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
영문명칭 | A list of clothes and accessories for the wedding ceremony of Sunj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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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 미상 |
간행시기 | 1882년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1242 |
유형 | 고문서 |
크기(세로×가로) | 25.7×260.4cm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장 |
표기문자 | 한글 |
정의
1882년 당시 왕세자였던 순종의 가례를 위해 장만한 흉배, 베개, 노리개 등을 기록한 발기이다.
내용
1882년 당시 왕세자였던 순종의 가례를 위해 장만한 흉배, 베개, 노리개 등을 기록한 발기이다. 본 발기의 배면에는 <임요쳔만셰 동궁마마 가례시 륭흉 침 노리개 ᄇᆞᆯ긔>라는 기록이 있어 그 용처를 확인할 수 있다. 분홍색, 연보라색, 송화색, 연보라색, 갈색, 송화색, 갈색 등의 한지를 연결하였으며, 가례에 필요한 흉배를 비롯하여, 적의에 사용될 수장식, 주머니, 향갑, 운혜, 방석, 부채, 노리개, 베개 등의 물목을 기록하였다. 가례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금침(衾枕)이다. 이불에 사용된 직물은 도류단, 저우사, 별문영초, 왜주, 별문영견 등 최고급의 비단이 사용되었다. 또한 계절에 맞춰 솜을 둔 것도 있고 겹으로만 제작한 것도 있으며, 솜을 얇게 두고 누빈 것도 있다. 누비를 할 때에도 누비의 간격을 달리하여 세누비, 잔주누비를 만들었으며, 솜을 두껍게 두어 넓게 누빔으로써 오목오목한 효과를 낸 오목누비와 솜을 얇게 둠으로써 납작한 느낌이 나오도록 한 납작누비도 있다. 베개는 용도와 장소에 따라 별궁침, 가례시침으로 구분했으며, 베개 양 마구리의 수에 따라서도 공침으로 구분하였다. 이들 베개에는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용, 봉황뿐 아니라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오리,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해학반도, 기린과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등의 수를 놓았다. [1]
부연설명
1882년 순종의 첫번째 가례(혼례)이다. 3차에 걸친 간택(揀擇:왕,왕자,공주의 배우자를 선택함)에서 민태호의 딸, 순명효황후가 뽑혔다. 가례(혼례)의 절차는 『국조오례의』를 따르고 있다. 사용된 복식은 『가례도감의궤』와 『일방의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례도감의궤』에서는 250여년의 복식명과 의차(衣次:옷감)이 모두 같게 기록되어 있다. 이는 왕실의례라는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복식을 제작한 궁녀들의 기록인 '발기'에는 현존하는 왕실 유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복식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의차(옷감)도 차이를 보인다. [2]
왕세자빈(순명효황후)의 1882년 가례(혼례)관련 발기는 의대 발기가 「임오쳔만셰동궁마마가례시빈궁마누라의침방의문져라주오신기」, 「임오쳔만셰가례시빈궁마마의긔[침방]」, 「임오쳔만세동궁마마가례시간후보오실빈궁마누라의발기」, 「임오쳔만세동궁마마가례시[삼간시]빈궁마누라의발긔」,「임오쳔만셰동궁마마가례시빈궁마누라의발긔」, 의차(衣次:옷감)발기가 「壬午正月嘉禮時揀擇處子衣次」 1건이 있으며, 수방(繡房:궁궐에서 수놓는 일을 하던 곳)발기로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가 있다. [3]
흉배(胸背)는 조선시대 왕족과 관리들이 있는 복식의 가슴과 등에 붙이는 장식품이다. 문양에 따라 품계를 나타내었다. 왕과 왕세자는 용무늬를 수놓은 원형의 흉배를 가슴, 등 그리고 양 어깨에 붙였다.[4] 적의는 왕비의 복식으로, 혼례와 같은 왕실의 경사스런 행사에서는 금으로 수놓은 흉배를 붙여 사용하였다. [5] 향갑은 향을 담는 조그만 상자이다. 거실이나 침실에 놓아두거나, 여성들의 경우 장신구로 만들어 몸에 지니기도 하였다. [6] 운혜(雲鞋)는 앞과 뒤에 구름무늬를 새긴 여성의 신발이다. 『상방정례』와 각종 의례 발기 등에서 언급되고 있어 조선전기부터 말까지 궁중에서 신었음을 알 수 있다. [7] 노리개는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에의 허리부분에 차는 여성들의 장신구이다. [8] 해학반도(海鶴蟠桃)는 바다, 학, 반도복숭아 등으로 오래 살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 [9]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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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1882년 |
고종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가례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순명효황후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흉배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향갑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운혜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노리개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금침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도류단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저우사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별문영초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왜주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별문영견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에 언급된다 | |
가례도감의궤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상방정례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국조오례의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A는 B에 보관되어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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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가 저술되었다.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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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37.39197 | 127.054387 |
참고문헌
- 단행본
- 유송옥, 『조선왕조궁중의궤복식』, 수학사, 1991.
- 장서각, 『조선왕실의 여성』,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 논문
- 박혜진, 「조선시대 후기 궁중패물 연구-《궁중발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단국다핵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 김봉좌, 「왕실 의례를 위한 발기(件記)의 제작과 특성 - 1882년 왕세자 가례를 중심으로-」, 『서지학연구』65, 한국서지학회, 2016.
- 이명은, 「《궁중긔》에 나타난 행사 및 복식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 이민주, 「장서각소장 왕실발기로 보는 순종 가례 복식연구」, 『고문서연구』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 온라인
- "동궁가례시 흉배 발기(東宮嘉禮時 胸背件記)", 『한국고문서자료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12쪽.
- ↑ 안예영, 「1882(壬午)年 王世子 嘉禮 硏究-《가례도감의궤》와 〈궁중ᄇᆞᆯ긔〉 중심으로」, 『장서각』2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134-135쪽.
- ↑ 안예영, 「1882(壬午)年 王世子 嘉禮 硏究-《가례도감의궤》와 〈궁중ᄇᆞᆯ긔〉 중심으로」, 『장서각』2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131쪽.
- ↑ "흉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4일. - ↑ "적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4일. - ↑ "향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4일. - ↑ "운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4일. - ↑ "노리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14일. - ↑ 조기형,이상억,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2011. 온라인 참조: ,"해학반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최종확인:2017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