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현 초상(반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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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 초상(반신상) | |
한자명칭 | 李齊賢 肖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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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한철 |
제작시기 | 19세기 |
소장처 | 청원 수락영당 |
문화재지정사항 | 보물 제1110-2호 |
유형 | 초상 |
크기(세로×가로) | 93x49cm |
목차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학자인 제현(1287∼1367)의 모습을 그린 초상.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현재 이제현의 초상은 4본이 전해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전라남도 장성군 가산서원(佳山書院)에는 전신상으로 같은 양식의 본이 전해온다. 또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수락영당(水洛影堂)에 1본 그리고 전라남도 강진군 구곡사(龜谷寺)에도 반신과 전신의 구별은 있으나 같은 양식의 본이 전해온다.
이 중 수락영당 소장의 <이제현 초상>은 반신상으로 이한철이 그렸다. 이제현 문집에 실린 판각본을 토대로 제작된 것으로 화면 상단에 이제현의 문집 『익재난고(益齋亂藁)』에 실려 있는 화상자찬을 이유원이 옮겨 써 넣었다. 자손에게 화상을 남겨 경계하는 내용이다.[1]
수락영당 소장의 <이제현 초상>은 이모본이기는 하나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이한철이 그렸고 당대의 명필인 이유원의 글씨가 함께 있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며 목각판본을 범본으로 정본 초상화를 그린 특이한 예의 작품으로도 주목된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이제현 초상>은 우안칠분면의 복부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이다. 회색 심의를 입고 복건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젊은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선이 딱딱하고 투박하게 느껴져 목판본 초상화를 범본으로 삼았음을 느낄 수 있다. 얼굴에는 음영의 표현이 없는 보수적인 화법을 사용하여 원본의 특징과 시대성을 반영하였으나 옷 부분에는 윤곽선 주위에 담묵으로 칠하여 음영을 표현하면서 19세기의 양식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정몽주 초상(반신상) | 초상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정몽주 초상(반신상) | 정몽주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정몽주 초상(반신상) | 이한철 | A는 B가 그렸다 | A dcterms:creator B |
정몽주 초상(반신상)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정몽주 초상(반신상) | 좌명공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좌안구분면 | 정몽주 초상(반신상)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오사모 | 정몽주 초상(반신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단령 | 정몽주 초상(반신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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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 정몽주 초상(반신상)이 제작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238510 | 126.9804700 | 정몽주 초상(반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주석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단행본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 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눌와,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