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역사
목차
정의
신라 하대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장보고(張保皐)가 일본에 보낸 무역사절.
설명
828년(흥덕왕 3) 장보고는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를 중심으로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고, 이 곳을 거점으로 중국에는 견당매물사라는 이름으로 무역사절을 보내고 일본에는 회역사라는 이름의 상인을 파견하여 신라·당나라·일본의 세 나라를 연결하는 중개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취하였다.
일본측 기록인 『續日本後紀』에는 다자이후(大宰府)가 중앙정부에 올린 글 가운데 "蕃外의 신라국 신하인 장보고가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올렸다"라고 한 내용이 있다. 장보고는 당시 국가간의 무역만이 허용된 관행을 무시하고 신라정부와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자기의 사신을 보내어 통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2월 癸卯 초하루) 己巳 …… 大宰府에서 말하기를 “蕃國 신라의 신하 張寶高가 사신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쳤는데, 곧 鎭의 서쪽에서 쫓아 버렸습니다. 신하된 자로서 바깥 나라와 교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十二月癸卯朔) 己巳 …… 大宰府言 藩外新羅臣張寶高 遣使獻方物 卽從鎭西追却焉 爲人臣無境外之交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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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속일본후기 제권9 仁明天皇 承和7年 겨울12월", |
장보고의 교역은 귀족은 물론 지쿠젠(筑前)의 國守와도 직접 상거래를 할 만큼 광범위하게 대규모로 이루어졌다.842년 정월 장보고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 축전의 국수 훈야노미야타마로(文室宮田麻呂)가 지난해 장보고의 회역사 李忠·楊圓 등이 가지고 온 교역품을 압수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훈야노미야타마로가 회역사의 상품을 탈취한 행위를 막지 못한 대재부 관리들을 질책한 뒤 화물을 되돌려 주게 하였다.
(承和 9년, 842, 봄 정월 丙寅 초하루) 乙巳 신라인 李少貞 등 40명이 筑紫大津에 도착하였다. 大宰府에서 사자를 보내어 온 까닭을 물으니, 우두머리인 少貞이 “張寶高가 죽고 그의 副將 李昌珍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자 함에, 武珍州 列賀 閻丈이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여 평정하였으므로 지금은 이미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 이 날 前 筑前國守 文室朝臣宮田麻呂가 李忠 등이 가지고 온 여러 가지 물건들을 빼앗았다. 그가 말하기를 ‘장보고가 살아있을 때 당나라 물건을 사기 위하여 비단을 주고 그 댓가로 물건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수는 적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지금 장보고가 죽어 물건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장보고의 사신이 가지고 온 물건을 빼앗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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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속일본후기 제권11 仁明天皇 承和9年 봄정월", |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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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 회역사 | A는 B를 일본 다자이후(大宰府)에 파견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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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년 |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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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58858 | 126.735127 | 완도 청해진 유적은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에 위치한다 |
33.529871 | 130.526143 | 다자이후 유적은 일본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에 위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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