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
영문명칭 | A Korean book produced for the ritual of bestowing posthumous title to Queen Myeongseong of Gojong |
---|---|
작자 | 미상 |
간행시기 | 1890년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2-4047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6.9×15.8cm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첩 |
표기문자 | 한글 |
정의
1890년(고종27) 고종의 왕비인 여흥민씨(驪興閔氏, 1851~1895)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위하여 제작한 한글본 책문이다.
내용
1890년(고종27) 고종의 왕비인 여흥민씨(驪興閔氏, 1851~1895)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위하여 제작한 한글본 책문이다. 5절 10면의 첩장으로, 겉면을 붉은색 비단으로 감싸고 흰색 제첨에 ‘명셩황후상됴호옥책(*고한글)문’, 좌측 상단에 ‘경인이월십일일’이라고 명기하였다. 표지는 왕후 여흥민씨의 시호를 ‘명성(明成)’으로 정한 1897년(고종34) 이후에 개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은 한 면에 7행 12자를 쓸 수 있도록 붉은 인찰선을 긋고 격식에 맞추어 썼다. 고종은 1890년(고종27) 1월 27일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헌종 계비 홍씨(1831~1903)의 보령 60세를 경하하기 위하여 존호를 가상하는 의례를 행했는데, 이때 왕세자(순종)는 중전 민씨의 보령이 40세에 이른 것 또한 경하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따라 2월 11일에 고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대왕대비 조씨(1809~1890)와 왕대비 홍씨에게 옥책, 옥보, 치사(致詞), 전문(箋文)을 친히 올렸고, 왕세자는 고종과 중전 민씨를 위하여 옥책, 옥보, 전문을 올렸다. 당시 의례의 구체적인 내용은 『가상존호도감의궤(加上尊號都監儀軌, 1890)』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중전 민씨의 옥책문 제술관은 홍문관대제학 한장석(韓章錫, 1832~1894), 서사관은 광주부유수 민영소(閔泳韶, 1852~1917)였다. 본 옥책문은 한문본의 한자음을 한글로 옮기되 격식은 동일하게 갖추어 썼다. 책보를 올리는 의례에는 책문을 낭독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는데, 비빈의 경우에는 여관(女官)이 낭독하므로 한글본을 별도로 제작하였다.[1]
관련항목
중심 | 연결정보 | 대상 |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인물 | 고종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인물 | 여흥민씨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인물 | 헌종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인물 | 계비홍씨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인물 | 순종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인물 | 한장석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인물 | 민영소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장소 | 경복궁 근정전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시간정보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간행년 | 1890년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간행년 | 고종27년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37.39197 | 127.054387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거행장소 | 경복궁 근정전 | 37.578507 | 126.976965 |
참고문헌
- 단행본
- 장서각, 『조선왕실의 여성』,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