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로 독립운동을 하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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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울한 현실에서의 자아 성찰=== | ||
+ |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한국을 강제로 점령했던 일본은 1930년대 말기부터 한국 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는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하던 이 때, 심한 검열로 원고들이 삭제되기도 했지만 윤동주는 굴하지 않고 열심히 시를 썼다. 그의 시 세계는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 성찰을 주로 그리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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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를 다니다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학교를 옮겼다. 이듬해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학교가 문을 닫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를 졸업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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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창작 활동은 일제의 탄압이 심했던 연희전문 시절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당시 작품으로는 조선일보 학생란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연희전문학교 교지 <문우(文友)>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 그의 사후인 1946년 <경향신문>에 발표된 시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있다. 이 시기에 쓰인 시들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역사 감각을 지닌 독특한 성찰과 사색의 세계를 보여준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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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용을 피하려 선택한 일본 유학=== | ||
+ |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반일 의식이 투철했지만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면 일본의 전쟁에 끌려가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유학을 택했다. 그리고 유학을 가기 위해 창씨개명을 했다. 이때의 부끄러운 심정을 윤동주는 「참회록」이라는 시로 남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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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회록」은 망국민의 삶을 부끄러워하고 치열한 자기 반성과 의지를 나타낸 시이다. 치욕스러운 역사에 대항하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무기력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성찰의 매개체는 거울이다.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비춰진, 망국민으로서의 자신의 얼굴이 욕됨을 느끼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재 삶에 대해 참회의 글을 쓴다. 더 나아가 조국 광복이 된 '그 어느 즐거운 날’에 지금 쓰는 참회록에 대해 다시 참회할 것을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다음은 시 「참회록」의 전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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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 ||
+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
+ |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 ||
+ | 이다지도 욕될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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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
+ |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 ||
+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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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
+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
+ |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
+ |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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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
+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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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
+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
+ |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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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안유지법으로 시인을 죽인 일본=== | ||
+ | 1942년 일본에서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가을에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 함께 유학 간 동갑내기 사촌 송몽규와 평소 민족의 현실과 독립에 대하여 자주 토론을 나누던 윤동주는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하숙집을 감시하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던 경찰은 윤동주와 송몽규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였다. 1944년 2월 두 사람 모두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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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로부터 1년 후 1945년 2월 16일과 3월 7일, 윤동주와 송몽규는 29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송몽규는 감옥에 갇힌 후 매일 밤 의문의 주사를 맞았다고 친척들에게 말했다. 이를 근거로 윤동주와 송몽규가 생체 실험을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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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졸업 기념으로 열아홉 편의 시를 모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다. 이때 서시(序詩)까지 썼지만 이루지 못하고 자필로 옮겨 적은 복사본 세 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한 부씩 주고 자신이 한 부를 가졌다. 1945년 해방 후 정병욱 등이 다른 유고와 함께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유고 시집을 발간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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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참고문헌'''== | ||
+ | *'''윤동주의 생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
+ | {{참고문헌 | ||
+ | |참고문헌1=송우혜, 『윤동주 평전』, 서정시학, 2014. | ||
+ | |참고문헌2=류양선, 『윤동주 순결한 영혼』, 북페리타, 2015. | ||
+ | }} | ||
+ | '''『윤동주 평전』'''은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 함께 살아간 다채로운 삶의 자취, 북간도의 역사와 당시의 시대상황, 일경의 극비취조문서, 일본 경도재판소의 판결문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들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예리한 분석을 통해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시를 정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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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순결한 영혼』'''에서는 윤동주의 생애와 당시의 시대 상황에 유의하면서, 시인이 걸어간 영혼의 여정을 따라가 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 여정의 맥락 안에서, 시인의 시편들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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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의 작품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
+ | {{참고문헌 | ||
+ | |참고문헌1=윤동주, 『윤동주 전 시집』, 스타북스, 2017. | ||
+ | }} | ||
+ | 이제까지 발간된 윤동주 시집 및 작품집은 많지만, 윤동주의 작품 전체를 한 권에 담은 책은 없었다. 이에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윤동주의 전체 작품을 담은 작품 전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윤동주 전 시집』'''에는 소실되지 않은 윤동주의 시와 수필 전체뿐만 아니라, 윤동주를 위해 쓰여진 서문과 후기와 발문 등도 모두 취합하여 실었다. 『윤동주 전 시집』에 모두 살려 놓은 정지용, 유영, 강처중 등의 추모 글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작품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에는 1948년 초판본 전문을 실었고, 2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는 1948년 본에 실려 있는 시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을 실었으며, 3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79」는 역시 1948년 본과 1955년 본에 수록된 작품 외의 시 작품을 담았다. 4부 「나중에 발굴된 시」에는 기존 윤동주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 8편을 실었다. 1부부터 3부까지의 시들은 당시 발간된 본문 순서대로 실었으며, 4부는 작품이 쓰인 해를 알 수 없는 경우 외에는 창작 년도에 따라 실었다. | ||
[[분류:한국의 중요 인물]] | [[분류:한국의 중요 인물]] |
2018년 3월 13일 (화) 11:24 기준 최신판
윤동주: 시로 독립운동을 하다
암울한 현실에서의 자아 성찰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한국을 강제로 점령했던 일본은 1930년대 말기부터 한국 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는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하던 이 때, 심한 검열로 원고들이 삭제되기도 했지만 윤동주는 굴하지 않고 열심히 시를 썼다. 그의 시 세계는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 성찰을 주로 그리고 있었다.
중국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를 다니다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학교를 옮겼다. 이듬해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학교가 문을 닫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를 졸업하였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창작 활동은 일제의 탄압이 심했던 연희전문 시절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당시 작품으로는 조선일보 학생란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연희전문학교 교지 <문우(文友)>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 그의 사후인 1946년 <경향신문>에 발표된 시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있다. 이 시기에 쓰인 시들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역사 감각을 지닌 독특한 성찰과 사색의 세계를 보여준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징용을 피하려 선택한 일본 유학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반일 의식이 투철했지만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면 일본의 전쟁에 끌려가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유학을 택했다. 그리고 유학을 가기 위해 창씨개명을 했다. 이때의 부끄러운 심정을 윤동주는 「참회록」이라는 시로 남겼다.
「참회록」은 망국민의 삶을 부끄러워하고 치열한 자기 반성과 의지를 나타낸 시이다. 치욕스러운 역사에 대항하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무기력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성찰의 매개체는 거울이다.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비춰진, 망국민으로서의 자신의 얼굴이 욕됨을 느끼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재 삶에 대해 참회의 글을 쓴다. 더 나아가 조국 광복이 된 '그 어느 즐거운 날’에 지금 쓰는 참회록에 대해 다시 참회할 것을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다음은 시 「참회록」의 전문이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치안유지법으로 시인을 죽인 일본
1942년 일본에서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가을에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 함께 유학 간 동갑내기 사촌 송몽규와 평소 민족의 현실과 독립에 대하여 자주 토론을 나누던 윤동주는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하숙집을 감시하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던 경찰은 윤동주와 송몽규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였다. 1944년 2월 두 사람 모두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혔다.
그로부터 1년 후 1945년 2월 16일과 3월 7일, 윤동주와 송몽규는 29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송몽규는 감옥에 갇힌 후 매일 밤 의문의 주사를 맞았다고 친척들에게 말했다. 이를 근거로 윤동주와 송몽규가 생체 실험을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기도 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졸업 기념으로 열아홉 편의 시를 모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다. 이때 서시(序詩)까지 썼지만 이루지 못하고 자필로 옮겨 적은 복사본 세 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한 부씩 주고 자신이 한 부를 가졌다. 1945년 해방 후 정병욱 등이 다른 유고와 함께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유고 시집을 발간하였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윤동주의 생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송우혜, 『윤동주 평전』, 서정시학, 2014. |
• 류양선, 『윤동주 순결한 영혼』, 북페리타, 2015. |
『윤동주 평전』은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 함께 살아간 다채로운 삶의 자취, 북간도의 역사와 당시의 시대상황, 일경의 극비취조문서, 일본 경도재판소의 판결문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들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예리한 분석을 통해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시를 정리한다.
『윤동주 순결한 영혼』에서는 윤동주의 생애와 당시의 시대 상황에 유의하면서, 시인이 걸어간 영혼의 여정을 따라가 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 여정의 맥락 안에서, 시인의 시편들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 윤동주의 작품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윤동주, 『윤동주 전 시집』, 스타북스, 2017. |
이제까지 발간된 윤동주 시집 및 작품집은 많지만, 윤동주의 작품 전체를 한 권에 담은 책은 없었다. 이에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윤동주의 전체 작품을 담은 작품 전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윤동주 전 시집』에는 소실되지 않은 윤동주의 시와 수필 전체뿐만 아니라, 윤동주를 위해 쓰여진 서문과 후기와 발문 등도 모두 취합하여 실었다. 『윤동주 전 시집』에 모두 살려 놓은 정지용, 유영, 강처중 등의 추모 글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작품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에는 1948년 초판본 전문을 실었고, 2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는 1948년 본에 실려 있는 시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을 실었으며, 3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79」는 역시 1948년 본과 1955년 본에 수록된 작품 외의 시 작품을 담았다. 4부 「나중에 발굴된 시」에는 기존 윤동주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 8편을 실었다. 1부부터 3부까지의 시들은 당시 발간된 본문 순서대로 실었으며, 4부는 작품이 쓰인 해를 알 수 없는 경우 외에는 창작 년도에 따라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