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당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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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 초상
"박세당 초상", 오디오가이드, 『실학박물관』online,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
한자명칭 朴世堂 肖像
작가 조세걸
제작시기 1690년경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유형 초상
크기(세로×가로) 140×78㎝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문신이었던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초상.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박세당 초상반남 박씨 서계종택에 소장되어 오다가 현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되어 있다. 서계 가문의 가전에 따르면 박세당의 초상화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모두 4점이었고, 2점은 분실했다고 한다.[1]

반신상으로 그려진 박세당 초상은 그림의 면에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제작시기나 작자를 알 수 없으나, 몇몇 기록을 통해 볼 때 화가는 조세걸로 유력하게 추정된다. 조세걸박세당의 초상화를 그린 사실은 몇 가지 기록에서 확인되지만, 가장 자세한 자료는 1688년 박세당의 아들 박태보가 부친의 초상화 제작을 준비하면서 남긴 3건의 편지이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이 진사라는 인물로 박태보가 그에게 초상화 제작준비를 당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 편지에는 조세걸이 야복본과 학창의를 입은 전신상 두 점을 그렸다고 쓰여 있다. 박세당조세걸은 20년에 걸쳐 조세걸박세당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등 인연이 깊어 이 반신상 또한 조세걸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2]

박세당 초상은 당시의 주류인 주자학을 비판하고 독자적 견해를 주장하며 실사구시적 학문 태도를 강조한 학자인 박세당이란 인물의 초상으로 인물사적인 의미를 가지며 어진을 그린 초상화가였던 조세걸의 화풍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박세당 초상복건을 쓰고 심의를 입고 공수자세를 취한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반신상이다. 몸체는 정면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의복은 간단한 선묘로 그려졌는데 완전한 사각형으로 그려진 옷깃의 도식적인 표현이 특이하다. 얼굴의 모양은 사각으로 각진 모습으로 얇은 갈색 선으로 얼굴 윤곽을 그리고 이마와 눈가 주름, 코, 팔자 주름에는 여러 번 선을 긋고 음영을 넣어 입체감을 주었다. 코가 거의 측면상으로 그려지고 얼굴 모양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사각형이서 조세걸이라는 화가가 인물의 정확한 용모 묘사에 미숙하였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박세당 초상 초상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박세당 초상 박세당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박세당 초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박세당 초상 박태보가 이 진사에게 보낸 간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박태보가 이 진사에게 보낸 간찰 박태보 A는 B가 썼다 A dcterms:creator B
박태보가 이 진사에게 보낸 간찰 조세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좌안칠분면 박세당 초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복건 박세당 초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심의 박세당 초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33070 127.0536610 박세당 초상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시대 명가의 고문서」, 『조선시대 명가의 고문서』, 경인문화사, 2003, 270쪽.
  2. 윤진영, 「평양화사 조세걸의 도사활동과 화풍」, 『미술사의 정립과 확산』 1권, 사회평론, 2006, 248-257쪽.
  3. "박세당 초상", 오디오가이드, 『실학박물관』online,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1. 전시도록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의 국왕과 선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