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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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金堤 金山寺 慧德王師塔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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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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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for |
한자 | 金堤 金山寺 慧德王師塔碑 |
이칭 | 금산사혜덕왕사진응탑비(金山寺慧德王師眞應塔碑) |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금산리) 금산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제24호 |
문화재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찬자 | 이오(李䫨) |
서자 | 정황선(鄭晃先) |
각자 | 이효전(李孝全) |
서체 | 해서(楷書) |
승려 | 소현(韶顯) |
건립연대 | 11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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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金山寺)에 있는 고려시대의 승려 혜덕왕사 소현(慧德王師 韶顯, 1038-1097)의 탑비.
내용
- 사이즈, 구성요소(귀부, 이수 등)로 시작.
- 대상 승려, 찬자/서자/각자, 왕
- 건립연대, 역사(간략하게.... 파손, 수리/복원, 이전)
- 형태적 특징 + 기타 내용
- 지정정보
개요
높이 2.7m, 너비 1.5m. 탑비는 귀부(龜趺)와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수(螭首)는 파괴되어 그 일부가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1]
혜덕왕사는 지광국사의 제자로, 금산사에 주석하여 사세를 확장한 승려이다. 1096년(숙종 1) 12월 봉천원구에서 59세로 입적하자, 나라에서 혜덕왕사라는 시호를 내린 뒤, 1111년(예종 6) 탑호를 진응탑비(眞應塔碑)라 하고 금산사 동쪽 부도전 내에 세웠다.[1]
비문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은 글자가 닳아 알 수 없으나,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는 지은이를 이오(李檉)로, 쓴 이를 정윤(鄭允)으로, 음기(陰記)의 쓴 이를 채유탄(蔡惟誕)으로 추정하였다. 또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와 『해동금석총목(海東金石總目)』에도 쓴 이는 똑같이 채유탄이라 하였으나, 쓴 이에 대해서는 "臣鄭口口···"이란 글로 미루어 정윤일 가능성도 있다.[2]
귀부는 하나의 화강석으로 만들어졌고, 육각의 거북등 무늬에는 잎이 네 개인 화문(花紋)을 새겼으며, 머리에 비해 몸이 작은 편이다.[3]
비문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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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서홍식, "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디지털김제문화대전
- ↑ "금산사 혜덕왕사진응탑비", 두산백과
- ↑ "금산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1 - 전북, 초판 1994, 개정판 13쇄 2011, 돌베개.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