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일(徐神逸)의 음덕(陰德)
서신일(徐神逸)의 음덕(陰德)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서신일(徐神逸)은 이천(利川) 사람으로, 고려(高麗) 초에 개성(開城) 교외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산에 갔을 때, 사슴이 뛰어왔다. 가만히 보니, 사슴이 화살을 맞고 있었다. 그는 살을 뽑아주고, 사삼을 숨겨 주었다.
얼마 후 사냥꾼이 와서 사슴 간 곳을 물을 때, 다른 곳을 가리켜 주어 사슴을 살려 주었다. 그날 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당신이 오늘 살려 준 사슴은 내 아들이오. 당신 때문에 내 아들이 살았으니, 대단히 고맙다고 하며, 당신의 자손들은 대대로 재상(宰相)이 될 것이라 하고는 사라졌다.
그 후 서신일(徐神逸)은 나이 80에 아들 서필(徐弼)을 낳았다. 서필(徐弼)은 명상(名相)이었고, 서필(徐弼)의 아들 서희(徐熙)는 요(遼) 나라의 동경유수 소손녕(蕭遜寧)과 봉산군(蓬山郡)에서 만나 담판하여 요(遼)의 공격을 막아 냄으로써 유명하였고, 서희(徐熙)의 아들 서눌(徐訥)은 고려 8대 왕 현종(顯宗)의 장인(丈人)이 되었다. 그는 현종(顯宗), 9대 덕종(德宗), 10대 정종(靖宗) 등 3대의 명상(名相)으로 후에 정종(靖宗)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는 등 역대로 내려오며 이름을 날렸다.
서공(徐恭)은 서희(徐熙)의 현손(玄孫)으로, 18대 의종(毅宗) 때 서경에 같이 가 문무관과 함께 활쏘기를 할 때 서경 사람은 잘 맞추었으나, 종신(從臣) 중에는 한 사람도 맞추지 못하여 왕이 매우 불쾌하게 여기었을 때 서공(徐恭)이 두 번 맞추어 왕을 기쁘게 하였다.
그 후 서공(徐恭)은 양계병마사(兩界兵馬使)를 두 번 지냈고, 재상(宰相)이 된 후에도 더욱 겸손하였다. 그 중에도 경박(輕薄)한 문사(文士)들을 질시하였고, 무인(武人)을 예로 대우해 주었다. 의종(毅宗) 때 정중부(鄭仲夫)가 문신을 살해할 때 중방(重房)에서 순검군(巡檢軍) 22명을 보내어 그의 집을 호위해 준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이 서씨(徐氏) 집안은 고려 초기부터 혁혁한 집안으로 내려왔다. 모두 사슴을 살려 준 은덕(隱德)이라 한다. -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