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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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태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9월 26일 (화) 15:38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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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인조반정을 계기로 북인을 몰아내고 권력을 쥔 서인은, 숙종 재위 당시 경신환국, 회니시비, 가례원류시말 등의 사건을 통해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진다. 송시열, 윤증, 권상하, 박세당, 박세채, 남구만, 김석주 등은 그러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이자, 노론과 소론 분화 초기의 정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내용

경신환국(1680)과 남인축출문제

경신환국은 김석주, 김만기 등 숙종의 척신 세력이 숙종과 함께 허적 등 남인을 내치고 송시열과 김수항 등 서인 세력을 불러들인 일을 가리킨다. 환국 이후 이들 척신 세력은 남인을 뿌리째 제거하기 위해 기찰과 고변을 통한 정탐정치까지 동원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삼사의 언관들이 훈척의 이러한 정치행태를 비판하면서 서인 내에서 노론과 소론이라는 명목이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 삼사에 포진한 연소(年少)한 청류(淸流)들이 훈척의 정탐정치를 비판한 것은 사림정치의 원칙인 공론정치를 내세우면서 전개되었는데, 사림정치의 상징적 인물이자 서인 산림을 대표하는 송시열이 연소 청류의 기대를 저버리고 훈척을 지지하였다. 송시열이 사림 정치와 공론정치의 원칙을 저버리고 훈척의 정탐정치를 긍정한 것은 남인을 축출하는 것이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하다는 논리에 근거한 것이었다. 즉 송시열은 '군자의 붕당'만을 인정하는 주자 붕당론을 실천하는 것이 사림정치와 공론정치의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송시열의 이러한 논리와 입장은 재야와 재조를 막론하고 서인 내부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삼사의 연소한 언관을 포함하여 조정의 관료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찬반을 두고 분열되었다. [1]


지식 관계망

중심요소

문맥요소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송시열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권상하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윤증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박세당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박세채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남구만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김석주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680년 경신환국이 발생하였다.
1715년 가례원류시말이 발생하였다.
1716년 병신처분이 발생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700350 127.057418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의정부 서계종택과 관련이 있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영상

예송2차와 환국(게시일: 2014.09.15.)

주석

  1. 김용흠, 「조선의 주류 지식인은 왜 사문난적이 되었나?」『내일을 여는 역사 2014년 겨울호』Vol.57, 내일을 여는 역사, 2014, 246-247쪽 .

참고 자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