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화
권중화(權仲和) | |
대표명칭 | 권중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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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權仲和 |
생몰년 | 1322년-1408년 |
본관 | 안동(安東) |
시호 | 문절(文節) |
호 | 동고(東皐) |
자 | 용부(容夫) |
시대 | 고려 |
부 | 권한공(權漢功) |
정의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내용
1353년(공민왕 2)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 우왕 때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1390년(공양왕 2) 이초(彛初)의 옥(獄)에 연루되었다 하여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나와 문하찬성사·상의찬성사(商議贊成事)를 역임하였다. 1392년 조선개국 후 판문하부사(判門下部事)에 올라 1396년(태조 5)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7년 영의정(領議政)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예천백(醴泉伯)에 봉해진 뒤 벼슬에서 물러났다. 고사(故事) 및 의학·지리·복서(卜筮: 점)에도 통달했으며, 전서(篆書)를 잘 썼다.[1]
비문의 서자
권중화는 전서(篆書)에 능했다. 양주에 있는 회암사나옹화상비(檜巖寺懶翁和尙碑)의 비문을 썼으며, 개성에 있는 광통보제선사비(廣通普濟禪寺碑)의 전액(篆額)의 글씨를 남겼다.[2]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
천문도(天文圖)는 지상에서 관측된 천체의 위치를 석판에 새겨 넣거나 지면에 투영하여 그린 별자리 그림으로, 조선시대 천문도 중에 현존하는 것으로는 1395년(태조 4)에 석각(石刻)으로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3] 조선 왕조를 수립한 태조 이성계는 왕조의 정통성과 권위의 표상으로 새로운 천문도를 갖기를 염원했다. 조선을 건국한 해(1392년)에 태조 이성계에게 고구려 평양에 세워졌다가 대동강에 수장된 석각천문도의 탁본을 바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을 기준으로 서운관(書雲觀)의 유방택(柳方澤), 권중화, 권근(權近) 등 천문학자들이 오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도수의 차이를 새로 측정하여 1395년(태조 4년) 12월, 돌에 1,464개의 별을 새겨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하였다.[4]
한의학 서적 편찬
권중화는 의약에 정통하여 고려 말기에 유행한 의학서인 『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을 보충하는 성격의 『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을 서찬(徐贊) 등과 편집하였으며, 78세때인 1399년(정종 1년)에는 한상경(韓尙敬)과 『신편집성마우의방(新編集成馬牛醫方)을 새로 편집하였다.[5]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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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 권중화 | A는 B가 비문을 썼다 | |
광통보제선사비 | 권중화 | A는 B가 비문을 썼다 | |
권중화 | 천상열차분야지도 | A는 B를 제작하였다 | |
권중화 | 향약간이방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권중화 |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 | A는 B를 저술하였다 |
주석
- ↑ "권중화",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신해순, "권중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정은주, "천문도(天文圖)",
『조선왕조실록사전』online . - ↑ 윤용현,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는 첨단 과학 이야기』, 교학사, 2012. 온라인 참조: "하늘을 그리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는 첨단 과학 이야기,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권중화",
한의학 및 한국고유의 한약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