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당사진관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 |
대표명칭 | 천연당사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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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天然堂寫眞館 |
주소 | 서울시 중구 소공동 |
정의
1907년 8월 서화가 김규진이 개설한 사진관이다.
내용
당대의 유명 서화가인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와 1907년 8월 서울의 석정동(石井洞: 지금의 중구 소공동)에 있던 자신의 집 행랑 뜰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1907년 7월 27일자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보면, 김규진은 사진관을 개업하기 전에도 어진(御眞)을 수차례 촬영하였으며 평양에 사는 박주진(朴冑鎭)과 함께 개업을 준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의 부인인 향원당(香園堂) 김진애(金眞愛, 본명 김성녀, 1868∼1949)가 여성들의 사진촬영을 전담하는 부인사진사로 활동하여 여성들도 사진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천연당사진관은 1908년 음력 정월 무렵 한 달 동안 1천여 명이 이용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1912년에는 양자 김영선(金永善)이 평양에서 천연당사진관의 분관인 기성사진관(箕城寫眞館)을 개설하였다. 1913년 12월에는 천연당사진관 내에 고금(古今)의 각종 서화를 진열하고 판매하는 고금서화관(古今書畵館)을 부설하여 함께 운영하였다. 1915년에는 이층 양옥을 신축하고 사진관의 규모를 확장하였다. 이때 날씨에 관계없이 촬영할 수 있는 천장식과 인공조명을 사용할 수 있는 복사창식 사진관 구조를 갖추고 사진 기자재도 교체하였다. 신축건물은 아래층 50평, 위층 50평 아래층은 사진관과 고금서화관으로 사용하고 위층은 1915년 설립된 해강(海岡) 서화연구회(書畵硏究會)의 교육장소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천연당사진관은 규모가 계속 확장되었으나, 김규진이 점차 사진관보다는 점차 고금서화관의 운영에 초점을 맞추면서 어느 때인가 폐업한 것으로 보인다.[1]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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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당사진관 | 김규진 | A는 B에 의해 설립되었다 | A ekc:founder B |
천연당사진관 | 고금서화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각자료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김예진, "천연당사진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