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신라의 삼국통일

Encyves Wiki
Wlghkwk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2월 20일 (수) 00:02 판 (내용)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개요

민족기록화 전승편은 한반도의 역사적 주요 사건들을 세밀한 필치로 담아내어, 우리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그 중에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기까지의 과정과 결과, 관련된 사실들을 다룬 다수의 민족기록화 작품들이 존재한다. 이 작품들을 통해 신라가 한반도의 첫 통일국가라는 위업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살펴본다.

내용

정창섭-화랑도의 수련』, 신라의 군사적 기반이자 위인의 산실, 화랑도

  1. 화랑도란 낭도들과 그들의 우두머리인 화랑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초기에는 일정한 연령층의 청소년들이 모여 공통된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질서를 터득하는 촌락 또는 부족 단위의 집단이었다. 그러다가 신라의 국세(國勢)가 팽창하고 통일전쟁을 위한 현실적 국가주의와 유불선의 보편적 정신세계가 융합되면서 화랑도는 국가 관리 하에 신라의 삼국통일에 필요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2]
  2. 화랑도는 그 창설로부터 삼국통일이 완성된 문무왕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융성하였다. 삼국통일의 어려운 시기에는 강한 무사도정신으로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통일 후 나라에 태평시대가 계속되면서 쇠퇴하였다.[3]
  3.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화랑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무열왕의 인척이자 신라의 장군 김유신(金庾信)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유신은 15세 때인 609년에 화랑(花郞)이 되어 낭도를 이끌었는데 그 무리를 용화향도(龍華香徒)라 불렀다고 한다.[4] 두 번째는 황산벌싸움에서 백제군에 맞서 싸운 관창(官昌)이다. 『삼국사기』「열전」에 관창은 용모가 우아하였으며 젊어서 화랑이 되었는데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5] 황산벌싸움이 일어난 660년 당시 관창은 16세로, 백제의 계백에게 거듭 사로잡히게 되어 결국 죽음을 당했다. 이를 본 신라군이 용맹하게 들고 일어나 백제군을 격퇴하게 되었다.[6]

이종상-태종무열왕』, 백제 정벌로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무열왕

  1. 신라 태종무열왕(武烈王, 603~661)은 신라의 29대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金春秋)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무열왕은 풍채가 영준하고 거동에 위엄이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리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8]
  2. 무열왕은 654년 즉위한 후 660년부터 본격적인 백제정벌을 추진하였고, 같은 해 5월에 태자 법민김유신, 김인문 등 장군들과 더불어 친히 정병(精兵) 5만 명을 이끌고 당군의 백제공격을 지원하였다. 7월에는 김유신황산벌싸움에서 계백(階伯)이 이끄는 5,000명의 백제군을 격파하고 당군과 연합해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泗沘城)을 함락시켰다. 이어서 웅진성에서 백제 의자왕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백제를 병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신라의 숙원이던 백제를 무력 흡수하고 한반도 통일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9]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로 살펴보는 매소성전투삼국통일의 완성

  1. 당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옛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비롯한 5개 도독부를 두고 1만여 명의 병력을, 고구려 지역에는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비롯한 9개 도독부를 두고 2만 명의 당군을 주둔시켜 한반도를 직접 지배하려 하였다. 또한 663년에는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로,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鷄林州大都督)으로 삼아 신라까지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였다.
  2. 이에 신라는 고구려 유민들과 연합하여 당나라에 맞선 나당전쟁(羅唐戰爭)을 일으켰다. 엎치락뒤치락 하던 전세의 분수령이 된 것은 675년(문무왕 15년) 9월 일어난 매소성전투였다. 당나라 이근행(李謹行)이 이끈 20만의 대군을 매소성(買肖城: 지금 경기도 연천군 대전리산성)에서 크게 격파하여 패주시킨 것이다.
  3. 이후 금강 하류 소부리주(所夫里州) 기벌포(伎伐浦 : 충남 장항) 등에서 연이어 신라가 승리하고, 나아가 크고 작은 22번의 싸움에서 4천여 명의 당군을 물리쳤다. 이에 당나라는 676년 안동도호부요동성으로, 웅진도독부건안성으로 옮겼다. 신라는 임진강에서 함경남도 덕원까지 이어지는 원산 이남의 영토를 차지하였다.[10]

지식 관계망

중심요소

문맥요소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신라의 삼국통일 정창섭-화랑도의 수련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A dcterms:hasPart B
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종상-태종무열왕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A dcterms:hasPart B
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신라의 삼국통일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A dcterms:hasPart B

주석

  1. 이석미,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월전의 영정 초본 展’", 『시사이천』online, 작성일: 2014년 08월 08일.
  2. "화랑도", 『doopedia』online, 두산백과.
  3. "화랑도", 『doopedia』online, 두산백과.
  4. "김유신", 『doopedia』online, 두산백과.
  5. 김부식,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2. 온라인 참조: "관창",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6. 한국사사전편찬회,『한국고중세사사전』, 가람기획, 2007. 온라인 참조: "관창", 한국고중세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7. "선현의 표준영정", 『한민족정보마당』online, 한국문화정보원.
  8. 김부식,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2. 온라인 참조: "태종왕",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9. 김영하, "태종무열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0.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6년겨울12월", 『한국사데이타베이스』, online국사편찬위원회.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 자원
    • "화랑도", 『doopedia』online, 두산백과.
    • "김유신", 『doopedia』online, 두산백과.
    • 김부식,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2. 온라인 참조: "관창",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한국사사전편찬회,『한국고중세사사전』, 가람기획, 2007. 온라인 참조: "[1]", 한국고중세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김부식,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2. 온라인 참조: "태종왕",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김영하, "태종무열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6년겨울12월", 『한국사데이타베이스』, online국사편찬위원회.
    • 강우방·곽동석·민병찬,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 조각』, 솔출판사, 2004. 온라인 참조: "경주 석굴암" ,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 조각『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유용한 정보

  1. 이기동, "화랑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매소성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태종무열왕", 『doopedia』online, 두산백과.

더 읽을거리

  1. 단행본
    • KBS 역사스페셜, 『역사스페셜 6-전술과 전략 그리고 전쟁베일을 벗다』, 효형출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