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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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8월 27일 (일) 17:0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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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韶顯)
BHST Monk1.png
대표명칭 소현
한자 韶顯
생몰년 1038(정종 4)-1096(숙종 1)
시호 혜덕(慧德)
소현(韶顯)
탑호 진응(眞應)
범위(範圍)
성씨 이씨(李氏)
출신지 황해북도 개성
승탑비 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정의

고려시대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혜덕왕사 소현은 字는 範圍이고, 속성은 李氏로, 1038년(정종 4)에 개경에서 태어났다. 소현의 祖는 翰15)이고, 소현의 아버지는 이자연, 어머니는 鷄林國太夫人 金氏이다. 소현은 이자연의 8남 3녀 중 다섯째 아들로, 이른바 고려 문벌인 인주이씨 가문의 사람이었다. ‘혜덕왕사비’에도 소현의 조부인 이한 이래로 이어진 가문의 명성을 ‘閥閱之聲’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인주이씨와 왕실 사이의 중첩된 혼인관계도 말하고 있다.[1]

출가수행

소현은 1048년(문종 2)에 해린에게 낙발함으로써 인주이씨를 대표하여 법상종 승려로 출가하였다. 그리고 소현은 출가한 다음 1070년(문종 24)에 스승인 해린이 입적할 때까지 그의 문하에서 법상종 승려로서 기반을 다져갔다.[2]

소현은 1049년(문종 3)에 복흥사 관단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1054년(문종 8)에 스승인 해린이 현화사의 주지가 됨으로써 그도 해린을 따라 현화사로 이주하였다. 소현은 이 때부터 1070년(문종 24)까지 16년 동안 현화사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때 해린은 현화사 보수 공사를 추진하였으며, 차례로 왕사와 국사에 책봉됨으로써 명실공이 법상종단을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런 해린의 문하에서 소현은 금언을 수학하였고, 왕륜사 대선장에 나아가 대덕이 되었으며, 중대사가 되었다.[3]


활동

소현은 1071년(문종 25) 해안사 주지가 된 후, 1074년(문종 28)에 삼중대사의 법계를 제수하였다.59) 그리고 1079년(문종 33) 가을에는 內殿에서 열린 法席에서 說法主로 초청되었다. 소현은 해안사에 이어서 1079년(문종 33)에 왕명으로 금산사의 주지가 되었다. 그리고 소현은 수좌와 승통의 법계를 제수하였다.[4]

금산사에서 소현의 활동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첫째 廣敎院의 설치와 둘째 광교원에서 이루어진 章疏의 간행이다. . 소현은 금산사의 중창과 함께 법상종 관련 장소를 간행·유통할 수 있는 광교원을 두어 법상종단을 정비하였다. 그리고 절의 남쪽 지역에 원을 두고 ‘광교원’이라고 하였다.[5]


소현은 금산사에서 약 5년 여 동안 주지로 있다가 1084년(선종 1)에 현화사의 주지가 되어 전주에서 개경으로 다시 올라오게 된다. 그리고 소현은 1096년(숙종 1)에 봉천원에서 입적하였다고 하니, 말년이 되어서는 금산사로 하산한 것으로 보인다

입적

12월 금산사 남쪽의 봉천원(奉天院)에서 입적하였다. 세수 58세, 법랍 47세였다. 숙종은 혜덕왕사(慧德王師)라는 시호를 내렸고, 탑호(塔號)는 진응(眞應)이라 하였다.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5쪽
  2. 12쪽.
  3. 17쪽.
  4. 20-22쪽.
  5. 23-24쪽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