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한국인 이민사: 모국을 떠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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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인 이민사 – 모국을 떠난 사람들
집필자 황정욱
제목수정안 한국인 이민사 – 모국을 떠나 낯선 땅으로
교열자 유안리
장소/공간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캐나다, 하와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호주, 뉴질랜드
사건 대한제국강제합병, 고려인강제이주, 서독 광부 간호원파견, 남미이민
기록물 한국 이민사 박물관(http://mkeh.incheon.go.kr/)
개념용어 재외동포, 재외국민



1차 원고

한국인은 세계 175개국에 퍼져 살고 있다. 이른바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는 규모나 인구비율에서 세계적으로 상위 랭킹에 들어간다.

한국 외교부는 2014년 말 기준 재외동포를 총 718만 명으로 집계했다. 이중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은 약 247만 명, 외국국적을 취득한 재외동포가 471만 명이다. 남북한 인구의 거의 10%에 육박하는 숫자이다.

지역별로는 중국이 258만 명, 미국이 224만 명, 일본이 86만 명,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크스탄 등 구 소련지역이 50만,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포함된 남아시아태평양 지역이 51만 명, 남미가 10만 명 순이다.

한국의 이민사는 19세기 중엽 조선왕조 말 가난과 학정을 피해 북부지방의 한국인들이 중국 동삼성의 북간도지역으로 이주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면서 많은 애국지사와 농토를 잃은 농민들이 동삼성과 러시아 원동지방으로 대거 이주하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오랫동안 한국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소련 스탈린 정부는 1937년 겨울 독립운동을 하거나 일본인과 접촉한다는 등의 이유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만여 명을 화물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많은 사람이 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목숨을 잃었다. 소련이 붕괴되자 고려인들은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서로 다른 나라에 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국적 고려인이 5만여 명 발생했다. 한국 정부는 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을 맞은 2007년부터 무국적 고려인 지원사업에 나서 현지 국적취득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생계를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저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 매년 8만~15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5년엔 62만 명을 넘었다. 1938년부터는 강제징용, 강제징병으로 수많은 한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들이 전후 일본의 한인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재일교포 1세대를 형성했다.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후에는 조선인들의 영농개척이주가 장려되어 한반도 남쪽의 가난한 농민들이 많이 이주하였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날 때 만주에는 거의 2백만에 가까운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조선인들이 현지에 남아 조선족 자치구를 이루며 살았다.

재외 한국인의 30%를 차지 하는 미주 한인들의 이주사는 1903-05년 사탕수수농장의 계약노동자로 한인 노동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하기 이전에 유학생, 상인 등168명의 한인이 미국에 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과 같은 한국개화의 초석을 다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선각자들이 있다.

1950-53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1965년 사이에는 전쟁고아와 미군과 결혼한 여성, 그리고 유학생, 연구원, 간호사, 의사 등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학생과 연구원들 중 상당 수가 공부와 훈련을 마치고 미국에 정착하였다.

1965년 미국 이민법이 년 대폭 개정되어 문호가 활짝 열리면서 한국인의 가족이민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가속도가 붙어 진행된 한인 이민은 매년 수 만 명씩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 이민 온 한인의 수는 공식적으로 1백9만에 이른다.

1967년에는 캐나다의 이민문호가 한인에게 열리면서 한국에서 직접 이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2014년 말 캐나다의 재외국민은 22만 명에 이른다.

1960년대에는 정부주도아래 계획이민이 추진되어 많은 사람들이 남미로 이민을 갔다. 서독에 광부와 간호원으로 일하러 갔다가 현지에서 정착한 사람도 많다.

한국이 산업화에 성공하여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오늘날 한국인들은 대기업의 해외주재, 유학과 연수, 해외취업 등의 목적으로 해외로 나가고 있다.

연구원 1차 검토

검토의견
추가 자료로 한국 이민사 박물관(http://mkeh.incheon.go.kr/) 제시될 수 있다. 시기별 이민역사도 중요하지만, 1980년대 이전 생존을 위해 이민을 떠난 한국인들이 미국, 캐나다, 남미 등의 국가로의 이민역사를 통해 어떻게 정착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내용도 보완될 필요가 있다. 또한 가능하다면 초창기의 생존을 위해 떠난 한국의 이민성격이 1980년대 이민의 성격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1980년대 이후 한국이 이민 송출국에서 이민 수용국으로 변모한 점과 그 원인에 대해서도 보완되었으면 한다.
- 재외국민의 집계를 2014년 말을 기준으로 하였는데 이왕이면 2016년 통계를 사용하였으면 한다.

- 1950-53년 ~~ 전쟁고아(와 혼혈아의 미국 입양)와 미군과 결혼한 여성 ~~
- 캐나다 이주 이전에 남미 이주부터 썼으면 좋겠고, 남미 이민에 대한 이야기는 1905년 멕시코 애니깽 농장 이민으로 시작해야 한다. 미국 이민을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시작한 것처럼.

- 남미와 별도로 유럽에 정착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유럽 전체 이민자 수와 한국전쟁 이후 전쟁고아 입양관련 내용, 서독 광부와 간호원, 유학과 취직 이후 정착 등의 이민자 구분을 해서 각 지역별 이민자 숫자도 제시하여 주었으면 한다.


수정 원고

한국외교부의 2015년 집계에 의하면 전세계 175개국에 718만 명의 한국인들이 퍼져 살고 있다. 이중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은 약 247만 명, 외국국적을 취득한 재외동포가 471만 명이다. 남북한 인구의 거의 10%에 육박하는 숫자이다.

지역별로는 중국이 258만 명, 미국이 224만 명, 일본이 86만 명,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구 소련지역이 50만,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포함된 남아시아태평양 지역이 51만 명, 캐나다 22만, 남미가 10만 명이다.

한국의 이민사는 19세기 중엽 조선왕조 말 북부지방의 한국인들이 중국 동삼성의 북간도지역으로 이주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면서 많은 애국지사와 농토를 잃은 농민들이 동삼성과 러시아 원동지방으로 대거 이주하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오랫동안 한국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생계를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저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 매년 8만~15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5년엔 62만 명을 넘었다. 1938년부터는 강제징용, 강제징병으로 수많은 한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들이 전후 일본의 한인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재일교포 1세대를 형성했다.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후에는 조선인들의 영농개척이주가 장려되어 한반도 남쪽의 가난한 농민들이 많이 이주하였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날 때 만주에는 거의 2백만에 가까운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조선인들이 현지에 남아 조선족 자치구를 이루며 살았다.

소련 스탈린 정부는 1937년 겨울 독립운동을 하거나 일본인과 접촉한다는 등의 이유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만여 명을 화물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많은 사람이 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목숨을 잃었다. 소련이 붕괴되자 고려인들은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서로 다른 나라에 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국적 고려인이 5만여 명 발생했다. 한국 정부는 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을 맞은 2007년부터 무국적 고려인 지원사업에 나서 현지 국적취득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외 한국인의 30%를 차지 하는 미주 한인들의 이주사는 1903-05년 사탕수수농장의 계약노동자로 한인 노동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하기 이전에 유학생, 상인 등168명의 한인이 미국에 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과 같은 한국개화의 초석을 다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선각자들이 있다.

1950-53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1965년 사이에는 전쟁고아와 미군과 결혼한 여성, 그리고 유학생, 연구원, 간호사, 의사 등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학생과 연구원들 중 상당 수가 학업과 훈련을 마치고 미국에 정착하였다.

1965년 미국 이민법이 년 대폭 개정되어 문호가 활짝 열리면서 한국인의 가족이민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가속도가 붙어 진행된 한인 이민은 매년 수 만 명씩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은 공식적으로 1백9만에 이른다.

1967년에는 캐나다의 이민문호가 한인에게 열리면서 한국에서 직접 이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2014년 말 캐나다의 재외국민은 22만 명에 이른다.

1960년대에는 정부주도아래 계획이민이 추진되어 많은 사람들이 남미로 이민을 갔다. 이중 상당수는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서독에 광부와 간호원으로 일하러 갔다가 현지에서 정착한 사람도 많다.

한국이 산업화에 성공하여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오늘날 한국인들은 주로 대기업의 해외주재, 유학과 연수, 해외취업 등의 목적으로 해외로 나가고 있다.

또한 국제결혼과 취업을 위해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하고 있다. 법무부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국내 체류외국인은 1,899,519명이며, 최근 5년간 매년 8.6%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적별로는 중국이 955,871명(50.3%)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138,660명(7.3%), 베트남136,758명(7.2%), 타이 93,348명(4.9%), 필리핀 54,977명(2.9%), 일본 47,909(2.5%)순이다.

체류목적별로 살펴보면, 방문취업자 등 취업자격 체류외국인 625,129, 재외동포 328,187명(17.3%), 결혼이민자 151,608명(8.0%), 영주 123,255명(6.5%)등이다.

연구원 2차 검토

검토의견
“체류목적별로 살펴보면, 방문취업자 등 취업자격 체류외국인 625,129, 재외동포 328,187명(17.3%), 결혼이민자 151,608명(8.0%), 영주 123,255명(6.5%)등이다. “는 삭제해도 좋을 것 같음.


교열본

700만 명이 넘는 재외 한인

한국외교부의 2015년 집계에 의하면 전 세계 175개국에 718만 명의 한국인들이 퍼져 살고 있다. 이 중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은 약 247만 명, 외국국적을 취득한 재외동포가 471만 명이다. 남북한 인구의 거의 10%에 육박하는 숫자이다.

지역별로는 중국에 258만 명, 미국에 224만 명, 일본에 86만 명,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구 소련지역에 50만,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포함된 남아시아태평양 지역에 51만 명, 캐나다 22만, 중남미에 10만 명이다. 유럽에는 63만 명, 중동 지역에 2만 6천 명, 아프리카에도 만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식민지를 떠난 사람들

한국의 이민사는 19세기 중엽 조선왕조 말 한반도 북부지방의 한국인들이 중국 북간도 지역으로 이주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자 많은 애국지사와 농토를 잃은 농민들이 만주지역 동북삼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원동지방으로 대거 이주하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오랫동안 한국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강제합병으로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더욱 어려워진 생계를 위하여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저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 매년 8만~15만 명이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1935년엔 62만 명을 넘었다. 1938년부터는 강제징용, 강제징병으로 수많은 한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들이 전후 일본에서 한인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재일교포 1세대를 형성했다.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후에는 조선인들의 영농개척이주가 장려되어 한반도 남쪽의 가난한 농민들이 많이 이주하였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날 때 만주에는 거의 2백만에 가까운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조선인들이 현지에 남아 조선족 자치구를 이루며 살았다.

소련 스탈린 정부는 1937년 겨울 독립운동을 하거나 일본인과 접촉한다는 등의 이유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만여 명을 화물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많은 사람이 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목숨을 잃었다. 소련이 붕괴되자 고려인들은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서로 다른 나라에 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국적 고려인이 5만여 명 발생했다. 한국 정부는 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을 맞은 2007년부터 무국적 고려인 지원사업에 나서 현지 국적취득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미 대륙 이민자 증가

재외 한국인의 30%를 차지하는 미주 한인들의 이주 역사는 유학생, 상인 등168명의 한인이 미국에 오면서 시작되었다. 1903-05년 사탕수수농장의 계약노동자로 한인 노동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하기 이전에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과 같이 한국개화의 초석을 다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선각자들이 있다.

1950-53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1965년 사이에는 전쟁고아 및 미군과 결혼한 여성들이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한편으로는 유학생, 연구원, 간호사, 의사 등이 미국 이민을 선택했다. 유학생과 연구원들 중 상당수는 학업과 훈련을 마치고 미국에 정착하였다.

1965년 미국 이민법이 대폭 개정되어 문호가 활짝 열리면서 한국인의 가족이민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가속도가 붙은 한인 이민은 매년 수 만 명씩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은 공식적으로 1백9만에 이른다.

1967년에는 캐나다의 이민문호가 한인에게 열리면서 한국에서 직접 이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2014년 말 캐나다의 재외국민은 22만 명에 이른다.

이민 가는 한인, 이민 오는 외국인

일제강점기의 특수한 상황 이후 한국의 이민은 한국 정부가 이민정책을 수립하고 이민을 국가 차원에서 장려하면서 시작되었다. 1962년에 한국 정부는 남미, 서유럽, 중동, 북미 국가들과 계약을 맺고 집단이민을 시작했다. 남미로 이민을 갔던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서독에 정착한 이민자들은 광부와 간호원으로 일하러 갔다가 현지에서 정착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이 산업화에 성공하여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오늘날 한국인들은 주로 대기업의 해외주재, 유학과 연수, 해외취업 등의 목적으로 해외로 나가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 일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결혼이민자로 한국 이민을 신청하는 외국인들 수가 빠르게 늘었다. 한국법무부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국내 체류외국인은 1,899,519명이며, 최근 5년간 매년 8.6%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955,871명(50.3%)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138,660명(7.3%), 베트남136,758명(7.2%), 타이 93,348명(4.9%), 필리핀 54,977명(2.9%), 일본 47,909(2.5%)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