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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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제신(廉悌臣) | |
대표명칭 | 염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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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廉悌臣 |
생몰년 | 1304년-1382년 |
본관 | 서원(지금의 경기도 파주) |
이칭 | 불노(佛奴) |
시호 | 충경(忠敬) |
호 | 매헌(梅軒) |
자 | 개숙(愷叔) |
출생지 | 양광도 파주 |
사망지 | 개경 |
시대 | 고려시대 |
대표저서 | 매헌선생일고(梅軒先生逸稿) |
부 | 염세충(廉世忠) |
모 | 가순택주 조씨 |
자녀 | 아들 염국보, 염흥방, 염정수, 딸 서원군부인 염씨 |
후임자 | 고려 혜종 |
정의
고려후기의 문신.
내용
원나라에 가서 평장사(平章事)로 있던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자랐다. 원의 태정황제(泰定皇帝)를 시종하여 총애를 받아 상의사(尙衣使)의 벼슬을 하다가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귀국하여 정동성낭중(征東省郞中)에 임명되었다. 충목왕(忠穆王) 때 삼사우사(三司右使)·도첨의평리(都僉議評理)를 거쳐 1349년(충정왕 1)에 찬성사가 되었다.[1]
1354년(공민왕 3)에는 문하좌·우정승을 거쳐 원나라의 내란 평정을 돕기 위하여 유탁(柳濯)과 함께 원군을 이끌고 떠났다가 3개월 만에 왕명으로 철수하여 곡성백(曲城伯)에 봉해졌다. 이후 신돈(辛旽)과 마찰을 빚어 파직되었고 1364년에는 영도첨의(領都僉議)를 거쳐 1371년 서북면 도통사(都統使)가 되고 이어 딸이 신비(愼妃)로 책봉되었다.[2][3]
고려말의 권신 염흥방(廉興邦), 염정수(廉廷秀) 형제의 아버지이며 정희계(鄭熙啓)의 장인이다. 그의 다른 딸은 신비 염씨로, 우왕의 후궁이 되었다. 또한 부인 진한국대부인 안동권씨는 목은 이색(李穡)의 처고모가 된다.[4]
관련비로는 염제신신도비(廉悌臣神道碑)가 있으며 목은 이색이 비문을 지었다.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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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제신 | 염흥방 | A의 아들은 B이다 | |
염제신 | 신돈 | A는 B와 관련있다 | |
염제신신도비 | 이색 |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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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년 | 염제신이 출생하였다. |
1333년 | 염제신이 정동성낭중으로 임명되었다. |
1349년 | 염제신이 찬성사가 되었다. |
1354년 | 염제신이 문하우정승이 되었다. |
1364년 | 염제신이 영도평의사사가 되었다. |
1382년 | 염제신이 사망하였다. |
주석
- ↑ 민병하, "염제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염제신",
『위키백과』online . - ↑ "염제신",
『두산백과』online . - ↑ "염제신",
『위키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