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정전
경복궁 근정전 (景福宮勤政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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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복궁 근정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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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景福宮勤政殿 |
유형 | 유적, 궁궐 |
시대 | 조선/1396년 |
지정번호 | 국보 제223호 |
지정일 | 1985년 1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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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조선 후기의 전각. [1]
내용
구조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중층건물로 공포(栱包)는 다포계(多包系)이고, 구조는 전후 툇간 11량(前後退間十一樑)구조이다.[2]
성격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정전(正殿)으로,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양로연(養老宴)이나 위로연을 베풀기도 하던 곳이다.[3]
역사적 변천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된 것으로, 경복궁 창건 당시인 1395년(태조 4)에 지은 건물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270여 년 만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중건 당시 태조 때의 건물을 원래대로 복구하지 않고 회랑(廻廊)을 단랑(單廊)에서 복랑(複廊)으로 바꾸고 월대(月臺: 궁전 앞에 있는 섬돌)도 새로 만드는 등 변화가 있었다. 현재의 근정전은,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 진행되어온 보수공사의 결과이다. 근정전의 보수는 건물을 지탱해주는 고주(高柱, 높은 기둥) 4개의 맞춤부분이 벌어지고 용마루와 처마가 처지는 등의 문제점이 발견되어 1층의 연목과 2층에 해당하는 부분을 완전히 해체하여 재조립한 대규모 공사로, 2000년 1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46개월에 걸쳐 약 72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완료하였다.[4]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 이후 차츰 기술적 세련미를 잃어가던 수법을 가다듬어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아울러 조선의 가장 큰 궁궐의 정전이라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양식과 수법·의장 등과 단청의 색조·무늬 등을 모두 앞서 지어진 창덕궁 인정전(昌德宮 仁政殿) 양식을 본떴으나 충분히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5]
지식 관계망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경복궁 근정전 |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주석
- ↑ 김동현, "경복궁 근정전(景福宮勤政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동현, "경복궁 근정전(景福宮勤政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동현, "경복궁 근정전(景福宮勤政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동현, "경복궁 근정전(景福宮勤政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동현, "경복궁 근정전(景福宮勤政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정광순, 종로문화원, 『(조선의 정궁)경복궁 . 2007년』, 종로문화원, 2007
- 신응수, 『경복궁 근정전』, 현암사, 2005.
- 허균, 『(사료와 함께)새로 보는 경복궁』, 한림미디어, 2005.
- 신영훈, 김대벽, 『조선의 정궁 경복궁』, 조선일보사, 2003.
- 문화재관리국, 『朝鮮朝王宮 重要建築物指定調査書』, 한국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4.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特別市史 : 古蹟篇』,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63.
- 장대원, 『景福宮 重建에 對한 小攷』,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