 책이다. 체제와 표현 방식 가운데 장점을 취하고, 판형을 키워 김홍도의 작품을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김홍도에 관한 모든 기록을 총망라하여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하고, 체계적인 구성 가운데 쉽게 서술함으로써 김홍도에 대한 정확하고 일관된 인상을 제시한다. 또한 관련 기록의 행간에 엿보이는 김홍도라는 인물의 됨됨이와 품격, 즉 예술적 성과를 넘어서는 풍부한 인간적인 매력을 함께 전해준다. 김홍도의 전모를 크게 서화가의 면모, 풍류인의 면모, 선인의 면모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 신윤복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백금남, 『소설 신윤복』, 미래인, 2008. |
• 정유현, 『우리의 옛 그림: 신윤복 편』, 범우사, 2011. |
『소설 신윤복』은 조선의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신윤복이 김홍도의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는 설정 아래 시작된다. 유교적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에 인간의 본성과 예술의 본질을 솔직하게 표현했던 신윤복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또한 강세황, 김홍도, 최북, 김득신 등 조선 후기 대가들의 작품 세계를 함께 복원해냈다. 신윤복의 그림과 함께 수록된 그들의 대표작을 본문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우리의 옛 그림: 신윤복 편』은 한 시대를 앞서 살았던 배포 큰 대장부, 신윤복의 작품과 함께 풍속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옛 그림에 부연해설을 몇 마디씩 덧붙인 그림책 형식의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 조선후기 풍속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EBS 화인 제작팀, 『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지식채널, 2008. |
• 윤진영,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관인, 사인, 서민 풍속화』, 다섯수레, 2015. |
『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는 EBS에서 방송되었던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방송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세 풍속화가의 독특한 이력과 그들만의 개성적인 미술 기법상의 비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세 명의 풍속화가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들이 조선 후기 근대라는 시대를 어떻게 뜨겁게 살면서 실천했는지, 교과서나 그림 분석에 머물렀던 여타 미술 교양서가 전혀 말해주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작품을 역추적해가면서, 조선 후기 세 풍속화가가 나름의 방식으로 근대를 도입하여 근대를 살아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관인, 사인, 서민 풍속화』는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사회를 살아간 선조들의 다양한 삶을 만나게 된다. 풍속화를 저술한 윤진영 교수는 고전의 바다 장서각에서 역사연구와 미술사의 기초역량을 익힌 후 한국회화사로 미술사 석·박사 학위를 받아, 이제까지 접해 보기 쉽지 않았던 관인, 사인, 서민 풍속화를 총망라한 다양한 그림을 진솔한 설명을 겻 들여 조선사회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