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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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종
(初終)
대표명칭 초종
한자표기 初終
유형 의례
관련개념 흉례(상례)



정의

국상(國喪)에서 이나 왕비가 숨을 거두기 직전부터 숨을 거둔 뒤 모시던 사람들이 이를 확인하고 곡(哭)하기까지의 의식이다.[1]

내용

조선시대 내내 큰 변화 없이 동일하게 행해졌다. 은 시중을 맡은 질병내시(疾病內侍)가 부축하여 동쪽으로 머리를 향하게 눕히고, 네 명이 앉아서 손과 발을 붙잡고 안팎을 편안하고 조용하게 한다. 내시(內侍)가 햇솜을 입과 코의 사이인 인중에 얹어두고 숨을 거두었는지 살핀다. 솜이 움직이지 않으면 숨이 끊어진 것이다. 내상(內喪)의 경우에는 여관(女官)이 맡아서 한다. 숨을 거두었으면 안팎에서 모두 곡을 한다.[2] 『예기』 「단궁」에 ‘군자는 종(終)이라 하고, 소인은 사(死)라 한다.’고 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백관 초종 A는 B를 참여한다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世宗實錄五禮儀』 卷134, 「凶禮」 ‘初終’
  2. 『世宗實錄五禮儀』 卷134, 「凶禮」 ‘初終’
  3.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95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주자가례(朱子家禮)』
  • 이현진, 「영조대 왕실 喪葬禮의 정비와 『國朝喪禮補編』」, 『韓國思想史學』 37, 한국사상사학회, 2011.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國葬 절차와 의미」, 『泰東古典硏究』 27,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 임민혁, 「조선초기 『國朝五禮儀』 흉례의 구조와 의례적 성격」, 『역사와 실학』 50 , 2013.
  • 鄭鐘秀, 『朝鮮初期 喪葬儀禮 硏究』,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