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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7일 (화) 23:07 판

틀:공간정보 김지선

개요

해인사(海印寺)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서 팔만대장경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150여 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리고 있다. 불교삼보사찰 중 법보(法寶) 사찰로 유명하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의 본존불은 비로자나불이다.

역사

남북국 시대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1]이 창건했다.[2] 그들은 가야산에 초막을 세우고 참선을 했는데 등창으로 고생하던 애장왕의 왕비의 병을 낫게 해주어 애장왕이 절을 창건하도록 했다. 순응과 이정 이후 ‘결언대덕’이란 승려가 사찰 창건을 계속했고 주지가 되었다.[3]

918년에는 승통희랑[4]이라는 당시 해인사 주지가 고려를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고려 태조가 국찰로 삼았다. 대각국사 의천이 《속장경》의 간행을 시도한 곳이다.

해인사는 5차례가 넘는 화재로 인해 여러 번 중창되었으며, 그에 따라 창건 당시의 건축은 알 수 없고, 현재의 전각은 대부분 조선 말기 때의 것이며, 3층 석탑·석등 등이 현존한다. 1481년 조선 성종 12년 이후 8년간 중건하였고,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국보로 지정된 장경판전(藏經板殿)에는 유명한 《고려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는 1993년성철 스님이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

해인사는 광복한국전쟁 때 위기를 맞게 된다. 1951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대한민국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퇴각하지 못하고 남은 1천여 명의 북한군 잔당들이 해인사를 중심으로 게릴라 전을 전개했다. 이에 UN군에서는 폭격기 4대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당시 공군 편대장이었던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소실될 것을 우려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로써 해인사는 폭격당할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김영환은 그 공으로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했고, 현재 해인사 경내에는 그를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지도

가상현실

관련 기록

기록유산과의 연관성

승탑비와의 연관성

해인사는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가 위치한 절이다.

노드 및 관계

노드 관계 클래스 노드 설명
해인사 includes 기록 고려대장경 고려대장경해인사에 소장된 기록이다.
해인사 includes 승탑비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해인사에 위치한 승탑비다.

함께 보기

세계기록유산, 세계문화유산

해인사에 보존되어있는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은 현재 세계기록유산,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각 지정되어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동양 각국의 대장경과 비교할 때 오탈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글꼴이 한 사람이 새긴 듯이 일정해서 자체가 예술품처럼 느껴지는 고려대장경이다.

해인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장경판전도 외양의 아름다움은 물론 그 안에 숨겨진 과학적 지혜가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두 가지 요소로 인해 해인사는 법보종찰이라 불린다. 불법승 삼보 가운데 부처님의 말씀을 간직한 곳이라는 뜻이다.

성철스님 이래 현대 한국불교사에서는 법보뿐 아니라 법통까지도 해인사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위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스님이 머물고 배출되면서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한국불교의 중심이자 상징 같은 절이 바로 해인사이기 때문이다.

해인사의 성보문화재

해인사는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20여 점이나 된다.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해서 제52호인 장경판전 그리고 국보 제206호로 지정된 고려목판까지 국보가 3점이며, 보물이 20여 점에 사적과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자료 등이 각 1점씩 있다. 다음은 해인사가 보유한 국가지정문화재 목록이다.

국보

보물

기타 문화재

참고문헌

각주

  1. 順應과 利貞
  2.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3. 決言大德
  4. 僧統希朗

추가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