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대대(왕실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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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
(大帶)
[[file:|360px|thumb|center|]]
대표명칭 대대
한자표기 大帶
착용신분 황후, 왕비, 황태자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착용성별 여성



정의

대례복인 적의 차림을 할 때 겉옷 위로 허리에 띠는 비단띠이다. 큰 띠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허리에 두리는 요와 아래로 늘어뜨리는 신으로 되어 있고, 가장자리에 선으 둘러져 있다. 양 옆에 달린 청색 끈으로 배 앞에서 묶어 고정한다. 조선 후기에는 대홍단을 겉감으로 하고 백릉을 안감으로 하여 만든 후 녹색 선을 둘렀으니, 대한제국 시기에는 백색 겉감에 다홍색 안감을 대고 녹색 선을 둘렀다..[1]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등이 착용한다.

착용상황

[2]

형태

사각 보자기 모양이며 금박으로 길상 무늬를 입혀 장식한다.[3]
머리 위에 얹어 어깨를 가릴 정도의 길이이다.

기타[4]

너울에 드리워진 얇은 천 부분을 지칭하기도 하여 조선 초기에는 너울과 혼용되기도 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면사와 너울이 뚜렷이 구별되어 나타난다. 『세종실록』3년(1421) 6월 기록과 『성종실록』2년(1471) 5월 기록에서 보면, 당시의 양반부녀자들은 외출 시 내외용으로 반드시 면사를 드리워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기녀로 오인받기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민간의 혼례에 사용된 면사는 개화기에 이르러서야 그 사례가 발견되는데, 면사가 언제부터 민가의 혼례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공주·옹주의 예복이 민가의 혼례에 허용된 것으로 미루어 면사도 함께 허용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오늘날 신부의 베일을 면사포라고 하는 것도 면사에서 연유한 것이다.
대비 이하 세손빈까지 자적색 면사를 쓰고, 숙의·공주·옹주는 남색을 쓴다. 전해지는 민가의 면사 유물들은 흑색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굿거리에서 무녀의 복식에서도 '너울가지'라 하여 면사와 같은 형태의 쓰개를 찾아볼 수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대대(왕실여성) 왕비 A는 B를 착용하였다
대대(왕실여성) 왕세자빈 A는 B를 착용하였다
대대(왕실여성) 왕세손빈 A는 B를 착용하였다
대대(왕실여성) 홍장삼 A는 B에 착용한다
대대(왕실여성) 의궤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23쪽.
  2.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300쪽.
  3.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23쪽.
  4.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300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