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보경사
포항 보경사 (浦項 寶鏡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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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포항 보경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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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浦項 寶鏡寺 |
주소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중산리 622) |
교구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
창건자 | 지명(智明) |
경내문화재 |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부도,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 포항 보경사 탱자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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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있는 절.
내용
역사
602년(진평왕 25)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723년(성덕왕 22)에는 각인(覺仁)과 문원(文遠)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 하고 시주를 얻어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1]
745년(경덕왕 4) 철민(哲敏)이 중창하였고, 1214년(고종 1) 주지 승형(承逈)이 승방 4동과 정문 등을 중수하고 종·경(磬)·법고(法鼓) 등도 완비하였다. 1677년(숙종 3)에는 도인(道仁) 등이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1695년 가을에 준공하였으며, 삼존불상과 영산전(靈山殿)의 후불탱화도 조성하였다.[2]
1916년부터 1922년까지는 장욱(壯旭)이 많은 사재를 내어 전당(殿堂)과 탑을 중수하였고 홍수로 파손된 제방을 쌓았으며, 교량을 시설하고 전답을 사찰에 헌납하였다. 1917년 10월에는 태인(泰仁)이 명부전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대웅전과 상지전(上持殿)을 중수하였으며, 1975년 이후 약간의 단청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3]
창건 설화
지명은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자신이 진나라의 어떤 도인에게서 받은 팔면 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웃 나라의 침략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 할 것' 이라고 했다. 이에 왕이 기뻐하여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 가다가 해아현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 속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한 뒤에 보경사라고 했다고 한다.[4]
관련문화유산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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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 | 포항 보경사 | A는 B에 있다 | |
포항 보경사 승탑 | 포항 보경사 | A는 B에 있다 | |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 | 포항 보경사 | A는 B에 있다 | |
지명 | 포항 보경사 | A는 B를 창건하였다 | |
승형 | 포항 보경사 | A는 B를 중건하였다 | |
신라 진평왕 | 포항 보경사 | A는 B와 관련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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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년 | 지명이 포항 보경사를 창건했다 |
723년 | 포항 보경사에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이 조성되었다 |
1214년 | 승형이 포항 보경사를 중건하였다 |
1677년 | 포항 보경사에 대한 중창불사를 시작하였다 |
1916년 | 장욱이 많은 사재를 내어 포항 보경사의 전당과 탑을 중수하였다 |
시각자료
주석
- ↑ "보경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보경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보경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보경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online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참고문헌
- "보경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보경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online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8 - 팔공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참조:"보경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팔공산 자락,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