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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김씨와 세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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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은 [[순원왕후]] 승하 후에는 [[김조순 | 김조순(金祖淳)]]을 석실서원에 추배하도록 하였다. 1858년(철종 9)에 [[순조]]와 순원왕후에 대한 존호를 추상하자 신료들은 순조의 공덕 중 1811년(순조 11) 발생하였던 [[홍경래의 난 | 홍경래(洪景來) 난]]을 평정시킨 것을 강조하며 이때 참여했던 신하들의 공을 구별하여 공신으로 대우하자고 하였다. 이는 홍경래 난의 진압을이 김조순의 주도하에 이뤄졌던 만큼 안동 김씨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제안이었다. 철종의 이 같은 조처는 안동 김씨 일가를 대표로 하는 노론(老論)의 의리를 강화하는 것이자, 정치적 주도권을 차지했던 안동 김씨의 행보를 인정하고 비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철종은 [[순원왕후]] 승하 후에는 [[김조순 | 김조순(金祖淳)]]을 석실서원에 추배하도록 하였다. 1858년(철종 9)에 [[순조]]와 순원왕후에 대한 존호를 추상하자 신료들은 순조의 공덕 중 1811년(순조 11) 발생하였던 [[홍경래의 난 | 홍경래(洪景來) 난]]을 평정시킨 것을 강조하며 이때 참여했던 신하들의 공을 구별하여 공신으로 대우하자고 하였다. 이는 홍경래 난의 진압을이 김조순의 주도하에 이뤄졌던 만큼 안동 김씨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제안이었다. 철종의 이 같은 조처는 안동 김씨 일가를 대표로 하는 노론(老論)의 의리를 강화하는 것이자, 정치적 주도권을 차지했던 안동 김씨의 행보를 인정하고 비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적대세력 측출
 
*적대세력 측출
철종대는 안동 김씨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한편, 다른 세력의 정치적 입지 확보를 차단하였다. 순원왕후는 국상 중에 적대 세력인 [[조병현]]을 사사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안동 김씨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은 철종조의 여러 사안에서 위협을 될 만한 세력을 제거하면서 세도정치의 실질적 주인이 수 있었다. 철종은 왕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고자 하였으나,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에 의해 즉위했기 때문에 스스로 왕권 강화를 추진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ref>이민아, "[http://contents.koreanhistory.or.kr/id/N0096 철종]",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사콘텐츠』<sup>online</sup></online></html>, 역사편찬위원회.</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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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가 국상 중에  적대 세력인 [[조병현]]을 사사하도록 하는 둥 철종 대에는 안동 김씨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한편, 다른 세력의 정치적 입지 확보를 차단하였다. 이에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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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은 철종조의 여러 사안에서 위협을 될 만한 세력을 제거하면서 세도정치의 실질적 주인이 수 있었다. 철종은 왕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고자 하였으나,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에 의해 즉위했기 때문에 스스로 왕권 강화를 추진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ref>이민아, "[http://contents.koreanhistory.or.kr/id/N0096 철종]",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사콘텐츠』<sup>online</sup></online></html>, 역사편찬위원회.</ref>
  
 
===민란과 옥사===
 
===민란과 옥사===

2017년 9월 24일 (일) 04:29 판

조선 철종(朝鮮 哲宗)
대표명칭 조선 철종
한자표기 朝鮮 哲宗
생몰년 1831-1863
본관 전주(全州)
이칭 이변(李昪), 이원범(李元範)
대용재(大勇齋)
도승(道升)
배우자 명순왕후(明純王后)
전계대원군 이광(全溪大院君 李㼅)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
전임자 조선 헌종
후임자 조선 고종


정의

철종(哲宗, 1831∼1863)은 조선 제25대 왕이다.

내용

생애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철종인 이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1849년 6월 6일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 純祖妃, 金祖淳의 딸)의 명으로 정조의 손자, 순조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 때 나이 19세였다. 학문과는 거리가 먼 농부로서, 1844년(헌종 10) 형인 회평군 이명(懷平君 李明)의 옥사로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명을 받아 봉영의식(奉迎儀式)을 행한 뒤 6월 8일덕완군(德完君)에 봉해졌다. 이어 이튿날인 6월 9일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에서 관례(冠禮)를 행한 뒤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하였다. 나이가 어리고 농사짓다가 갑자기 왕이 되었으므로 처음에는 대왕대비(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51년(철종 2) 9월에는 대왕대비의 근친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明純王后)로 맞았다. 그 뒤 김문근이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이 되어 왕비의 아버지로서 왕을 돕게 되니 순조 때부터 시작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또다시 계속된 셈이었다.[1]

안동 김씨와 세도정치

  • 안동 김씨 세력의 강화

철종은 순원왕후 승하 후에는 김조순(金祖淳)을 석실서원에 추배하도록 하였다. 1858년(철종 9)에 순조와 순원왕후에 대한 존호를 추상하자 신료들은 순조의 공덕 중 1811년(순조 11) 발생하였던 홍경래(洪景來) 난을 평정시킨 것을 강조하며 이때 참여했던 신하들의 공을 구별하여 공신으로 대우하자고 하였다. 이는 홍경래 난의 진압을이 김조순의 주도하에 이뤄졌던 만큼 안동 김씨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제안이었다. 철종의 이 같은 조처는 안동 김씨 일가를 대표로 하는 노론(老論)의 의리를 강화하는 것이자, 정치적 주도권을 차지했던 안동 김씨의 행보를 인정하고 비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 적대세력 측출

순원왕후가 국상 중에 적대 세력인 조병현을 사사하도록 하는 둥 철종 대에는 안동 김씨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한편, 다른 세력의 정치적 입지 확보를 차단하였다. 이에 안동

김씨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은 철종조의 여러 사안에서 위협을 될 만한 세력을 제거하면서 세도정치의 실질적 주인이 수 있었다. 철종은 왕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고자 하였으나,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에 의해 즉위했기 때문에 스스로 왕권 강화를 추진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2]

민란과 옥사

  • 피폐한 민생

철종 대 삼정문란으로 인한 폐단은 해결되지 못하고, 관리들의 탐학이 백성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가운데, 재정은 더욱 궁핍해졌다. 이로 인해 철종 치세 말기가 되면서 전국적인 민란이 발생했다. 1862년(철종 13) 2월 진주농민봉기(晉州農民蜂起)를 시작으로 하여 전국에서 민들의 봉기가 일어났다. 이른바 임술민란이었다.[3]

  • 이하전 옥사

조정에서는 민란 보고를 받고 안핵사를 파견하면서 삼정폐단의 대책을 마련하던 중 이하전 옥사가 발생했다. 다수의 무사들이 모여 이하전(李夏銓)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는 혐의가 보고되었던 것이다. 임술민란의 폐단을 시정하고 민생을 구해야 할 상황에서 옥사는 확대되어 결국 이하전은 제주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사사 당하였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순조 철종 A는 B의 어버이이다
정조 순조 A는 B의 어버이이다
안동 김씨 순원왕후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안동 김씨 김문근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김문근 명순왕후 A는 B의 어버이이다
철종 명순왕후 A는 B의 남편이다
안동 김씨 조병현 A는 B와 관련이 있다
김조순 홍경래의 난 A는 B에 참여하였다
안동 김씨 김조순 A는 B를 구성원으로 한다
철종 안동 김씨 A는 B와 관련이 있다
철종 진주농민봉기 A는 B와 관련이 있다
철종 이하전 옥사 A는 B와 관련이 있다
이하전 옥사 진주농민봉기 A는 B와 관련이 있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849년 창덕궁 희정당에서 철종의 관례를 행하였다
1862년 진주농민봉기가 발발하였다
1862년 이하전 옥사가 발생하였다

주석

  1. 김진봉, "철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이민아, "철종", 『한국사콘텐츠』online, 역사편찬위원회.
  3. 이민아, "철종", 『한국사콘텐츠』online, 역사편찬위원회.
  4. 이민아, "철종", 『한국사콘텐츠』online, 역사편찬위원회.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임혜련, 「철종대 정국과 권력 집중 양상」, 『한국사학보』Vol.49 , 고려사학회, 2012.

유용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