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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4월 5일 [[조선 순종|순종]] 친경식을 기록한 사진첩(한미사진미술관 소장)과 함께 [[조선 순종|순종]], [[조선 순종효황후]] 공식초상사진과 [[조선 고종|고종태황제]]의 초상사진을 제작하였다. 이와타의 황실초상들은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촬영된 사진으로 [[조선 순종|순종황제]]의 가장 공식적인 사진으로 알려져 왔다. 이와타가 언제 이 사진을 촬영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910년 6월 『[[대한매일신보]]』 에 대황제폐하와 황후폐하가 6월 18일 어사진을 한 벌씩 궁내부 일본인고등관에서 하사하셨다는 기록이 있고,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황후의 사진이 같이 배포되었던 것으로 보아 이 사진들의 촬영시기는 1910년 6월 이전으로 보인다.<ref>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7-218쪽.</ref>
 
1909년 4월 5일 [[조선 순종|순종]] 친경식을 기록한 사진첩(한미사진미술관 소장)과 함께 [[조선 순종|순종]], [[조선 순종효황후]] 공식초상사진과 [[조선 고종|고종태황제]]의 초상사진을 제작하였다. 이와타의 황실초상들은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촬영된 사진으로 [[조선 순종|순종황제]]의 가장 공식적인 사진으로 알려져 왔다. 이와타가 언제 이 사진을 촬영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910년 6월 『[[대한매일신보]]』 에 대황제폐하와 황후폐하가 6월 18일 어사진을 한 벌씩 궁내부 일본인고등관에서 하사하셨다는 기록이 있고,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황후의 사진이 같이 배포되었던 것으로 보아 이 사진들의 촬영시기는 1910년 6월 이전으로 보인다.<ref>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7-218쪽.</ref>
  
[[조선 순종|순종]]의 이 [[순종 초상 사진|초상사진]]은 도상 면에서도 일본 메이지천황의 어진영과 닮았을 뿐 아니라 그 배포방식에서도 일본의 예를 따랐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1907년 8월 [[조선 순종|순종]]의 즉위식 자리에서 황룡포를 입은 [[조선 순종|순종]]종이 다시 서양식 대원수복으로 갈아입고 단발한 모습으로 나타나 새롭게 바뀐 [[조선 순종|순종]]가 일본에 의해 문명화될 [[대한제국]]을 가시화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1909년까지 조선의 전통과 달리 이례적으로 많이 행해졌던 [[조선 순종|순종]]의 순행, 친경식을 비롯한 각종 행차는 말을 타고 서양식 대원수복을 입고 단발을 한 [[조선 순종|순종황제]]를 한국의 국민들에게 가시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충군정신을 이끌어내어 당시의 정치적 불안과 저항을 타기해가려는 이토의 정치적 전략이었다.<ref>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8-219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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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종|순종]]의 이 [[순종 초상 사진|초상사진]]은 도상 면에서도 일본 메이지천황의 어진영과 닮았을 뿐 아니라 그 배포방식에서도 일본의 예를 따랐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1907년 8월 [[조선 순종|순종]]의 즉위식 자리에서 황룡포를 입은 [[조선 순종|순종]]다시 서양식 대원수복으로 갈아입고 단발한 모습으로 나타나 새롭게 바뀐 [[조선 순종|순종]]가 일본에 의해 문명화될 [[대한제국]]을 가시화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1909년까지 조선의 전통과 달리 이례적으로 많이 행해졌던 [[조선 순종|순종]]의 순행, 친경식을 비롯한 각종 행차는 말을 타고 서양식 대원수복을 입고 단발을 한 [[조선 순종|순종황제]]를 한국의 국민들에게 가시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충군정신을 이끌어내어 당시의 정치적 불안과 저항을 타기해가려는 이토의 정치적 전략이었다.<ref>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8-219쪽.</ref>
  
 
[[조선 순종|순종]] 붕어 이후인 1928년 조선왕실의 마지막 어진화사였던 [[김은호|김은호(金殷鎬, 1892-1979)]]가 [[순종 어진(곤룡포본)|순종 어진]]을 다시 모사할 때도 거의 20년전의 사진이라 할 수 있는 이때의 [[조선 순종|순종황제]]의 [[순종 초상 사진|초상사진]]을 본으로 하였다.<ref>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9쪽.</ref>
 
[[조선 순종|순종]] 붕어 이후인 1928년 조선왕실의 마지막 어진화사였던 [[김은호|김은호(金殷鎬, 1892-1979)]]가 [[순종 어진(곤룡포본)|순종 어진]]을 다시 모사할 때도 거의 20년전의 사진이라 할 수 있는 이때의 [[조선 순종|순종황제]]의 [[순종 초상 사진|초상사진]]을 본으로 하였다.<ref>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9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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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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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인용 및 참조===
*이명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9404 김서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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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195-228쪽.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78118&cid=43671&categoryId=43671 김서현]", 인명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더 읽을 거리===
 
===더 읽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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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74176 순종어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분류:역사인물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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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인물]]
 
[[분류:인물]]

2017년 11월 12일 (일) 10:45 판

이와타 카나에(岩田 鼎)
대표명칭 이와타 카나에
한자표기 岩田 鼎
생몰년 1870-



정의

대한제국 통감부시기 황실사진사로 활동하던 일본인 사진작가.

내용

조선에서 사진작가로

이와타 카나에(岩田 鼎, 1870-?)는 후쿠이(福井)현 출신으로 1898년 12월 조선에 와서 일제강점기까지 사진관영업을 하였다. 처음에는 남산 왜성대의 생영관 사진기사로 근무하다가 1900년 무렵부터 독립적으로 사진관을 경영하였는데 러일전쟁기인 1904년 본정으로 이전한 이후에는 보다 본격적으로 사진관 광고를 내면서 사진관 운영을 하였다.[1]

이와타가 경성 내의 사진사로써 입지를 확실하게 굳힌 것은 1907년 일본 황태자 방문 무렵이다. 1907년 말엽에 『경성신보(京城新報)』에 “동궁전하어도한기념사진판(東宮殿下御渡韓紀念寫眞板) 콜로타입 사진첩”에 대한 예약 출판 광고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첩의 인쇄 출판을 이와타 사진관이 맡아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이와타 사진관은 경성뿐 아니라 안동현(安東縣)에까지 지점을 낼 정도로 사업이 확장되어있었으며 1908년에는 경성의 사진관도 본정에서 다시 남대문통으로, 다시 1913년 이후 황금정으로 이전하는 등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해갔던 것을 볼 수 있다. [2]

왕실 사진가

1909년 4월 5일 순종 친경식을 기록한 사진첩(한미사진미술관 소장)과 함께 순종, 조선 순종효황후 공식초상사진과 고종태황제의 초상사진을 제작하였다. 이와타의 황실초상들은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촬영된 사진으로 순종황제의 가장 공식적인 사진으로 알려져 왔다. 이와타가 언제 이 사진을 촬영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910년 6월 『대한매일신보』 에 대황제폐하와 황후폐하가 6월 18일 어사진을 한 벌씩 궁내부 일본인고등관에서 하사하셨다는 기록이 있고,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황후의 사진이 같이 배포되었던 것으로 보아 이 사진들의 촬영시기는 1910년 6월 이전으로 보인다.[3]

순종의 이 초상사진은 도상 면에서도 일본 메이지천황의 어진영과 닮았을 뿐 아니라 그 배포방식에서도 일본의 예를 따랐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1907년 8월 순종의 즉위식 자리에서 황룡포를 입은 순종이 다시 서양식 대원수복으로 갈아입고 단발한 모습으로 나타나 새롭게 바뀐 순종가 일본에 의해 문명화될 대한제국을 가시화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1909년까지 조선의 전통과 달리 이례적으로 많이 행해졌던 순종의 순행, 친경식을 비롯한 각종 행차는 말을 타고 서양식 대원수복을 입고 단발을 한 순종황제를 한국의 국민들에게 가시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충군정신을 이끌어내어 당시의 정치적 불안과 저항을 타기해가려는 이토의 정치적 전략이었다.[4]

순종 붕어 이후인 1928년 조선왕실의 마지막 어진화사였던 김은호(金殷鎬, 1892-1979)순종 어진을 다시 모사할 때도 거의 20년전의 사진이라 할 수 있는 이때의 순종황제초상사진을 본으로 하였다.[5]

상업 및 예술 작가

한편 이와타 사진관이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초상사 진엽서를 인쇄해서 대중들에게 팔다가 치안방해죄로 걸린 사건은 한국 내의 사진시장 의 수요에 발빠르게 대처했던 일본인 사진사들의 상업적 일면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로 들어가면서 이와타 역시 황실과 관련된 사진활동보다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에 사진을 출품하여 수상하고 1922년 조선사진협회 공모전 <예술사진전람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영업사진관 운영뿐 아니라 예술사진경향을 이끄는 역할 역시 담당하면서 대표적인 재한일본인사진사로서의 지위를 굳혀갔다.[6]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순종 어진(곤룡포본) 순종 초상 사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순종 초상 사진 이와타 카나에 A는 B가 촬영하였다 A dcterms:creator B
조선 순종 순종 초상 사진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순종 초상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순종 초상 사진 순종 어진(육군대장복본)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순종 어진(곤룡포본) 김은호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이와타 카나에 안중근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이와타 카나에 순명효황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이와타 카나에 조선 고종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주석

  1. 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7쪽.
  2. 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7쪽.
  3. 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7-218쪽.
  4. 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8-219쪽.
  5. 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9쪽.
  6. 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219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권행가, 「근대적 시각체제의 형성과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2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 195-228쪽.

더 읽을 거리

  • 권행가, "순종어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