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달성서씨(達城徐氏)
순창 달성서씨(達城徐氏)
서진(徐晉)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달성 서씨(達城徐氏)는 서진(徐晉)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달성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3만 2270가구, 42만 9353명이 거주하고 있다. 달성은 현재 대구광역시 일원의 옛 지명이다. 서진은 고려 시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판서를 지냈고 서진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에 이르기까지 삼대가 달성군(達城君)에 봉하여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달성에서 세거하며 본관을 달성으로 하게 되었으며, 후대로 내려와 현감공파(縣監公派), 학유공파(學諭公派), 판서공파(判書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석련(錫蓮)], 생원공파(生員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석령(錫苓)], 참판공파(參判公派), 종사랑공파(從仕郞公派) 등의 9파로 나뉘어져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달성 서씨는 대구 서씨라고도 하는데, 달성이 대구의 옛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성 서씨와 대구 서씨 모두 같은 본관을 쓰지만 시조가 다르다. 대구 서씨의 원조는 고려 시대 군기 소윤(軍器少尹)을 지낸 서한(徐閈)이다. 2본 모두 대구[달성]에서 터를 잡았으므로 같은 성씨로 볼 수 있겠으나 문헌이 없어 고증할 수 없다. 조선 시대에 문과 36명, 무과 7명, 사마시 13명 등 모두 5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유등면 외이리 내이(內伊) 마을에 달성 서씨가 살고 있으나 입향조나 입향 연대는 알 수 없다. 이웃에 살고 있는 유촌리 유촌 마을 이천 서씨와는 뿌리를 달리한다. 2000년 순창 지역 달성 서씨는 139가구, 35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창 지역의 달성 서씨는 유등면 외이리 내이 마을에 28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