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빈
성빈 (成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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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성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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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成殯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흉례(상례) |
정의
빈소를 차리는 의식으로, 국장(國葬)에서는 사망 5일 째 대렴 이후에 거행한다.[1]
내용
대렴을 한 다음 그날 미리 마련해둔 빈전에 시신을 모시는 의식으로, 시신을 넣은 재궁을 찬궁에 담아 빈전에 봉안한다.[2] 선공감(繕工監)에서 미리 정전(正殿)의 조금 서쪽에 찬궁(攢宮)의 터를 벽돌로 만든다. 길이와 너비는 재궁보다 2척 더해 만들고 틈은 석회로 바른다. 터 위의 사방에 지방목(地防木)을 벌여 놓고 그 위에 네 기둥을 세워 들보를 걸고 서까래를 걸쳐 지붕을 만든다. 다음에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단승(椴繩)과 가는 나무로 벽을 만들되 동쪽 벽은 터놓는다. 갈대자리[蘆簟]와 유둔(油窀)으로 그 안의 삼면과 위에 붙이고 대나무 조각을 끼우고 쇠못을 박은 후 유둔 위에 후지(厚紙)를 바른다. 종이에 주작(朱雀),백호(白虎),현무(玄武)를 그려 남쪽ㆍ서쪽ㆍ북쪽에 바른다. 그 바깥쪽 삼면과 지붕 위에는 진흙을 바른 후 베를 바르고 다시 후지를 바른다. 찬궁 안에는 유둔을 깐 후 지의(地衣)를 깐 다음 다리 없는 평상을 깔고, 그 위에 대자리[竹簟]와 요[褥], 자리[席]을 깐다.[3]
때가 되면 내시가 폭을 이어 만든 유지(油紙)를 여러 겹으로 덮고, 백초(白綃)로 세로와 가로로 묶어 상 위에 머리가 남향하도록 안치하고 화보대관의(畵黼大棺衣)를 덮는다. 동쪽 벽을 막고 벽에는 종이로 청룡(靑龍)을 그려 붙인다. 찬궁 동쪽에 악장(幄帳)을 설치하고 찬궁의 남쪽에는 영좌(靈座)를 설치한다. 악장(幄帳) 안에는 영침(靈寢)을 설치하는데 상(牀), 요와 자리, 병풍과 베개, 옷, 대야, 빗 등을 모두 평상시대로 놓아둔다. 영침의 남쪽에는 고명안(誥命案)을 설치해 조석전(朝夕奠)과 상식(上食)을 행한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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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 성빈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왕세자빈 | 성빈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종친 | 성빈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백관 | 성빈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성빈 | 상례 | A는 B의 부분이다 |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108쪽.
-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129쪽.
- ↑ 『國朝五禮儀』 卷7, 「凶禮」 ‘成殯’
- ↑ 『國朝五禮儀』 卷7, 「凶禮」 ‘成殯’;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129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주자가례(朱子家禮)』
- 이현진, 「영조대 왕실 喪葬禮의 정비와 『國朝喪禮補編』」, 『韓國思想史學』 37, 한국사상사학회, 2011.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國葬 절차와 의미」, 『泰東古典硏究』 27,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 임민혁, 「조선초기 『國朝五禮儀』 흉례의 구조와 의례적 성격」, 『역사와 실학』 50 , 2013.
- 鄭鐘秀, 『朝鮮初期 喪葬儀禮 硏究』,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