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초상화관 개관

지눌 진영(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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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김지선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9월 23일 (토) 01:24 판 (초상에 묘사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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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 진영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한자명칭 知訥 眞影
작가 미상
제작시기 17세기 후반추정
소장처 대구 동화사
문화재지정사항 보물 제1639호
유형 진영
크기(세로×가로) 183×111㎝


정의

고려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모습을 그린 진영.

내용

진영의 제작 및 보관

보조국사 지눌의 진영은 대구 동화사, 순천 송광사, 여수 흥국사 등에 봉안되어있다. 이 중 대구 동화사 소장의 <지눌 진영>은 여타의 작품들보다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주목되어왔다.
동화사 소장의 <지눌 진영>의 화면 왼쪽에는 보조국사가 입적한 이후 받은 시호인 ‘願力受生海東佛日普照國師(원력수생해동불일보조국사)’가 쓰여 있어 화상의 주인공을 알 수 있다. 화기나 관련 기록이 없어 정확한 제작 년대와 제작자는 알 수가 없다. 인물묘사와 담채색에 가까운 옷의 채색기법 등이 같이 동화사에 소장되어 있는 <사명대사 진영>과 매우 유사하여 동일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사명대사 진영>에 1796년에 제작했다는 화기가 있으나 필묘와 담채 중심의 화풍을 통해 17세기 후반까지 제작시기를 올려 추정하고 있어 이 <지눌 진영>도 상당히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
송광사에도 송광사 십육조사 진영 중 하나로 지눌의 진영이 전해오는데 동화사 소장의 <지눌 진영>과 같은 초본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얼굴 표정이나 앉은 자세, 의자, 주장자 등의 위치, 구성과 형식은 거의 같으나 송광사본은 동화사본보다 색채가 강하고 표현이 경직되고 형식적이어서 동화사본보다 후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기의 기록을 통해 화승 쾌윤 등이 1780년에 제작하였음이 확인된다.[2]
동화사 소장의 <지눌 진영>은 현존하는 보조국사 지눌의 진영 가운데 이른 시기의 작품이며 고졸하고 단아한 조선 중기 초상화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 명작으로 평가된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지눌 진영>은 흰색의 장삼가사를 입고,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아 오른손에 주장자를 쥐고 왼손은 단전에 둔 채 선정에 든 모습을 하고 있다. 의자는 모란문과 당초문, 귀갑문의 나전칠기 의자로 정밀하고 화려하게 묘사되었다. 어깨에서 발등으로 이어지는 가사의 녹색 띠, 홍색·녹색·청색으로 칠해진 신발과 좌대는 화면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보조국사의 얼굴은 광대가 턱이 발달해 있는 모습으로 삭발을 하고 코와 턱에는 수염이 있다. 조선시대에 살았던 고승들의 진영에 나타나는 얼굴보다는 인물의 개성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강세황 초상(단령본) 초상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강세황 초상(단령본) 강세황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강세황 초상(단령본) 이명기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강세황 초상(단령본) 국립중앙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조선 정조 강세황 초상(단령본) 제작 A는 B를 명령하였다 A edm:isRelatedTo B
강세황 초상(단령본) 제작 강세황 초상(단령본)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계추기사 강세황 초상(단령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계추기사 강세황 초상(단령본) 제작
강관 계추기사 A는 B가 썼다 A dcterms:creator B
강세황 강관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강세황 초상(단령본) 강세황 초상(단령본) 조선 정조 어제찬문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강세황 초상(단령본) 조선 정조 어제찬문 조선 정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강세황 초상(단령본) 조선 정조 어제찬문 조윤형 A는 B가 썼다 A dcterms:creator B
표암유고 강세황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강세황 표암유고 A는 B가 썼다 A dcterms:creator B
강세황 초상(단령본) 강세황 자화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강세황 강세황 자화상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좌안팔분면 강세황 초상(단령본)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오사모 강세황 초상(단령본) A는 B에 나타난다 A ekc:depicts B
단령 강세황 초상(단령본) A는 B에 나타난다 A ekc:depicts B
쌍학흉배 강세황 초상(단령본) A는 B에 나타난다 A ekc:depicts B
삽금대 강세황 초상(단령본) A는 B에 나타난다 A ekc:depicts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783년 강세황 초상(단령본)이 제작되었다.
1975년 5월 16일 강세황 초상(단령본)이 보물 제590호로 지정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238510 126.9804700 강세황 초상(단령본)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주석

  1. 국립문화재연구소, 『다시보는 우리 초상의 세계 : 조선시대 초상화 학술논문집』,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152쪽.
  2. 박정현, 『松廣寺 十六國師 眞影幀에 관한 硏究』,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4쪽.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1. 웹 자원
    • 김양균, "강세황 초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더 읽을거리

  1. 전시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표암 강세황, 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국립중앙박물관, 2013.
  2. 단행본
    • 변영섭, 『표암 강세황 회화 연구』, 사회평론아카데미, 2016.


내용

이 진영(眞影)은 비단 바탕에 채색하고, 세로 183cm, 가로 111㎝이다.[1] 고려시대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의 진영으로, 흰색의 장삼과 가사를 입고 등 높은 의자에 앉아 석장을 쥐고 오른쪽으로 몸을 튼 자세로 앉아 있는 국사의 모습을 그렸다. [2]

화면에서 보조국사는 흰색의 장삼에 녹색의 띠가 엇갈려 있는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는 주장자를 쥐고 등받이가 높은 법좌(法座)에 앉아 있다. 화면 왼쪽에는 보조국사가 입적한 이후 받은 시호인 ‘願力受生海東佛日普照國師(원력수생해동불일보조국사)’가 기입되어 있다.[3]

보조국사 진영은 동화사뿐만 아니라 순천 송광사, 여수 흥국사 등에도 봉안되어 있는데, 얼굴 표정이나 앉은 자세, 의자, 주장자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모습이지만 장삼과 가사의 색상만이 약간 달리 표현되어 있어, 동일한 초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지눌 진영(동화사) 지눌 A는 B를 묘사하였다
지눌 진영(동화사) 대구 동화사 A는 B에 있다
지눌 진영(동화사) 지눌 진영(송광사) A는 B와 관련있다
지눌 진영(송광사)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 A는 B와 관련있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7세기 중엽 지눌 진영(동화사)가 제작되었다
2010년 보물 제1639호로 지정되었다

공간정보

시각자료

주석

  1. 유경희,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3. 유경희,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유경희,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