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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상화에는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손이 소매 밖으로 나와 있으며, 인물 앞쪽에 [[서안]]이 배치되어있고, [[화|흑피화]]를 신고 부좌한 모습 등이 그러하다. 또한 왼손에 [[불자]]를 들고 있고 금은니를 사용하는 등 불화적인 요소도 나타나고 있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172쪽.</ref><br/> | 이 초상화에는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손이 소매 밖으로 나와 있으며, 인물 앞쪽에 [[서안]]이 배치되어있고, [[화|흑피화]]를 신고 부좌한 모습 등이 그러하다. 또한 왼손에 [[불자]]를 들고 있고 금은니를 사용하는 등 불화적인 요소도 나타나고 있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172쪽.</ref><br/> | ||
안면의 묘사는 단순한 구륵법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목구비의 특징을 약간 과장해서 표현한 만화적인 느낌도 준다. 남겨진 기록으로 볼 때 [[이현보]]는 얼굴이 검고 수염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림 속에 낯빛이 조금 어둡고 수염이 아주 풍성하게 그려진 모습이 전해지는 기록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 안면의 묘사는 단순한 구륵법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목구비의 특징을 약간 과장해서 표현한 만화적인 느낌도 준다. 남겨진 기록으로 볼 때 [[이현보]]는 얼굴이 검고 수염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림 속에 낯빛이 조금 어둡고 수염이 아주 풍성하게 그려진 모습이 전해지는 기록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
2017년 11월 4일 (토) 12:39 판
이현보 초상 | |
한자명칭 | 李賢輔 肖像 |
---|---|
작가 | 옥준상인 |
제작시기 | 1537년 |
소장처 | 한국국학진흥원 |
문화재지정사항 | 보물 제872호 |
유형 | 초상 |
크기(세로×가로) | 126×105㎝ |
목차
정의
조선시대 문신인 이현보(1467∼1555)의 모습을 그린 초상.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조선시대의 화승 옥준상인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이현보의 초상화로 1536년 이현보가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때에 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화가인 옥준상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이현보의 아들인 이중량의 문집 중 옥준상인과 이현보의 교류에 관한 시가 수록되어 있어 이현보와 교류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물건이나 금은니 등의 사용, 의복 처리 묘법 등에서 불화와의 연관성이 보여 화승으로 추측하기도 한다.[1]
이현보의 초상화는 이 원본 <이현보 초상>외에도 1827년에 이재관이 그린 이모본이 1점 있다. 이 이모본을 제작할 때의 절차와 의례, 제작과정 및 사후 처리 등이 기록된 『영정개모시일기(影幀改模時日記)』이 전하고 있어 영정 개모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2]
당시 제작된 이모본도 현재 전하고 있는데 서안에 펼쳐진 서책이 원본과 달리 입체적으로 그려진 점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현재 <이현보 초상>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었고 이모본은 안동 농암종택에 보관중이다.
조선국 완산 이공, 휘는 광사, 자는 도보, 호 원교선생 유상(朝鮮國 完山李公 諱匡師 字道甫 號圓嶠先生 遺像)
우리 영묘 임오년(1762)에 선생은 부령에서 신지도로 이배되었으며, 정유년(1777) 8월 26일에 섬의 금실촌 우사에서 돌아가셨다. 향년 73세였다.(鮮國 完山李公 諱匡師 字道甫 號圓嶠先生 遺像 我 英廟 壬午 先生自富寧移謫 薪智島 丁酉 八月二十六日卒 于島之 金實村寓舍 壽七十三)
이 초상은 70세 선생이 70년 되는 갑오년(1774) 겨울에 신한평이 그린 것이다.(此本卽 先生七十歲 甲午冬 畵師申漢枰 所寫)
8월 26일은 선생의 생신이다. 선생께서는 섬에 계실 때 자칭 수북노인이라 하셨다(八月 二十六日 卽 先生 降辰先生在島 自稱壽北老人)
|출처=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68~269쪽.[3]
}}
이 화제를 통해 화원 신한평이 유배지로 찾아가 이광사의 70세 초상을 그린 것을 알 수 있다.[4]
<이광사 초상>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가인 신한평은 어진도사에도 참여했던 뛰어난 초상화가였다. 몇 점 남아있지 않은 유배지에서 그려진 초상화이며 신한평의 작품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초상화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문헌에 기록된 외모
이현보의 외모에 관해서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 에 짧은 언급이 있다.
퇴계 이황이 쓴 이현보의 행장에는 “일을 당하면 강직하고 동요되지 않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공을 소주두루미(燒酒陶甁)라고 이름하니, 외모는 거무스레하나 속은 맑고 냉엄하다는 뜻이었다.”[5] 라는 기록이 있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이현보 초상>은 우안팔분면의 전신부좌상(全身趺坐像)으로서 서안을 앞에 두고 앉은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패랭이를 쓰고 있다. 담홍색의 시복을 입고 허리에는 서대를 하고 있다.
이 초상화에는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손이 소매 밖으로 나와 있으며, 인물 앞쪽에 서안이 배치되어있고, 흑피화를 신고 부좌한 모습 등이 그러하다. 또한 왼손에 불자를 들고 있고 금은니를 사용하는 등 불화적인 요소도 나타나고 있다.[6]
안면의 묘사는 단순한 구륵법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목구비의 특징을 약간 과장해서 표현한 만화적인 느낌도 준다. 남겨진 기록으로 볼 때 이현보는 얼굴이 검고 수염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림 속에 낯빛이 조금 어둡고 수염이 아주 풍성하게 그려진 모습이 전해지는 기록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이광사 초상 | 초상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이광사 초상 | 이광사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이광사 초상 | 신한평 | A는 B가 그렸다 | A dcterms:creator B |
이광사 초상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이광사 초상 | 이광사 초상 화제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이광사 초상 | 원교선생묘지명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원교선생묘지명 | 이광려 | A는 B가 썼다 | A dcterms:creator B |
이광려 | 이광사 | A는 B와 같은 혈족이다 | A ekc:isLineageKinOf B |
이광사 초상 | 좌안팔분면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방건 | 이광사 초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도포 | 이광사 초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775년 | 이광사 초상이 제작되었다. |
2006년 12월 29일 | 이광사 초상이 보물 제1486호로 지정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238510 | 126.9804700 | 이광사 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주석
-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174쪽.
-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175쪽.
-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68~269쪽.
-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68~269쪽.
- ↑ 遇事鯁直不撓。時人號公爲燒酒陶甁。「崇政大夫行知中樞府事聾巖李先生行狀」 『退溪集』
-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172쪽.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 "이광사초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6년 26일.
더 읽을거리
- 단행본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 : 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 눌와, 2007.
- 이수미, 이혜경, 『조선시대 초상화Ⅱ』, 국립중앙박물관, 2008.
- 전시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 논문
- 이원복 「일재 신한평의 화경 (逸齋 申漢枰의 畵境)」, 『동악미술사학』 창간호, 동악미술사학회, 2009, 29-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