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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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복 (成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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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성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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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成服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흉례(상례) |
정의
친소(親疏) 관계와 신분에 따라 각각 다른 상복(喪服)으로 갈아입는 의식으로, 국장(國葬)에서는 승하 6일째 되는 날 거행한다.[1]
내용
왕이 승하했을 경우, 당일 예조판서가 여차(廬次) 앞에 꿇어앉아 성복(成服)할 것을 고하여 청하고[贊請] 상의원(尙衣院) 관원이 최복(衰服)을 올리면 왕세자와 대군 이하는 갈아입는다. 왕비ㆍ왕세자빈ㆍ내명부ㆍ외명부 이하, 종친ㆍ백관도 최복으로 갈아입는다. 예찬(禮饌)을 올리면 내시가 이를 받들고 들어가 영좌(靈座) 앞에 진설한다. 향로(香爐)와 향합(香合), 초를 그 앞에 두고, 문[戶]밖 왼쪽에 준(尊)]]을 두고 준소(尊所)에는 잔[盞] 3개를 둔다. 1각 전 담당자들과 종친ㆍ백관이 정한 자리로 나아간다. 왕세자는 지팡이[杖]을 짚고 자리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곡(哭)을 하고, 왕비ㆍ왕세자빈ㆍ내명부ㆍ외명부 이하는 자리로 나아가 곡을 한다. 종친과 백관도 자리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곡을 한다.[2]
대전관(代奠官)이 손을 씻고 동편 계단으로 올라가 향안(香案) 앞에 북향하여 꿇어 앉아 세 번 향을 올리고, 술은 3잔 연속하여 올린 후 엎드렸다가 일어나 물러간다. 왕세자ㆍ왕비ㆍ왕세자빈ㆍ내명부ㆍ외명부 이하ㆍ종친ㆍ백관은 곡을 해 슬픔을 다한다. 곡을 그치면, 왕세자를 비롯한 왕비ㆍ왕세자빈ㆍ내명부ㆍ외명부 이하는 여차로 돌아가고, 종친ㆍ백관은 반열을 동쪽 가까운 곳으로 옮겨 무릎을 꿇고 앉는다. 반수(班首)가 참석 인원의 이름을 아뢰고 위로하고, 끝나면 물러간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왕세자 | 성복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왕세자빈 | 성복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종친 | 성복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백관 | 성복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성복 | 상례 | A는 B의 부분이다 |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國朝五禮儀』 卷7, 「凶禮」 ‘成服’
- ↑ 『國朝五禮儀』 卷7, 「凶禮」 ‘成服’
- ↑ 『國朝五禮儀』 卷7, 「凶禮」 ‘成服’;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132~133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주자가례(朱子家禮)』
- 이현진, 「영조대 왕실 喪葬禮의 정비와 『國朝喪禮補編』」, 『韓國思想史學』 37, 한국사상사학회, 2011.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國葬 절차와 의미」, 『泰東古典硏究』 27,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 임민혁, 「조선초기 『國朝五禮儀』 흉례의 구조와 의례적 성격」, 『역사와 실학』 50 , 2013.
- 鄭鐘秀, 『朝鮮初期 喪葬儀禮 硏究』,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