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 (仁祖莊烈王后嘉禮都監儀軌) |
|
[[file:|360px|thumb|center|국립중앙박물관]] | |
대표명칭 |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 |
---|---|
한자표기 | 仁祖莊烈王后嘉禮都監儀軌 |
주제 | 가례(嘉禮) |
작성주체 | 가례도감(嘉禮都監) |
의례담당자 | 신경진(申景禛) |
작성지역 | 한성부 |
작성시기 | 1638년(인조 18년) |
소장처(원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어람용), 규장각한국학연구원(강화부) |
판본 | 필사본 |
표기문자 | 한자, 이두 |
수량 | 어람용: 총 1책 193장 강화부: 총 1책 164장 |
크기 | 어람용: 47.2×31.9 강화부: 44.4×30.4 |
도설 | 9면(채색) |
반차도 | 8면(채색) |
정의
1638년 인조(仁祖와 계비(繼妃)인 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趙氏, 1624~1688)의 가례(嘉禮)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내용
1638년(인조 16년) 10월 3일에서 4일에 걸쳐 삼간택 시행과 관련해 예조에서 올린 계사에 따르면, 이번 가례는 앞서 봄부터 왕비 간택에 들어갔으나, 사대부가에서 응하는 자가 없는 등 문제가 발생하여 진행이 늦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가례를 치르는 데 참고할 이전 가례의궤들이 병란으로 모두 산실됨에 따라 부득이하게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의 실록 기록을 참고하여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기록하고 있다. 마침내 삼간택을 조금 앞둔 10월 5일 가례도감이 설치되어 본격적인 가례의식 준비에 들어갔다. 이후 왕비의 최종 간택은 10월 26일, 납채는 11월 4일, 납징은 11월 16일, 고기는 11월 30일, 책비는 12월 2일, 친영과 동뢰연은 12월 3일에 거행되었다.
계사 ☞ 뜻 표기 필요합니다
(정주영)
목록
예관(禮關), 의궤(儀軌), 논상(論賞), 일방(一房), 이방(二房), 삼방(三房), 의장색(儀仗色), 삼방옥책색(三房玉冊色), 삼방기명색(三房器皿色), 중궁전자별궁예궐시반차도(中宮殿自別宮詣闕時班次圖)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징
현존하는 가례도감의궤들 가운데 이른 시기에 편찬된 것으로서, 후대 의궤들에 비해 내용이 소략하고 체제도 다소 정돈되지 못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친영례 거행 장소로 쓰여 온 태평관 대신,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사저인 어의동 별궁(於義洞 別宮)에서 친영례를 거행토록 하라는 내용이 10월 9일자 인조의 전교에 수록된 것이다. 또한 가례에서 간택된 왕비와 세자빈이 입궁 전 머무르는 별궁으로 어의궁(於義宮)이 줄곧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람용 상책 해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화부 해제
판본
국립중앙박물관: 어람용(252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화부본(奎 13061).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소장한다 |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A는 B에 소장한다 |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 | 가례복 | A는 B를 보여준다 |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 | 가례 | A는 B를 기록한다 |
가례 | 가례도감 | A는 B에서 주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