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순정황후가례도감의궤
순종순정황후가례도감의궤 (純宗純貞皇后嘉禮都監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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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순종순정황후가례도감의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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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純宗純貞皇后嘉禮都監儀軌 |
주제 | 가례(嘉禮) |
작성주체 | 가례도감(嘉禮都監) |
의례담당자 | 민영규(閔泳奎) |
작성지역 | 한성부 |
작성시기 | 1906년(광무 10년) |
소장처(원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정족산성) |
판본 | 필사본 |
표기문자 | 한자, 이두 |
수량 | 총 2책 442장(상책 290장, 하책 152장) |
크기 | 45.4×32.2 |
도설 | 20면(상책 1면, 하책 19면)(채색) |
반차도 | 46면(상책)(채색) 총 길이: 약 1,472㎝ |
목차
정의
1906년(광무 10) 순종(純宗)과 계비 순정황후(純貞皇后)의 혼인를 치르는 가례(嘉禮)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내용
1904년(광무 8) 황태자비였던 순종의 정비 순명황후가 승하하였다. 1년상이 마친 1906년(광무 10)에 황태자의 재혼이 논의되었다. 7월 4일 초간택이 거행되어 윤택영(尹澤榮)의 딸을 비롯한 7명의 후보가 간택되었다. 9월 22일 재간택에서 윤택영, 교관 심종찬(沈鍾燦), 부첨사 성건호(成健鎬)의 딸이 선발되었고, 12월 31일에 최종적으로 윤택영의 딸이 결정되었다. 간택의 과정이 늦어진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황제의 '책비조서(冊妃詔書)'에는 점을 치느라 늦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세간에는 윤택영이 순헌황후에게 거액의 뇌물을 바쳐 간택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황태자비로 선정된 순정황후는 13세였고, 황태자는 33세였다. 가례는 육례를 갖춰 진행되었는데,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전에 없던 납길례(納吉禮)가 추가되었다. 또한 황제는 의식에 참여하지 않고 황태자와 대신들이 황제를 대신해 집행하는 권정례(權停例)를 따랐다. 가례는 보통 봄가을에 거행하는데 간택 과정에서 제치되어 겨울이 되는 바람에 황제의 건강을 고려해 의식 참가를 면제한 것이다. 가례를 마친 후 백관들에게 기념훈장으로 은장(銀章)과 동장(銅章)을 수여했다.[1]
1907년(광무 11) 1월 8일(음력 11월 24일)에 신부의 집에 청혼서를 보내는 납채와 신부의 이름을 묻는 문명(問名)이 거행되었고, 이 사실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1월 11일(음력 11월 27일)에 점을 쳐 길함을 얻으면 신부 집에 알리는 납길, 신부집에 예물을 보내는 납폐, 1월 23일(음력 12월 10일)에 가례의 일자를 알리는 고기, 1월 24일(음력 12월 11일)에 황태자비로 책봉하는 책비 등이 모두 덕수궁 중화전에서 거행되었다. 신부를 데리고 오는 봉영(奉迎)이 거행되고 황태자비와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는 동뢰를 덕수궁 함녕전에서 거행하였다. 같은 날 내전에 가서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는 조현례(朝見禮)도 치러졌다. 책비와 봉영, 동뢰, 조현례를 한날에 치른 것도 전에 없던 권정례(權停例)이다. 가례가 끝난 나흘 뒤인 1월 27일에 황제는 덕수궁 중화전에서 백관들의 하례를 받고 죄인을 사면하는 대사령을 반포하였다. 이 책에는 46면의 친영반차도와 동뢰에 대한 채색 도설이 실려있다.[2]
해제
김영인, "순종순정황후가례도감의궤", 의궤 검색,
판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어람용(奎 13179), (奎 13180), (奎 13181), (奎 13183), (奎 13184), (奎 13186)
일본 궁내청: (305-81)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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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순종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순정황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황태자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황태자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황태자의 대례복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mentions B |
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황태자의 조복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mentions B |
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황태자비의 대례복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mentions B |
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황태자비의 소례복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mentions B |
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가례 | A는 B를 기록하였다 | A ekc:documents B |
순종순정황후도감의궤의궤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906년 | 순종과 순정황후의 가례가 거행되었다 |
1906년 | 『순종순정황후가례도감의궤』가 편찬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65879 | 126.975915 | 덕수궁 중화전에서 납채가 거행되었다. |
37.565879 | 126.975915 | 덕수궁 중화전에서 문명이 거행되었다. |
37.565879 | 126.975915 | 덕수궁 중화전에서 납폐가 거행되었다. |
37.565879 | 126.975915 | 덕수궁 중화전에서 고기가 거행되었다. |
37.565879 | 126.975915 | 덕수궁 중화전에서 책비가 거행되었다. |
안국동 별궁에서 친영이 거행되었다. | ||
37.565879 | 126.975926 | 덕수궁 함녕전에서 동뢰가 거행되었다. |
시각자료
가상현실
황태자비의 행렬01
번호 | 이미지 | 대상 | 설명 | 복장/복식 |
---|---|---|---|---|
1 | 부함(負凾) | 함을 지고 가는 사람 | 백관의 상복 | |
1 | 대함(戴凾) | 머리에 함을 이고 가는 사람 | 당의(唐衣) 치마(赤亇) | |
1 | 별감(别監) | 호위를 맡았던 하급 군관 | 조건(皁巾) 홍의(紅衣) | |
2 | 봉촉(負凾) | 등불을 든 사람 | 홍건(紅巾) 홍의(紅衣) | |
2 | 의녀(醫女) | 내의원과 혜민서에 소속된 여자 의원 | 전모(氈帽) 당의(唐衣) 치마(赤亇) | |
2 | 나인(内人) | 내인 | 너울[羅兀]) 여립(女笠) 장삼(長衫) 치마(赤亇) | |
3 | 분시어(分侍御) | 시종원(侍從院)에 소속된 관원 | 백관의 상복 | |
3 | 오장내시(烏杖内侍) | 검은색 몽둥이를 든 내시 | 백관의 상복 | |
3 | 귀유치(歸逰赤) | 내시가 되기 전의 어린 내관 | 감투[甘頭] 단령(團領) |
황태자비의 행렬02
번호 | 이미지 | 대상 | 설명 | 복장/복식 |
---|---|---|---|---|
4 | 대향(戴香) | 머리에 향을 이고 가는 사람 | 가리마(加里磨) 당의(唐衣) 치마(赤亇) | |
5 | 봉향(捧香) | 향을 담당하는 관원 | 가리마(加里磨) 당의(唐衣) 치마(赤亇) | |
6 | 내시(内侍) | 궁궐에서 음식이나 왕명 전달, 청소 등의 일을 맡아보던 환관 | 백관의 상복 | |
7 | 별감(别監) | 호위를 맡았던 하급 군관 | 조건(皁巾) 홍의(紅衣) | |
8 | 연배군(輦陪軍) | 왕비의 가마를 메는 군사 | 홍건(紅巾) 홍의(紅衣) | |
9 | 문기(門旗) | "門"가 새겨진 의장기 | 조건(皁巾) 답호(褡𧞤) 협수 주의(周衣) | |
10 | 대령무예청(待令武藝㕔) | 왕을 호위하는 무관 | 전립 전복 협수 주의(周衣) | |
11 | 연(輦)-순정황후(純貞皇后) | 왕실에서 사용하는 지붕이 있는 가마로, 순정황후(純貞皇后)가 타고 있다. | 왕비의 소례복 | |
11 | 연배군(輦陪軍) | 왕비의 가마를 메는 군사 | 홍건(紅巾) 홍의(紅衣) | |
12 | 산선(繖扇) | 행렬에서 임금 앞에 가는 우산같은 의장의 일종 | 홍건(紅巾) 홍의(紅衣) | |
13 | 의녀(醫女) | 내의원과 혜민서에 소속된 여자 의원 | 전모(氈帽) 당의(唐衣) 치마(赤亇) | |
13 | 상궁(尚宫) | 정5품 궁녀 | 너울[羅兀]) 여립(女笠) 장삼(長衫) 치마(赤亇) | |
14 | 배위궁내순검(陪衞宫内廵檢) | 궁내부 순검 | 서양식 군복 | |
14 | 배위시위대병정(陪衞侍衞隊兵丁) | 시위 군사 | 서양식 군복 | |
14 | 기병대(騎兵隊) | 조선 말기에 설치된 기마부대 | 서양식 군복 | |
14 | 경무청순검(警務㕔廵檢) | 조선 말기의 경찰 관직 | 서양식 군복 |
도감 관원의 행렬
번호 | 이미지 | 대상 | 설명 | 복장/복식 |
---|---|---|---|---|
1 | 도감도제조(都監都提調) | 육조의 속아문이나 군영 등에 두었던 정1품 관직으로, 순종-순정황후 가례의 총책임자는 민영규(閔泳奎)였다. | 백관의 조복 | |
2 | 제조(提調) |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없는 관아에 겸직으로 임명하여 각 관아를 실질적으로 통솔하던 직책 | 백관의 조복 | |
3 | 도청(都㕔) | 임시 관서인 도감의 관직 | 백관의 조복 | |
4 | 낭청(郎㕔) | 각 관서에서 차출하여 겸임시켰던 당하관의 실무 담당 관직 | 백관의 조복 | |
5 | 감조관(監造官) | 여러가지 왕실행사의 실무를 감독하는 관원 | 백관의 조복 |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혼정례』
- 『상방정례』
- 임민혁,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 신병주,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저, 『조선 왕실의 혼례 이야기』,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11.
- 이성미, 『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 소와당, 2008.
- 김문식, 신병주 저,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 서울대학교 규장각, 『규장각소장 분류별의궤해설집』,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서울대학교 규장각, 『규장각소장 의궤 해제집(3)』,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의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한영우,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