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월향 초상
계월향 초상 | |
한자명칭 | 桂月香 肖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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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미상 |
제작시기 | 1815년 |
소장처 | 국립민속박물관 |
유형 | 초상 |
크기(세로×가로) | 105x70cm |
목차
정의
임진왜란 당시의 의기 계월향(?~1592)의 모습을 그린 초상.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계월향 초상>은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이 함락되었을 때 왜장의 목을 베고 죽어 남쪽의 논개와 더불어 북 계월향이라 하여 조선 여인의 충절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 받아온 의기 계월향의 모습을 그린 초상이다.
그림 우상단에는 “만력 임진년(1592) 왜군이 평양성을 함락시키자 평양부 기녀 계월향이 김응서 장군을 맞아들여 왜군의 부장(고니시 유키나가)을 참수하니, 사람들이 지금까지 의롭게 여긴다. 숭정 네 번째 을해년(1815) 여름 화상을 그려 장향각에 걸고 해마다 한 차례 제사를 올린다.(義妓桂月香 萬曆壬辰 倭陷平壤城 府妓桂月香 邀入金將軍景瑞 斬倭副將 人至今義之 崇禎四乙亥夏 畵其像 揭于藏香閣 歲一祭之)”라고 적혀 있어 제작내력을 알 수 있고 이어서 계월향을 업적과 그를 기리는 글이 빼곡히 적혀있다. 이 제기를 통해 <계월향 초상>이 1815년에 그려져서 평양의 장향각에 봉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제사는 일제강점기까지도 지속되어 1921년 4월22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평양 의열사에서 평양 기생권번 주최로 제수를 갖추고 배례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1]
한 동안 행방을 알 수 없다가 2008년 일본 교토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계월향 초상>은 사후 200년이 지나서 그려졌고 제작시기로 볼 때 인물의 얼굴을 핍진하게 묘사한 초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제작된 여인 초상화의 매우 드문 예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며 짧은 저고리와 부푼 치마, 저고리에 달린 향노리개 등 19세기 초반 당시의 복식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계월향 초상>은 좌안팔분면의 전신좌상으로 바닥에 깔린 돗자리 방석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크게 땋아 올린 머리 모양은 계월향이 살았던 16세기 당시의 양식에 충실하지만 짧은 저고리와 부푼 치마를 입은 복식의 형식과 저고리에 달린 향노리개는 이 초상화가 그려졌던 19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것들이다.[2]
안면묘사는 얼굴 윤곽, 코선, 목덜미 등을 따라 붉은 계열의 음영을 짙게 넣었으며, 코·목선·인중 등 특정 부분만을 강조하고 있는 특색이 있다. 계월향의 얼굴은 가는 눈썹, 얇은 눈꺼풀에 오똑하고 작은 코, 작고 붉은 입술을 하고 있으며 곱고 앳된 모습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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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 진영(동화사) | 진영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지눌 진영(동화사) | 지눌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지눌 진영(동화사) | 대구 동화사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지눌 진영(동화사) | 유정 진영(대구 동화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지눌 진영(동화사) | 지눌 진영(송광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지눌 진영(송광사) | 쾌윤 | A는 B가 그렸다 | A dcterms:creator B |
장삼 | 지눌 진영(동화사)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depicts B |
가사 | 지눌 진영(동화사)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depicts B |
주장자 | 지눌 진영(동화사)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depicts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815년 | 계월향 초상이 제작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816460 | 126.9789950 | 계월향 초상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주석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전시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