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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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聞慶 大乘寺 妙寂庵 懶翁和尙 影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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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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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聞慶 大乘寺 妙寂庵 懶翁和尙 影幀 |
영문명칭 | Portrait of Buddhist Monk Naong at Myojeogam Hermitage of Daeseungsa Temple, Mungyeong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8호 |
지정일 | 2008년 11월 3일 |
수량 | 1점 |
관련인물 | 혜근(慧勤) |
관련유물유적 |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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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승사(大乘寺) 묘적암(妙寂庵)에 있는 고려 후기의 승려 나옹화상 혜근(懶翁和尙 慧勤, 1320-1376)의 진영(眞影).
내용
개요
화면에는 장삼(長衫) 위에 가사(架裟)를 걸친 나옹화상 혜근(懶翁和尙 慧勤)이 주장자(拄杖子)를 들고 염주(念珠)를 잡은 채 약간 우측을 향하여 가부좌를 하고 있다. 왼쪽 어깨에는 금으로 장식된 커다란 가사 고리가 달려 있다. 뒤쪽으로 용장식이 화려한 불자(佛子)가 세워져 있으며 바닥과 벽면이 구분되어 있다. 화면 왼쪽 위에는 주인공의 존호(尊號)[1]를 밝힌 영제(影題)가 적혀있고 맨 아래에 제작연대와 제작자를 밝힌 화기(畵記)가 있다.[2]
1803년에 제작되었으며,[3] 당시 대승사(大乘寺)를 중심으로 사불산화파(四佛山畵派)를 이끌었던 화승(畵僧) 신겸(信謙)이 그렸다.[4]
혜근의 진영
고려말 나옹화상 혜근(懶翁和尙 慧勤)의 입적 직후 거제 우두산 견암(牛豆山 見菴), 청주 용자산(龍子山) 송천사(松泉寺), 영감암(靈鑑菴)에도 나옹의 진영이 봉안되었다. 그후 조선 후기 1694년(숙종 20) 승려 승민(勝敏)이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지공(指空), 나옹화상,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등 삼화상(三和尙)의 영정을 모사하여 대구 남지장사(南地藏寺)에 봉안하였고, 1803년(순조 3) 묘적암(妙寂庵)에 나옹화상의 진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5]
지식관계망
- 나옹 혜근의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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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 혜근 | A는 B의 초상화이다 | 1803년 |
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 신겸 | A는 B를 그렸다 | 1803 |
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 문경 대승사 묘적암 | A는 B에 있다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①상대편을 높여 부르는 칭호 ②임금이나 왕비의 덕을 기린다 하여 올리던 칭호
- ↑ "문경 대승사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문경 대승사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서동철,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 생불로 불린 선승 누운 자리에 화려하게 피어난 부도 예술", 『서울신문』, 2017년 5월 26일.
- ↑ 황인규, 「懶翁慧勤의 불교계 行蹟과 遺物ㆍ遺蹟 - 諸 紀錄 및 자료의 검토 試攷」, 『대각사상』 제11집, 대각사상연구원, 2008년 12월, 60쪽.
참고문헌
- 서동철,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 생불로 불린 선승 누운 자리에 화려하게 피어난 부도 예술", 『서울신문』, 2017년 5월 26일.
- 황인규, 「懶翁慧勤의 불교계 行蹟과 遺物ㆍ遺蹟 - 諸 紀錄 및 자료의 검토 試攷」, 『대각사상』 제11집, 대각사상연구원, 2008년 12월, 17-70쪽.
- "문경대승사묘적암나옹화상영정",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문경 대승사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