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후보
대악후보(大樂後譜)
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이 세조 때의 음악을 모아 1759년에 편찬한 악보.
7권 7책. 판본. 한후지(漢厚紙)로 만들어졌으며, 가로는 31.4㎝, 세로는 44.5㎝이다.
『증보문헌비고』 악고(樂考)에 의하면 세종조악(世宗朝樂)을 전보(前譜)로 하고, 세조조악(世祖朝樂)을 후보(後譜)로 하여 모두 16권을 한 질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대악전보』는 1894∼1895년 무렵에 없어졌다고 전하고, 『대악후보(大樂後譜)』 7권만이 국립국악원에 소장되고 있어 국보적인 귀중한 악보이다. 이와 같이 『대악전보』는 없어지고 『대악후보』만 전하는데, 다행히도 『대악전보』의 목록이 『증보문헌비고』에 수록되어 있다.
각 권에 수록된 악보는 다음과 같다.
① 권1: 세조조 『속악보서(俗樂譜序)』, 세조조 『속악보』의 원구악(圓丘樂)주 01), 등가지도(登歌之圖)주 02), 헌가지도(軒架之圖)주 03), 이무무고정(二舞舞考定)주 04), 신제아악보 원구악(세조 때의 원구악인 아악보와 같음. 한문 가사), 용문무무절차(用文武舞節次), 창수곡(創守曲)주 05), 경근곡(敬勤曲: 1∼9, 한문 가사에 토를 닮).
② 권2: 시용보태평보(13곡, 한문 가사), 영신 희문(迎神熙文)주 06), 전폐 희문(尊幣熙文)주 07), 진찬 풍안지악(進饌豊安之樂)주 08)으로 초헌(初獻, 獻官 引入, 調律: 황종궁 평조 九成)·기명(基命)·귀인(歸仁)·즙녕(輯寧)·융화(隆化)·현미(顯美)·용광정명(龍光貞明)·중광(重光)·대유(大猷)·역성(繹成, 獻官 引出), 시용 정대업(時用定大業)주 09), 아헌 소무(亞獻 昭武, 終獻同, 獻官 引入, 黃鐘淸宮 界面調)로 독경(篤慶)·탁정(濯征)·선위(宣威)·신정(神定)·분웅(奮雄)·순응(順應)·총유(寵綏)·정세(靖世)·혁정(赫整)·영관(永觀, 獻官 引出), 철변두 옹안지악(徹籩豆雍安之樂), 송신흥안지악(送神興安之樂), 유황곡(維皇曲)주 10).
③ 권3: 『시용향악보』의 치화평(致和平: 1·2·3은 海東章 이하 15장으로 국한문 가사임.), 취풍형(醉豊亨)주 11).
④ 권4: 『시용향악보』의 봉황음(鳳凰吟:1·2·3, 山河千里詞임).
⑤ 권5: 『시용향악보』의 진작(眞勺: 1·2·3은 ‘내님을 그리ᅀᆞ와’ 詞를 붙이고, 4는 가사가 붙지 않음), 이상곡(履霜曲: ‘비오다가 개야아’ 詞임), 만전춘(滿殿春)주 12), 납씨가(納氏歌)주 13), 감군은(感君恩: ‘四海바닷기픠ᄂᆞᆫ’ 詞), 서경별곡(西京別曲: ‘서경이 아즐가’ 詞).
⑥ 권6: 『시용향악보』의 만대엽(慢大葉)주 14), 감군은(感君恩)주 15), 한림별곡(翰林別曲)주 16), 서경별곡(拍이 빠져 있음), 쌍화점(雙花點: ‘상화○에 상화 사라고’ 詞임), 보허사(步虛詞: ‘碧烟籠曉’詞), 영산회상(靈山會相: ‘靈山會相佛菩薩’의 가사가 붙어 있음).
⑦ 권7: 『시용향악보』의 북전(北殿)주 17), 동동(動動, 餘音 井邑餘音同: 계면조), 동동(動動, 舞童 牙拍呈才 女妓呈才同: 가사 없음), 정읍(井邑, 指入 舞鼓呈才 用界面調: 가사 없음), 자하동(紫霞洞: 계면조 1·2로 되어 있고, 가사 없음).
『증보문헌비고』에 『대악후보』는 세조시대의 음악을 수록했다고 하였는데, 『세조실록』 권48의 악보에는 「보태평 保太平」과 「정대업」, 권49에는 아악의 원구악과 속악의 원구악의 두 가지 악보와 「창수곡 創守曲」·「경근곡 敬勤曲」이 전한다. 이 『세조실록』 악보와 『대악후보』와의 차이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①보태평과 정대업 악보는 『세조실록』의 악보와 일치하나, 다만 『대악후보』의 「보태평」 중에서 「용광 龍光」과 「정명 貞明」의 두 곡을 한 곡으로 합치고, 「중광장 重光章」을 첨가한 점이 다를 뿐이다. 「중광장」은 선조의 ‘광국중흥(光國中興)의 위업’에 관한 공을 찬미하기 위하여 새로 악장을 지어 첨가한 곡으로, 이는 인조 4년 6월 이후의 일이다.
② 『세조실록』 악보에는 두 가지의 「원구악」이 있다. 『대악후보』에는 속(俗)으로 된 「원구악」은 악보 없이 악장만 전하고, 아악곡으로 된 「원구악」은 그 악보와 악장이 함께 전한다.
③ 『대악후보』에 전하는 「유황곡」과 「정동방곡」·「치화평」·「취풍형」·「봉황음」은 모두 『세조실록』에는 없는 것이다. 특히, 권5에서 권7까지에 수록된 고려 또는 조선 초기의 악보로 귀중한 문헌이다.
한편, 『대악후보』의 기보법(記譜法)은 세조가 창안한 오음약보(五音略譜)를 채택하여 일행(一行) ‘3·2·3·3·2·3’의 16정간(井間)으로 개량한 악보에 기보하였다. 예외로 권2에 있는 「보태평」·「정대업」·「유황곡」·「정동방곡」만이 율명(律名)과 오음약보를 겸하여 썼다.
연대가 오랜 악보는 간략하여 성기고, 후대로 내려올수록 ‘요(搖)·잔가락’ 등이 많아 복잡해지는데, 『대악후보』는 비교적 그 고형(古形)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