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하씨 단지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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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6월 13일 (화) 22:0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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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하씨 단지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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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진양하씨 단지종택
영문명칭 House of Damsan in Danmok-ri, Jinju


정의

내용

진양하씨 단지파와 남명학파

진양하씨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진주에 세거하였다. 다수의 과거급제자와 훌륭한 인물을 배출하면서 명문가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뿐만 아니라 하륜의 조선 건국과정에서의 활약과 진주정씨와의 혼인을 통해 진주지역에서 강력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하순경과 그 아들 하기룡대에 비봉산 아래를 떠나 거주지를 변경하였다. 하순경은 진주부 남쪽으로 하기룡은 진주부 북쪽의 단목리로 이주하였다. 하기룡의 후손들은 단목리를 중심으로 활발한 학문활동을 통해 사회적 기반을 유지·강화해갔다. 특히 하숙의 아들 하위보, 하진보, 하국보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하위보와 하국보는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하진보는 1554년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이들 3형제는 모두 남명 조식의 문인이었다. 하진보는 신산서원(新山書院)을 건립하여 남명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하위보도 후학 양성에 힘쓰며 남명의 학문전파에 기여한 바가 컸다. 하위보와 하진보의 남명학파내에서의 위치와 그들의 활동에 힘입어 그 후손들 또한 남명학파의 핵심구성원으로서 활약하게 되었기에 17세기 이후 단목리는 진양하씨의 세거지인 동시에 남명학파의 본거지로 자리잡았다. [1]

단지종택의 건립과 구조

현재 고택 내에는 행정 하진태의 효행관련문헌을 포함한 고문서 약 5000점, 고서 약 3000책 등 많은 고문헌들이 소장되어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이 단지종택을 창주의 후손인 담산 하우식(1875~1943)의 호를 따서 담산고택으로 명명하였다. 단지종택은 가운데 솟을대문이 있는 중심채영역과 좌우에 담장으로 구획된 아래채영역, 윗채영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1864년, 사랑채는 1871년에 건립되었는데, 두 건물은 단파 하계룡(1851~1932)에 의하여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그의 아들 담산 하우식에 의하여 1923년 중수되었다. 별채는 1916년에 건립되었다.[2] 그외에 광채, 행랑채, 부속사, 정암정, 문간채 등이 있고 마당에는 효자목이라는 감나무가 있다. 광채는 내부는 고쳤으나 외형은 남아있어 지방사족의 가옥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1800년대 중엽부터 1900년대 중엽까지 차례대로 건물이 지어져서 가옥의 형태변화를 살필 수 있어 고건축 연구에도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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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석

  1. 정수환·박준호, 「晋州 晋陽河氏 丹池宗宅 所藏 典籍類의 내용과 그 성격」, 『장서각』6, 한국학중앙연구원, 2001, 211-214쪽.
  2. 경상남도,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문화재안내판」
  3. 진주시, 「[ http://tour.jinju.go.kr/06heritage/03_03.jsp?amode=_viw&cult_sno=604&cpage=7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진주시청』online

참고 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논문
  • 연구보고서
  • 웹자원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