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동다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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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4일 (수) 22:05 판


동다리(同多里)
()
[[file:|360px|thumb|center|]]
대표명칭 동다리(同多里)
이칭별칭 협수(狹袖), 협수(夾袖), 동달이, 동다리(彤多里)
착용신분 왕실, 무관
착용성별 남성



정의

조선후기 무관의 군복(軍服)구성 요소 중 하나이다.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 황태자, 왕세자, 왕세손, 문무백관이 착용했다.

착용상황

군복의 하나이다. 이동이 편한한 복장으로, 행행(幸行)이나 호위복,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와 국난을 당하였을 때 착용 하였다.

형태

직령의 깃이 달리고 소매 전체 또는 소매의 일부가 붉은색의 옷감으로 장식되었다. 안은 청색계열 이며, 양옆에는 무가 달려있다. 무 양옆과 뒷중심선이 트여 활동성을 강조 하였다. 또한 붉은 소매부분은 화려함과 더불어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고, 좁은 소매와 트임으로 활동적인 움직임을 고려하였다.[3] 동다리 위에 전복(戰服)을 더하고 광대(廣帶)전대(戰帶)를 매며, 전대에 병부를 차기도 한다. 전립(戰笠)을 쓰고 등에 통개(筒箇)와 화살, 환도(還刀)를 찬 후 목화(木靴)를 신어 군복의 일습(一襲)[4]을 갖춘다.

기타

유래 조선전기 융복(戎服)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군복의 소매를 좁게하는 등의 간편한 복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좁은 소매에 대한 논의가 거듭된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갑옷이나 융복 이외에 간편한 군복협수(狹袖)전복(戰服) 또는 쾌자(快子)라는 양식의 복식이 등장한다.[9] 동다리형 협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의 염습의(斂襲衣) 중에 포함되었다.

Quote-left.png 협수의 겉감은 연두색 화단(花緞)에 수구는 대홍색 운문단이며 안은 진홍색 광직(廣織)이다.(夾袖, 表連頭色花緞袖口大紅雲紋緞, 內眞紅廣織.) Quote-right.png
출처: 『文孝世子殯宮魂宮都監儀軌』


관련항목

문헌/회화 → 복식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노드 동다리 A는 B를 보여준다
문효세자빈궁혼궁도감의궤 동다리 A는 B를 기록한다
심전고 동다리 A는 B를 기록한다
악학궤범 동다리 A는 B를 기록한다
조선왕조실록 동다리 A는 B를 기록한다

복식 → 복식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동다리 군복 A는 B의 부분이다

인물 → 복식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동다리 A는 B를 착용한다
문관 동다리 A는 B를 착용한다
무관 동다리 A는 B를 착용한다

복식 → 기관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동다리 노드 A는 B에서 제작한다

기관/소장처 → 복식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고려대학교박물관 동다리 A는 B를 소장한다
국립민속박물관 동다리 A는 B를 소장한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동다리 A는 B를 소장한다

참고문헌

주석

  1.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135쪽.
  2.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3. 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22쪽.
  4. 옷, 그릇, 기구(器具) 따위의 한 벌
  5.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p. 135.
  6.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p. 135.
  7.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8.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9. 박성실, 김향미,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 『韓國服飾』 20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