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원(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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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명 : 서대원(徐大圓) ■ 법훈 : 대봉도 ■ 속명 : 서대웅(徐大雄) ■ 생멸 : 1910~ ■ 관계 : 부친-서기채(徐奇采), 모친-박도선화(朴道善華), 연원-조갑종 ■ 비고 : 이천서씨 절효공파


원산 서대원(1910~1945) 깨달음에 대한 집념의 구도자

가라앉은 목소리에 법의(法衣) 두른 학(鶴)으로서 한 번 법에 미치매 몸도 정(情)도 모두 모르고, 청신한 자연 속에 순박한 인간으로 세속적인 집념에서 해방된 구도자 원산(圓山) 서대원(徐大圓) 대봉도(大奉道)는 1910년 3월 10일,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에서 부친 서동환 선생과 모친 영타원 박도선화 정사의 5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나 집에서 한학을 배우며 백수공립보통학교에 이어 법성보통학교 5학년으로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원기 14년 의산 조갑종의 권유로 새 회상에 귀의하였다. 멀리 해외로 나가 크게 활동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외숙되는 소태산 대종사를 총부에서 뵙고 1개월 동안 동선을 마친 후 전무출신을 서원하였다. 원기 14년 1월, 농업부원으로 총부생활을 시작하여 서무부 서기로 근무하였고, 15년 동선에 입선(入禪)하여 전문훈련을 받은 후 상조부·공익부 서기와 출납원을 거쳐 연구부장, 순교무, 교감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교단 일에 오롯이 일관하였다. 원산 대봉도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서도 도인스러운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원기 25년 총부교감이 되어 강습을 나며 각지를 순회할 때는 맑은 음성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법을 전하여 듣는 이 마다 감동을 받았다. 소태산 대종사도“대원아 천도법문을 읽어라, 너의 음성을 들으면 저절로 천도가 되는것 같구나.”할 정도였다. 주위에서 결혼을 권유하면“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먼저 생사의 이치를 깨치고 자신을 제도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라고 하며 결혼을 거부할 만큼 깨달음에 집념이 강하고, 순실(純實)한 정남(貞男)으로 계행(戒行)이 청정하 였으며 용모 또한 단정한 가운데 수양심을 증장시켰다. 원산 대봉도는 깨달음에 대한 강한 집념을 놓을 수 없어 계룡산 선방과 수덕사 등을 비롯하여 산사(山寺)로 수양의 행로를 펼치며 구석진 방 하나를 얻어 하루에 3시간 수면으로 불경과 염불 참선에 주력하였다. 그러자 주위에서는 생활 속의 불법공부를 버리고 입산하였다고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자신의 참뜻을 모르는 대중에게, 변함없는 신성의 표시로 손을 자르는 결단을 실행 하였다. 제자 가운데 신(信)을 바치는 뜻으로 손을 끊은 사람이 있는지라, 대종사 크게 꾸짖어 말씀하시기를“몸은 곧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에 없지 못할 자본이어늘 그 중요한 자본을 상하여 신을 표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며, 또는 진정한 신성은 원래 마음에 달린 것이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니, 앞으로는 누구든지 절대로 이러한 일을 하지 말라.”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아무리 지식과 문장이 출중하고 또는 한 때의 특행(特行)으로 여러 사람의 신망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이 회상의 종통을 잇지 못하는 것이요, 오직 이 공부 이 사업에 죽어도 변하지 않을 신성으로 혈심(血心) 노력한 사람이라야 되나니라.”며 크게 꾸중하였다. 한문과 고경에 조예가 깊었던 원산 대봉도는 교단 초기에 고경학습과 주해에 큰 몫을 담당하였고,《 불교정전》편찬시에는‘무시선법’과‘참회문’을 수필했으며,‘ 일원상의 유래와 법문’등 문답을 통해 받든 소태산 대종사의 법설을 많이 수필하여 오늘날《정전》과《대종경》의 기초가 되게 하였다. 고향에서 보내온 돈으로 구입한 일어와 한문으로 된 불교 경전들은 총부 도서실에서 후진들의 공부길이 되었고, 후일 원광대학교 도서관 도서의 한 모체가 되었다. 그러나 손을 잘라 심한 출혈을 한 뒤 결핵까지 앓게 되어 응산 이완철을 따라 서울교당에서 요양하던 중 원기 28년 6월 1일,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을 맞이하였다. 서울에서 부음을 받고 내려와 소태산 대종사의 영구 앞에 엎드리어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안았다. 1. 스승님을 뵈옵던 그날부터 쓸쓸한 내 가슴 한 모퉁이에 희망의 꽃망울 맺히었더니 서러운 영이별이 웬일일까 내 등불 밝게 켰다가 후일에 이 몸 마칠 때에 또 다시 뒤를 따르리

2. 스승님을 뵈오면 뵈올 때마다 마음의 그 꽃이 피어올라서 언제나 행복을 꿈꾸었더니 허망타 영이별이 웬일일까 내 등불 밝게 켰다가 후일에 이 몸 마칠 때에 또 다시 뒤를 따르리

3. 고요히 피어오른 그 꽃송이 몇 개의 어여쁜 열매가 맺어 스승님이 보시면 즐기시더니 망연타 오실 때는 어느 때실까 내 등불 밝게 켰다가 후일에 이 몸 마칠때에또다시뒤를따르리 《( 성가》53장)

소태산 대종사 열반 후 스승님이 그리워지는 마음을 노래에 담아 남긴 원산 대봉도는 원기 30년 5월 2일, 서른다섯 젊은 나이로 열반하였다. 원산 대봉도는 시문 속에서도 신앙과 수행의 깊은 경지를 읽을 수 있다. ‘물을 긷고 나무를 운반할지라도 불(佛)의 진리를 알고 하면 활불이요, 밭을 갈고 똥을 칠지라도 불의 지행을 알고 하면 활불(活佛)이다.’‘연잎에 비 내리니 이슬만 궁글더라 그다지 내린 비가 흔적이 어디런고 이맘도 저러하면 연화대인가 하노라.’

원산 서대원 대봉도 관련 법문 서대원(徐大圓)이 여쭙기를 과거 부처님 말씀에“이 세계가 괴겁(壞劫)에는 소천소지(燒天燒地)로 없어진다 하오니 사실로 그러하오니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그러하나니라.”또 여쭙기를“소천소지가 되오면 현재 나타나 있는 천지는 다 없어지고 다시 새 천지가 조판되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소천소지가 된다 하여 일시에 천지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니, 비하건대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아서 인생이 한편에서는 낳고 한편에서는 늙고 한편에서는 병들고 한편에서는 죽는 것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 같이, 천지에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이치가 천만가지 분야로 운행되어 지금 이 시간에도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부분도 있으며, 무너지는 부분도 있고 없어지는 부분도 있어서 늘 소천소지가 되고 있나니라.” 《대종경》변의품 4) 또 여쭙기를“과거 부처님 말씀에 삼천대천세계가 있다 하오니 사실로 있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있나니라. 그러나, 삼천대천세계가 이 세계 밖에 따로 건립된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안에 분립된 가지가지의 세계를 이른 것이니, 그 수효를 헤아려 보면 삼천대천세계로도 오히려 부족 하나니라.”다시 여쭙기를“현 천문학계에서도 이 우주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밖에 더 큰 세계가 많이 있다 하옵는데 어떠하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부처님 말씀은 해석하는 사람의 견지에 따라 다른 것이며 현재의 학설도 비록 분분하나 멀지 않은 장래에 견성한 큰 학자가 나의 말을 인증할 것이니 나를 믿는 사람이라면 다시의심하지 말라.” 《대종경》변의품 5) 또 여쭙기를“천지에 진강급(進降級)이 있다 하오니 조선이 지금 어느 기(期)에 있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진급기에 있나니라.”다시 여쭙기를“진강급의 기한은 얼마나 되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과거 부처님 말씀에 일대겁(一大劫)으로 천지의 한 진강급기를 잡으셨나니라.” 《( 대종경》변의품 6) 또 여쭙기를“이 천지가 성·주·괴·공이 될 때에는 무엇으로 되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과거 부처님 말씀과 같이 수·화·풍(水火風) 삼륜(三輪)으로 되어지나니라.” 《( 대종경》변의품 7) 또 여쭙기를“선성의 말씀에 일월과 성신은 천지만물의 정령이라 한 바가 있사오니 사실로 그러하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그러하나니라.”《( 대종경》변의품 8) 서대원이 여쭙기를“천도를 받는 영으로서 천도법문을 그대로 알아들을 수 있나니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혹 듣는 영도 있고 못 듣는 영도 있으나 영가(靈駕)가 그 말을 그대로 알아들어서 깨침을 얻는 것보다 그 들이는 공력이 저 영혼에 쏟히어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천도의 인(因)이 되나니라. 그리하여 마치 파리가 제 힘으로는 천리를 갈 수 없으나 천리마의 몸에 붙으면 부지중에 천리를 갈 수도 있듯이 그 인연으로 차차 법연을 찾아오게 되나니라.”《( 대종경》천도품 31) 서대원이 여쭙기를“미륵불 시대가 완전히 돌아와서 용화회상이 전반적으로 건설된 시대의 형상은 어떠하오리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그 시대에는 인지가 훨씬 밝아져서 모든 것에 상극이 없어지고 허실(虛實)과 진위(眞僞)를 분간하여 저 불상에게 수복(壽福)을 빌고 원하던 일은 차차 없어지고, 천지만물 허공법계를 망라하여 경우와 처지를 따라 모든 공을 심어, 부귀도 빌고 수명도 빌며, 서로서로 생불(生佛)이 되어 서로 제도하며, 서로서로 부처의 권능 가진 줄을 알고 집집마다 부처가 살게 되며, 회상을 따로 어느 곳이라고 지정할 것이없이 이리 가나 저리 가나 가는 곳마다 회상 아님이 없을 것이라, 그 광대함을 어찌 말과 글로 다 하리요. 이 회상이 건설된 세상에는 불법이 천하에 편만하여 승속(僧俗)의 차별이 없어지고 법률과 도덕이 서로 구애되지 아니하며 공부와 생활이 서로 구애되지 아니하고 만생이 고루 그 덕화를 입게 되리라.”《( 대종경》전망품 18) ▲《대종경》교단품15, 전망품 18.《 성가》2, 6, 12, 32, 33, 36, 44, 53, 110

원산 서대원 대봉도 관련 일화 신심 바친다고 손을 자른 서대원 - 원산 서대원은 원기 14년 봄에 의산 조갑종의 인도로 소태산 대종사께 귀의하고 바로 이어 전무출신을 서원하였다. 서대원은 출가 후 깨달음에 대한 강한 집념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행 동선에 서대원도 입선하였다. 총부 공회당에서 선을 나던 어느 날 저녁, 소태산 대종사가 달마 대사에게 손을 잘라 바친 혜가 대사의 이야기를 법문으로 하시면서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자본인 몸을 상하게 하여 신을 표한들 무슨 이익이 있는가. 진정한 신성은 마음에 달린 것이며 몸에 있는 것이 아니니 그대들은 몸을 상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시었다. 서대원은 달마 대사 앞에서 팔을 잘라 바친 혜가 대사처럼 자기도 소태산 대종사에 대한 절대의 신성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튿날 새벽 4시, 소태산 대종사가 거처하는 조실인 금강원 마루에서 자기의 왼 손가락 전부를 잘라버렸다. 서대원은 인력거를 타고 시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는데 치료가 용이치 않아 손목을 자르고 치료를 한 후 총부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소태산 대종사가 듣고 서대원을 사무실인 영춘원(현 구조실)으로 불러 크게 꾸중하시며 말씀하였다.“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왜 손목을 잘랐느냐? 일이 하기 싫어서 그랬느냐 아니면 편해지고 싶어서냐?”“그런 것이 아닙니다. 실은 달마 대사에게 팔을 잘라 바친 혜가 대사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만…….”“뭐라구! 혜가 대사의 흉내를 내었다고?”“흉내를 낸 것이라기보다 한 쪽 팔을 끊을 수 있을 만큼 독실한 신심이 있어야만 도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서요.”“그렇다면 달마 대사와 혜가 대사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아라.”“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서 양무제가 불사를 많이 한 자기의 공덕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을 때 소무공덕(所無功德)이라 대답한 후 숭산 소림사에 들어가 9년 면벽을 했지요.”“그렇지, 그때 혜가가 달마 대사를 찾아와 법을 청하는데 흰 눈이 내려 무릎에까지 쌓이도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 그때 달마 대사가 무상묘법을 불석신명자(不惜身命者)에게만 준다고 했지.”“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혜가 대사는 즉시 칼을 들어 자기의 왼팔을 잘라 달마 대사에게 바쳤습니다.”“혜가 대사가 비록 자기의 왼팔을 자르는 신성을 보였으나 그래도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해 달마 대사에게‘저의 마음이 매우 불안하오니 편안하게 해 주소서.’라고 간청했지.”“그 말을 들은 달마 대사는‘그렇다면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편안하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혜가 대사는 아무리 자기의 불안한 마음을 찾아보아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달마 대사에게 무어라고 말했던가?”“아무리 불안한 마음을 찾아보아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그때 달마 대사는 무어라 말했던가?”“불안한 마음을 찾아보아도 없다면 너는 이미 안심을 얻었노라고 대답했습니다.”“그 다음에는?”“그 말에 혜가 대사가 도를 깨쳤습니다.”“그렇다면 혜가 대사는 팔을 자르고 도를 깨쳤는가? 아니면 이미 안심을 얻었다는 말에 도를 깨쳤는가?”“그야 물론 안심을 얻었다는 말에 도를 깨쳤습니다.”“그렇게 잘 알면서 대원이는 무엇 때문에 팔을 잘랐나? 나에게 신성을 바치기위해서 손을 잘랐단 말인가? 그런 신성을 바쳐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왜 아무 대답도 못해, 대원이는 우리 회상에서 크게 기대되는 인물인데, 그렇게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다니, 만약에 후진들이 대원이를 본받아 손을 자르는 사람들이 자꾸 나온다면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람의 몸이란 공부와 사업을 하는데 없지 못할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 그 중요한 자본을 상하여 신성을 나타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진정한 신성이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몸에 달린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회상은 초창기라 할 일이 많다. 이럴 때 손을 잘라 일을 못하게 되면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는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지식과 문장이 뛰어나고, 한 때의 특행으로써 여러 사람의 신망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우리 회상의 참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오직 이 공부 이 사업에 죽어도 변하지 않을 신성으로 혈심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우리 회상의 참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소태산 대종사는 이후로 서대원의 예를 들어 제자들을 크게 경계하고, 영육쌍전 이사병행의 정신에 바탕하여 공동출역 등을 강조하였다.원산 서대원은 정산 송규, 주산 송도성과 더불어《불조요경》형성에 공헌하였다. 그는 불경공부를 많이 해서 소태산 대종사를 보필해야겠다는 뜻에서 얼마 동안 산중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다. 서대원이 입산하였을 때 소태산 대종사는 크게 꾸짖었고 총부 대중들도 그를 규탄하였다. 총부 대중들은 회의를 열어 그를 교단에서 제명 축출하기로 결의하고 소태산 대종사께 제명결의서를 제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는 결의서를 찢으며 결의서를 가져온 김대거를 호통 치며 말하였다. “이 종이를 바로 재도 남기지 말고 불살라 버려라. 내가 아무리 대원이를 꾸짖는다 할지라도, 그대들은 나에게 대원이가 잠시 입산한 뜻은 결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회상을 위한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해야지 내 보내자는 회의를하다니, 그렇게 내 뜻을 모르고 동지애도 없다는 말이냐?” 원기 26년 도산 이동안의 열반으로 수위단 보궐선거에서 서대원은 수위단원에 당선되었다. 서대원은 깨달음에 대한 강한 집념을 놓을 수 없어 다시 계룡산 선방과 수덕사 등을 비롯하여 산으로 또는 절로 수양의 행로를 펼쳤다. 그러자 주위에서는 생활 속의 불법공부를 버리고 입산하였다고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그리하여 원기 28년에 전무출신에서 탈퇴 당하고 서울교당 교무인 응산 이완철을 따라 서울교당(돈암동 회관)으로 가 허약해진 몸을 치료하였다. ※ 위의 내용이《대종경》신성품 17~18, 교단품 15.《 대종경선외록》변별대체장 3 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