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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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氅衣) |
|
대표명칭 | 창의 |
---|---|
한자표기 | 氅衣 |
이칭별칭 | 대창의(大昌衣) |
구분 | 의복 |
착용신분 | 왕, 왕세자, 백관 |
착용성별 | 남성 |
정의
조선시대 왕, 왕세자등 왕실 남성들과 사대부의 상복(常服)으로, 백관의 조복이나 단령, 도포의 받침옷으로 입던 포(袍) 종류의 옷이다.[1]
내용
'대창의(大昌衣)'라고도 한다. 왕, 왕세자, 왕세손, 백관 등이 평상복으로 착용하였으며, 도포와 같이 백관의 조복과 제복, 단령이나 도포 등의 받침 옷으로도 착용하였다. 외출할 때는 갓을 쓰고 세조대를 띤다. 깃은 곧고 소매가 넓으며 길 양옆에 큰 삼각무가 달린 옷으로, 뒷중심선 허리 아래로 긴 트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앞모습으로만 보면 직령과 도포의 형태가 같아 구별하기 어렵다. 창의는 조선 말기인 1884년(고종 21) 갑신의제개혁을 통해 넓은 소매 의복을 폐지하면서 소매가 넓은 다른 포 종류들과 함께 착용이 금지되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백관 | 창의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백관의 조복 | 창의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제복 | 창의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편복 | 창의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창의 | 도포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창의 | 단령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창의 | 갓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남오성(南五星, 1643~1712)묘 출토 직령 앞면.[3]
이진숭(李鎭嵩, 1702~1756)묘 출토 직령 뒷면.[4]
신광헌(申光憲, 1731~1784)묘 출토 직령 앞면.[5]
신광헌(申光憲, 1731~1784)묘 출토 직령 뒷면.[6]
영상
주석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77쪽.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77쪽.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 권은영, 「배천조출토복식 袍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 梁仁愛, 「女子 袍에 관한 硏究-우리나라와 중국을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4.
- 尹美花, 「氅衣類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2.
- 이동아, 「이응해 출토복식의 직령포(直領袍)와 창의(氅衣)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 李善宰 , 「朝鮮時代 儒敎思想과 儀禮服硏究-男子袍를 中心으로-」, 세종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 鄭光熙, 「團領 및 氅衣 縫製에 關하여」, 『服飾』 8권, 한국복식학회, 1984.
- 정희정, 「朝鮮後期 便服袍에 관한 硏究 : 形態, 種類의 多樣性이 주는 意味」, 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홍나영, 「조선중엽 출토복식에 관한 연구 -이황묘 출토 첩리와 창의류를 중심으로-」, 『한국의류학회지』 20권 3호, 한국의류학회,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