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서씨 문목공파(文穆公派) 후손
이천서씨 문목공파(文穆公派) 후손
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치운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는 이천서씨 문목공파(文穆公派) 후손들이 18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천서씨는 신라 효공왕 때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낸 서신일을 시조로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서필(徐弼)·서희(徐熙)·서눌(徐訥) 3대가 재상(宰相)이 되었고, 이후 가문이 번성하여 문벌 귀족으로 성장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문과 급제자 22명을 배출하였다. 이천서씨는 서씨의 대종(大宗)으로, 달성(達成)·장성(長城)·연산(連山)·남양(南陽)·부여(扶餘)·대구(大丘) 등 20여 개로 분파되었다.
장군면 하봉리 이천서씨는 서기(徐起)[1523~1591]를 파조로 하는 문목공파 후손 서치운(徐致運)[1812~1861]을 입향조로 삼고 있다. 이천서씨 문목공파의 세거지인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를 떠나 주변 지역인 연기면 수산리, 장군면 산학리·은용리 등지를 거쳐 하봉리에 정착하였다. 뚜렷한 입향 사유는 알 수 없다. 현재 하봉리에는 서기의 13~14세손이 살고 있다.
장군면 하봉리 이천서씨는 1960년대 하봉리 전체 100가구 중 30가구, 2019년 5월에는 20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의 이천서씨는 1985년 31가구 133명, 2000년 37가구 141명이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이천서씨는 658명으로 남자 355명, 여자 303명이다.
장군면 하봉리 이천서씨 문목공파 문중은 매년 음력 10월 15일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재실(齋室) 박약재(博約齋)에서 종원(宗員) 100여 명이 모여 향사(享祀)[제사를 지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