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왕후
문명왕후(文明王后) | |
대표명칭 | 문명왕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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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文明王后 |
본관 | 김해(金海) |
이칭 | 문희(文姬), 훈제부인(訓帝夫人), 아지(阿之) |
시호 | 문명왕후 |
출생지 | 경주 |
시대 | 조선 |
배우자 | 신라 태종 무열왕 |
부 | 김서현(金舒玄) |
모 | 만명부인 |
자녀 | 신라 문무왕, 김인문, 김문왕, |
성격 | 왕비 |
유형 | 인물 |
정의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비.
내용
가계와 탄생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성은 김(金), 이름은 문희(文姬)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어릴 적 이름이 아지(阿之)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문명황후(文明皇后)라는 존호를 사용하고 있다. 각찬(角飡) 김서현(金舒玄)의 막내딸로 김유신(金庾信)의 동생이다.[1]
태종무열왕과의 설화
하루는 그녀의 언니 보희(寶姬)가 꿈에 서형산(西兄山 : 경주 서악)에 올라앉아 오줌을 누니 서울(慶州) 안에 가득 찼다. 꿈을 깨어 아우 문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우는 웃음의 말로 “내가 언니의 꿈을 사고 싶다” 하고는 그 값으로 비단 치마를 언니에게 주었다. 그리고 열흘 후에 김유신이 김춘추(金春秋)와 함께 정월 오기일(午忌日)에 자기 집 앞에서 공을 차다가 김춘수의 옷끈을 밟아 떨어뜨렸다. 김유신이 “내 집이 가까우니 가서 옷끈을 달자.” 하고 함께 집에 가서 주연(酒宴)을 베풀고 조용히 보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져와 꿰매라고 하였다. 보희가 사양해 나오지 않고 문희가 나와 옷끈을 달았는데, 수수한 몸치장과 가벼운 옷에 어여쁜 얼굴빛은 김춘추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충분하였다. 그 뒤 김춘추가 자주 내왕했는데, 김유신은 문희가 임신한 것을 알고 “부모에게 고하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이 무슨 까닭이냐?” 하고 꾸짖고 나라 안에 누이를 태워 죽인다는 말을 퍼뜨렸다. 하루는 선덕여왕이 남산(南山)에 놀러 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나무를 마당 가운데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냈다. 왕이 연기를 보고 묻자, 좌우에서 김유신이 누이를 태우려는 것 같다고 하였다. 다시 왕이 연고를 물으니, 그의 누이가 남편 없이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왕은 김춘추가 저지른 일임을 알고 속히 가서 구하라고 하였다. 김춘추가 명을 받고 말을 타고 달려가 죽이지 못하게 하는 뜻을 전하고 곧 혼례를 치렀다.[2]
후손
문명왕후는 태종무열왕과의 사이에 김법민과 김인문(金仁問) 등을 낳았다. 《삼국사기》에는 문왕(文王, 文汪이라고도 함), 노차(老且), 노단(老旦)이라고도 함), 인태(仁泰), 지경(智鏡), 개원(愷元) 등에 대해서 태종무열왕의 서자(庶子)라고 전하고 있으나, 《삼국유사》에는 이들도 모두 문명왕후의 소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3]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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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명부인 | 김유신 | A는 B의 어머니이다 | A ekc:isMotherOf B |
만명부인 | 김흠순 | A는 B의 어머니이다 | A ekc:isMotherOf B |
만명부인 | 문명부인 | A는 B의 어머니이다 | A ekc:isMotherOf B |
김서현 | 만명부인 | A는 B의 남편이다 | A ekc:isHusbandOf B |
숙흘종 | 만명부인 | A는 B의 아버지이다 | A ekc:isFatherOf B |
주석
- ↑ "문명왕후",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복순, "문명왕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문명왕후",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