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정씨 단자
초계정씨 단자 | |
영문명칭 | A document submitted to the Ministry of Rituals by Jo of Chogye, a wife of Jo Ji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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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 초계정씨 |
간행시기 | 1689년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83.0×57.5㎝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축 |
표기문자 | 한글 |
목차
정의
1689년 7월에 조지원(趙持元)의 처 초계정씨(草溪鄭氏)가 예조에 올린 단자(單子)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1689년 7월에 조지원(趙持元)의 처 초계정씨(草溪鄭氏)가 예조에 올린 단자(單子)이다. 초계정씨는 고 참찬 문숙공(文肅公) 수몽(守夢) 정엽(鄭曄, 1565~1625)의 증손녀로 부친 정원(鄭援)이 후사가 없어서 먼 친적인 정일장을 양자로 삼았다. 그런데 정일장이 무능하고 불초하여 봉사조 전답과 노비를 탕진하고 종가의 집을 팔아먹었으며, 또한 가묘(家廟)를 버리고 집을 나가 부모와 조상의 신주를 지킬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에 초계정씨가 예조에 단자를 올려서 조상의 가묘를 모시고 와 임시로 봉안(奉安)할 수 있도록 제사(題辭: 판결문)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조에서는 종사가 장차 없어질 것을 근심하여 사재(私財)를 출연해 옛날 집을 구매해 돌려준다면 가상한 일이 될 수 있으나, 사당을 옮겨 봉안하여 스스로 받드는 것은 종손을 핍박하여 가로막는 혐의가 생길 수 있으니 상고해서 시행하도록 제사(題辭)를 내렸다. [1]
조선시대 제사와 후손들의 분쟁
조선시대에서 제사를 모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사대부에서는 조상의 명패를 봉안(종묘에 안치시키는 것)하고 적장자가 대를 이어서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러나 항상 적장자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제사를 모셔야 하는 상황에서 적장자가 부재하면, 친척 가족의 적손을 양자로 들여와 제사를 잇게 하였다. 그러나 종종 양자로 들어온 아들은 직계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제사를 모시는데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고, 만약 직계후손 중 적장자가 아니라 차자 또는 서자가 존재하는 경우 이들과 마찰이 종종 일어났다. 그 때문에 초계정씨 단자에서 처럼 초계정씨가 차라리 양자로 들어온 정일장이 제사와 사직을 모시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니 그것을 돌려달라 예조에 단자를 올린 것이다.
단자의 종류와 그 쓰임
단자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대개는 매 항목을 별행으로 썼다. 단자의 명칭이 붙은 문서로는 ,선원록세계단자(璿源錄世系單子), 돈녕단자(敦寧單子), 공신자손세계단자(功臣子孫世系單子), 호구단자(戶口單子)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소지류(所志類)에 속하는 문서인데 대개 사대부가 친히 관사(官司)에 올리는 것으로서 소장(訴狀) 또는 청원서, 진정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는 자료지출 증빙서류 느낌도 있다. 서식은 소지와 다르며, 그 내용은 대부분 산송(山訟, 분묘 및 주변산지 대상 소송)관계가 주로 있다. [2]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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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정씨 | 초계정씨 단자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689 |
초계정씨 | 조지원 | A는 B의 아내이다 | |
초계정씨 | 정엽 | A는 B의 후손이다 | |
초계정씨 | 정원 | A는 B의 자식이다 | |
정일장 | 정원 | A는 B의 양자이다 | |
초계정씨 | 예조 | A는 B에게 요청했다 | |
초계정씨 단자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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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년 | 초계정씨가 초계정씨 단자를 간행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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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23851 | 126.980476 | 초계정씨 단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64쪽.
- ↑ 최승희, 단자(單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01일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최승희, 『한글고문서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