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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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노론의 일원이다. 영조 때 별시에 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올랐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도제조를 역임하였다.
내용
가계
집의(執義) 신명규의 증손이고, 신단의 손자이며, 영중추부사 신사철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규일의 딸 이씨이다. 동생으로 영의정 신회가 있다. 이현응의 딸 전주 이씨와 결혼했고, 부인이 죽은 다음 최명원의 딸 최씨와 결혼했다. 아들로 참봉 신광소, 영성위 신광수, 신광집, 신광동, 신광위가 있다.
관직
1726년(영조 2) 알성문과에 별과로 급제하여 정자가 되고 이듬해 실록청도청 낭청이 되었으나 정미환국으로 파직당했다. 1729년(영조 5) 검열로 다시 등용되어 헌납, 지평, 이조참의, 대사성, 도승지, 이조참판 등을 거쳐 1747년(영조 23) 예조판서, 다음해 이조판서, 1753년(영조 29) 호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냈다. 1756년(영조 32)년에 우의정, 1758년 좌의정을 거쳐 1762년(영조 38)에 영의정에 이르렀으나, 사도세자가 죽을 때 방관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학문
영조의 집권의리를 옹호한 천의소감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영조 탕평책의 성립 과정을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이나 노론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근묵』에 신만의 초서 간찰이 남아 있다.
사후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에 묘가 있다. 1769년(영조 45년) 시호를 받았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신명규 | 신만 | A는 B의 증조부이다 | |
신단 | 신만 | A는 B의 조부이다 | |
신사철 | 신만 | A는 B의 아버지이다 | |
이규일 | 신만 | A는 B의 외조부이다 | |
이씨 | 신만 | A는 B의 어머니이다 | |
신회 | 신만 | A는 B의 동생이다 | |
이현응 | 신만 | A는 B의 장인이다 | |
전주 이씨 | 신만 | A는 B의 아내이다 | |
최명원 | 신만 | A는 B의 장인이다 | |
최씨 | 신만 | A는 B의 아내이다 | |
신광소 | 신만 | A는 B의 장남이다 | |
신광집 | 신만 | A는 B의 차남이다 | |
신광동 | 신만 | A는 B의 삼남이다 | |
신광위 | 신만 | A는 B의 사남이다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근묵』에 수록된 신만 간찰.[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