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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일 (일) 16:48 판
법장(法藏) | |
대표명칭 | 법장 |
---|---|
한자 | 法藏 |
호 | 국일법사(國一法師), 향상대사(香象大師), 강장국사(康藏國師) |
법호 | 현수(賢首) |
성씨 | 강(康) |
출신지 | 강거(康居, 사마르칸트) |
목차
정의
당나라 화엄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법장(法藏, 643-712)의 선조는 서역(西域)의 강거(康居:사마르칸트) 사람이었으나, 아버지 때에 이르러 집안 전체가 중국으로 와서 장안(長安)에서 살았다. 조부 때 장안(長安)으로 왔다고 한다.[1]
출가 수행
17살 때 화엄종(華嚴宗) 제2조(祖) 지엄(智儼, 602-668)이 운화사(雲華寺)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강론하는 것을 듣고 의상(義湘) 등과 함께 그 제자가 되었으며, 26살 때에 보살계(菩薩戒)를 받고 670년 태원사(太原寺)에서 출가하였다. [2]
활동
처음에 서역(西域) 여러 나라 말과 범문(梵文) 경전에 능통하여 마침내 황명을 받들어 의정(義淨)의 역장(譯場)에 참여하고, 『신화엄경(新華嚴經)』과 『대승능가경(大乘入楞伽經)』 등 10여 부(部)를 번역했다.[3] 일설에는 현장(玄奬)이 인도에서 가지고 온 경전을 번역할 때에도 도왔으나,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하는 현장의 주장에 반대하여 결별했다고 한다.[4]
670년에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낙양(洛陽)에 태원사(太原寺)를 창건하고, 칙명으로 법장에게 삭발하고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5]
측천무후(武后)에게 화엄십현연기(華嚴十玄緣起)의 깊은 뜻을 가르쳤는데, 궁전 곁에 있던 금사자(金獅子)를 비유로 들자 무후가 활연(豁然)이 이해했다. 나중에 『금사자장(金師子章)』을 편찬했다. 평생 화엄에 대해 30여 차례 강의했다.[6]
중종(中宗)은 현수에게 ‘국일(國一)’이라는 호를 하사하기까지 하였다. 현수는 화엄종을 대성시킨 사람이며, 제자에 굉관(宏觀)·문초(文超)·지광(智光)·혜원(慧苑) 등이 있다.[7]
입적
현종(玄宗) 선천(先天) 원년 11월 대천복사(大薦福寺)에서 입적했고, 세수(世壽) 70세다.[8]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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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 탁연 | A는 B가 비문을 썼다 | A ekc:calligrapher B |
탁연 | 수선사 |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탁연 | 최자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탁연 | 보한집 | A는 B에 언급되었다 | A ekc:mentions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각주
- ↑ "현수", 두산백과
- ↑ 현수법장, 용어사전, 한국콘텐츠진흥원
- ↑ "법장",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 ↑ 법장, 다음백과
- ↑ "법장", 시공불교사전
- ↑ "법장",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 ↑ "현수", 두산백과
- ↑ "법장",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참고문헌
- 안성두, "탁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