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희정당
목차
정의
창덕궁에 있는 침전이었으나, 순조대부터는 정사를 보는 편전으로 이용되었던 공간으로 보물 제815호로 지정되어 있다.[1]
내용
역사
본래 이름은 ‘숭문당(崇文堂)’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이름을 바꾸었다. 창덕궁 대조전의 앞에 있고 회랑으로 연속된 건물이기 때문에 창덕궁 대조전과 같은 재난을 겪는다. 임진왜란 대 소실된 것을 광해군 원년에 중건하였는데, 인조반정에 다시 소실된다. 그 후 20년 뒤인 1647년(인조 25)에 인경궁 건물의 자재를 이용해 중건하고, 1833년(순조 33) 10월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창덕궁 희정당까지 소실된 것을 다음해에 중건한다. 1917년 11월 10일 창덕궁 대조전 서온돌과 나인 갱의실에서 불이 나 창덕궁 대조전과 창덕궁 희정당을 비롯한 내전이 불타면서 내전에 소장된 서적과 귀중품들이 소실된다. 소실된 건물을 중건하기 위해 경복궁 전각을 이건해 1920년 12월에 재건되었다. 원래의 편전인 창덕궁 선정전이 비좁아 침전이었던 창덕궁 희정당이 순조대부터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2]
현재
이전의 창덕궁 희정당은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15칸 건물이나 현재는 정면 11칸에 측면 5칸의 55칸 건물로 원래보다 규모가 커진다. 경복궁 강녕전을 이전하여 같은 규모로 만들면서 원래의 모습과 다르게 되었다. 경복궁 강년전은 1876년(고종 13)에 소실되었던 것을 1888년(고종 25)에 중건한 건물이기 때문에 창덕궁 희정당의 골격은 1888년대이다. 창덕궁 희정당은 앞뒤로 회랑과 연결되어 있어 전면은 궁궐 입구를 통해 들어오게 되고 후면은 창덕궁 대조전의 행각과 연결되어 창덕궁 선평문을 통해 창덕궁 대조전으로 들어가게 된다.[3] 재건된 창덕궁 희정당 내부는 쪽마루와 카펫, 유리 창문, 천장에 샹들리에 등을 설치하여 서양식으로 꾸며졌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책례 | 창덕궁 희정당 | A는 B에서 거행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496년 | 숭문당에서 창덕궁 인정전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
1784년 8월 2일 | 효명세자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책봉례를 거행하였다 |
1812년 7월 6일 | 경종은 창덕궁 희정당에서 책례를 거행하였다 |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창덕궁 희정당<ref>문화재청 창덕궁 희정당
창덕궁 희정당 내부[5]
영상
주석
-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57쪽.
-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64~66쪽.
-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58~63쪽.
- ↑ 문화재청 창덕궁 희정당
- ↑ 문화재청 창덕궁 희정당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 이근도, 『경희궁의 복원과 역사산책』, 도서출판 수서원, 2004
- 이태호, 『그림으로 본 옛 서울』, 서울학연구소, 1995.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