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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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양산문 (曦陽山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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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희양산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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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曦陽山門 |
이칭 | 희양산파(曦陽山派) |
관련개념 | 구산선문(九山禪門) |
정의
경상북도 문경의 봉암사(鳳巖寺)를 중심으로 일어난 선종구산문(禪宗九山門)의 하나이다.
내용
형성과 전개
도헌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북종선(北宗禪) 계열의 산문인 희양산문을 개창하였다. 도헌의 법맥은 중국 선종 제4조 도신(道信) → 법랑(法朗) → 신행(愼行) → 준범(遵範) → 혜은(慧隱) → 도헌이며, 도헌에서 양부(楊孚, ?-917) → 긍양(兢讓, 878-956)으로 이어진다. 희양산문은 양부의 제자인 긍양이 899년에 당(唐)에 가서 석두희천(石頭希遷) 문하의 선법을 전해 받고 924년에 귀국하여 봉암사를 재건하고 선풍을 일으킴으로써 크게 발전했다.[1]
희양산문의 개산조
기존의 학자들은 『선문조사예참의문(禪門祖師禮懺儀文)』 등의 문헌에 '희양산조사 산신현청도헌국사(曦陽山祖師 山神現請道憲國師)'라고 기록된 것을 토대로, 도헌을 희양산문의 조사 및 개산조로 보아왔다. 그러나 도헌과 긍양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에 의하면, 도헌은 긍양보다도 먼저 봉암사를 세우기는 하였으나 극히 일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희양산문의 개산은 도헌의 법손이 되는 긍양이 935년에 희양산으로 가서 이미 허물어진 봉암사 터에서 새로 절을 일으켜 봉암사라 하고, 제자들을 일깨워 불조(佛祖)의 가르침을 크게 선양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긍양은 봉암사에서 태조와 혜종·정종·광종의 존경과 믿음을 받았으며, 형초(逈超) 등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희양산의 선풍을 확립시켰다.[2]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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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양산문 | 도헌 | A는 B가 개창하였다 | A ekc:founder B |
희양산문 | 긍양 | A는 B가 중창하였다 | A ekc:renovator B |
희양산문 | 문경 봉암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구산선문 | 희양산문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참고문헌
주석
-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구산선문",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영태, "희양산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